정말 지콩 말대로 분식으로 변경하는데 돈은 얼마 들지 않았다. 단지 가게를 비우고 다시 채우는 것이 아주 조금 힘들어서 코피가 찔끔찔끔 나고 있을 뿐, 아직까지는 움직일만하다. 돈이 없으니,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에서 살지 않는가. 겸허히 주제파악을 하고 열심히 비우고 채우고 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건 지콩이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하고 있고, 거기다가 무료 봉사자가 한 명 더 있다는 것이다.
" 가게 안이 너무 어두침침한 분위기라 확 바꿔야 합니다. "
아까운 연말휴가를 영숙의 가게에서 보낼 작정인지, 지호아빠가 재오픈 준비를 앞장서서 지휘하고 있다.
" 청소는 기본이고, 조명도 밝은 LED 등으로 교체하고, 이쪽 벽은 밝은 색으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페인트 칠은 내가 할 테니까 ,지콩 너는 가게 통유리벽에 시커멓게 발라진 암막 시트지 다 뜯어내 버리고 밖에서도 가게 안이 환하게 보이게 깨끗하게 닦자. 영숙씨는 주방에서 버릴 것들 과감하게 싹 다 버려요. 학교 앞 애들 대상으로 하는 장사는 위생관리에 신경 써야 합니다. 불시에 구청에서 점검 나오기도 하니까, 애매한 것들 그냥 싹 다 버려요. 미끄덩한 바닥 청소도 해 버립시다. 이건 영숙씨가 하기에는 힘드니까 제가 할 테니 냅두세요. 이왕 하는 거 말끔하게 치우고 새로 시작하자고요. 아깝다고 그냥 두거나, 대충 청소하면 안됩니다. 자자, 우리 힘냅시다. "
" 오오~ 마치 형 가게 같은데, 에너지가 왜캐 넘치지? 어디서 그 힘이 샘솟지? 크크. "
"그러게, 나 왜 이렇게 힘이 나지, 하하하. "
영숙은 냉장고 복이 터졌다. 동시에 네 개의 냉장고를 털어보다니 말이다. 그동안 수시로 청소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뭐가 자꾸 나온다. 주방과 냉장고는 알 까기 마술을 보여주면서. 매년 별 다른 것 없었던 영숙의 연말을 이렇게 강하게 몸이 기억하도록 이벤트를 선사해 주고 있었다.
영숙 못지않게 두 남자도 홀에서 한겨울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홀을 정리하고 있었다. 한 남자는 실내 시멘트 칠을, 다른 한 놈은 통유리의 시커먼 코팅지 뜯어내면서, 수시로 영숙을 도와주고 있었다. 지콩이 그동안 영숙이 고생한 것을 안쓰럽게 여겼는지 많이 착해졌다.
" 콩아, 주방에 너무 많이 쌓였어. 버릴 게 너무 많아. 대부분 재활용 가능한데 이 많은 걸 다 어디에 버려야 해? “
" 어 그거? 가게 앞에 내놓으면 될걸. "
지콩이 하던 일을 멈추고, 영숙이 주방에서 파묻히기 전에 버릴 물건들을 가게 입구 옆 구석으로 후다닥 옮겨주었다. 그동안 저 많은 물건들이 주방 어디에 숨어서 지냈는지, 그리고 가게 밖으로 나온 물건들은 어디선가 나타난 손수레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마치 마술사가 물건들을 공간이동을 시켜버리는 깜짝 쇼로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을 한 것처럼 말이다.
시커멓게 가게 안을 가리고 있던 유리벽의 코팅지를 모조리 뜯어내니, 지나가는 개미도 보일 정도로 거리가 시원하게 보였다. 오후 세시의 겨울햇살은 그동안 숨겨뒀던 가게 안 구석구석을 훤하게 비춰, 세상과 가게사이를 자연스럽게 햇살 그라데이션이 연결해 주었다. 안타깝게도 지호아빠가 자비로 직접 끼워준 LED 등은 빛을 제대로 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손 빠른 지콩이 어느새 페인트 칠을 거들겠다고, 두 남자가 나란히 벽을 짚고 열심히 칠하고 있는데, 신은 공평하지 못했다. 너무 한 남자에게만 많은 것을 몰빵 해 준 것 같은 안타까운 뒷태에 영숙은 괜히 짠했다.
오픈 준비하느라 정신없는데, 지호가 친구들을 데리고 가게로 쳐들어왔다. 그리고는 마치 자기 것인양 가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우리 이모가 떡볶이집 할 거다. 나 매운 거 못 먹는다고 안 맵게 해 준댔어. 너희도 먹어보면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랄걸. 울 아빠가 컵밥도 만든대. 치킨컵밥 겁나 맛있어. 그치 아빠~. "
영숙이 하지도 않은 말까지 지어내며 아주 신이 났다. 지호 못지않게 덩달아 친구들도 신이 나서 참새처럼 조잘대자, 지콩이 정신없다고 나가 놀라고 소리쳐도 태권 소녀들은 당당하게 나가지 않았다. 한참을 떠들다가 노래를 부르더니, 급기야 핸드폰 음악을 틀어놓고는 걸그룹이 된 것처럼 심취해서 섹시댄스를 춰댔다. 참새떼를 쫓아내지도 못한 채, 지콩은 조금 남아서 찝찝해도 절대 닿을 수 없는 벽천장을 향해 바둥대며 페인트 칠을 시도하고 있었다. 애들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영숙은 셋다 마냥 귀여운 참새 같아 코코아 한잔씩 타 주며 잠깐의 여유를 부렸다. 달달한 코코아 한잔 값은 귀여운 하트였다.
"영숙씨,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저 미녀 삼총사 앞으로 대단할 겁니다."
겨울방학인데도 노란색 학원차량은 오늘도 가게 앞에 정차를 했다.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제와 다르게 가게 안이 훤히 보이는 광경에 아이들은 마술쇼를 본 것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 우와~ 얘들아, 여기 봐봐, 여기 이렇게 생겼었나 봐? 우와~ 겁나 크다."
" 우와~ 아저씨, 여기서 뭐 팔아요? 페인트칠은 왜 해요? 물고기 그려요? “
" 응~ 떡볶이도 팔고, 컵치킨도 팔고, 컵밥도 팔 거야. "
“ 우와~ 대박! 난 맨날 사 먹어야지. 우리 집 돈 많아요. ”
성별이 구분이 안 가는 긴 곱슬머리 아이가 사전 단골 등록을 했다. 다른 애는 지호아빠의 외모에 감탄을 보냈다.
" 우와~ 신난다. 근데, 아저씨 개 잘생겼어요. 몇 살이에요? 저 이모도 이쁘다. 이모는 몇 살이에요? "
“ 오뎅은 얼마에 팔 거예요? 국물은 공짜로 줄 거예요? 저기 포장마차 아저씨는 국물도 못 먹게 하거든요. ”
정말 시끄러웠다. 여기저기서 한꺼번에 질문을 해대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무 말이나 쏟아내는 애들에게 지호아빠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태권소녀들은 귀여운 참새였다면, 애들은 이른 새벽 단잠을 단방에 깨워버리는 시끄러운 참새떼였다. 거기다가 어른에게 개 잘생겼다는 둥, 몇 살이냐는 둥, 필터 없이 그냥 떠드는 참새떼였다. 그나저나 지호아빠는 보면 볼수록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사람까지 괜찮은 것 같다. 지호엄마와는 왜 헤어졌을까, 누군지 눈이 상당히 높은 사람인가 보다.
아직 오픈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애들에게는 맛집이자 핫플이 된 것 같다. 태권도복을 차려입은 오합지졸 단체 손님이 개업도 하지 않은 가게 밖 창문에 얼굴들은 갖다 붙이고는 가게 안을 구경한다고 난리를 피우니 말이다. 그 모습들을 뒤늦게 본 지콩이 영숙에게 경고를 날렸다.
“ 와우~ 요놈들 보소. 한놈도 얌전하게 생긴 녀석이 없네. 눈이 반짝반짝거리는 게 먹잇감을 찾고 있구만. 어리버리 누나 또 당하겠네. 누나~ 일단 딱 눈에 띄는 저놈, 저놈, 저놈, 범상치 않아. 조심해. “
“ 어? 누구? ”
“ 저기 꼬질꼬질하게 해 가지고 반창고 두 개나 얼굴에 붙인 놈 봐봐. 저 놈은 하루종일 사고 칠 거 찾아다니는 전형적인 꼴통이야. 그리고 긴 곱슬머리 춤추는 애 봐봐. 여자애 같은데 뭔 개춤에 온 전신이 저케 지저분하냐. 그건 분명 엄청 까분다는 증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기 검을 차고 있는 사무라이, 저 놈도 느낌이 싸해. “
그러고 보니 다들 눈에 장난기가 가득 차 있다.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콩이 깨끗하게 닦아 둔 통유리에 딱 달라붙어 침 발라가며, 코딱지 붙여가며,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것이 영락없이 시끄러운 참새떼였다. 그 모습에서 문득 영숙은 이미 정해 두었던 가게 상호 불난 분식에서 다른 이름이 생각났다.
“ 가게 이름 참새 방앗간 어때?
" 크크 딱인데! ”
“ 영숙씨답게 지었네요. 순수한 게 애들에게 딱 어울리는 가게 이름이네요. ”
둘의 칭찬에 영숙은 코피 난 콧구멍을 틀어막고, 이미 신청했던 가간판 현수막을 없는 애교를 부려 주문가의 반만 더 추가해서 참새 방앗간으로 바꾸는 협상과 스피드를 발휘했다.
며칠을 오픈 준비를 한 건지, 묵은 청소까지 하느라 온 힘을 다 써 버렸다.
얼추 준비는 마무리했는데, 아무리 봐도 요상한 분식집이다. 애당초 홀 장사를 염두해 두지 않고 야식 배달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가게라 그런가, 분식집으로 모양은 나름 준비했지만, 영숙이 보기에도 엉성한 게 좀 그랬다. 그런 마음을 지호아빠가 읽었나 보다.
“ 내일부터 모이는 애들로 가게도 달라 보일 거예요. 영숙씨가 그동안 익숙했던 게 바뀌어서 그래요. 너무 걱정 말아요. 그리고... 제가 옆에서 도울 겁니다. 두 번은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말아요. ”
참 어른스러운 격려다.
“ 그런데 누나, 시골에 정말 산이 있어? 정말 경마장이 근처로 들어와? 거기가 어딘데? "
"내가? 무슨 선산이 있겠니? 그거 있음 내가 회사를 왜 다니니? 그건 그냥 열받아서 나온 말이지. 그걸 믿었어? "
“ 그럼 아파트는?”
“ 당근 은행이 빌려 준거지. “
“ 칫! 참새 방앗간이 뭐냐 촌스럽게, 그냥 닭장으로 하지 그래. ”
그럼 그렇지, 어쩐지 지콩이 친절하다 했다. 혼자 무슨 개꿈은 꾸고 있었는지 속이 훤히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드디어 다시 시작이다.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고 지난 6개월 참 고생 많았다. 잃은 거 투성이지만 덕분에 영숙은 강해지고 있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다 손해 본 장사는 아니다.
분식집이 그동안 꼴아 박은 돈을 돌려받을 만큼의 수익은 못 줄 것이다. 일단 돈이고 뭐고 내일 오픈한다니 마냥 심장이 콩콩댄다. 진짜 사업을 시작하는 것 같아 설렌다. 엄마가 알면 기가 막혀 할 고작 초등학교 앞 분식집이지만 말이다.
늦은 밤까지 마무리를 짓고 짬짜면에 탕수육을 시켜 고량주 한잔씩 하며 재오픈을 자축했다.
“ 참새 방앗간을 위하여~”
“ 닭장을 위하여~ ”
“ 하하, 우리 모두를 위하여~”
크으~ 셋다 목 넘김 소리가 절로 나온다. 빈속에 목을 타고 들어간 첫 모금의 독주는 지난 사건들과 고된 오픈 준비를 싹 씻어주었다.
" 영숙씨는 잘 먹어서 보기 좋아요. 힘들었을텐데 많이 먹어요. “
" 형, 누나가 얼마나 복스럽게 먹는대. 누나는 보면 볼수록 매력있지. 다른 여자들이랑은 차원이 다른 순수 그 자체지. "
공포의 주둥이가 왜 또 저러는지 대꾸도 말아야지.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몰라도 절대 이길 수 없는 주둥이다.
쨍그랑
갑자기 유리창 깨지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한 남자는 영숙을 감쌌고, 한 놈은 뛰쳐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