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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이 May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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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꺼억~ 꺼억~."


" 그만 좀 울어! 이 바보야. "


 

지콩이 담배 피우러 나왔다가, 응급실 근처 벤치에서 목 놓아 울고 있는 영숙을 발견하고는 달려왔다.



" 누가 죽었냐고, 그만 좀 울라고! "


" 괜. 찮. 은. 거. 야? "



" 그 새끼, 안 디질려고 부적처럼 빨간 헬멧 X나게 쓰고 다니는 거 몰라? 주둥이 살아서 지금도 나불대고 있으니까, 걱정 마. 단 사지가 조금 아작 났을 뿐야. "


"으~앙~~ 나는 죽는 줄 알고, 꺼~어억, 얼마나 꺼억, 미안했는데, 으앙~~ 고. 마. 워, 살아줘서...”



" 누나가 왜 미안한데, 빙판길에 오지게 자빠진 놈이 빙신이지. "


사실 나도 자빠졌는데...








" 이대로는 안되겠어. "



며칠째 가게 문을 열지도 못하고, 둘이서 이러고 있는 것에 지콩이 열불이 났는지,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 도대체 얼마나 꼴아박은 거야? 누나가 여기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왜 그동안 말도 안 하고 돈을 처박고 있었냐고? 그리고 놀부가 자빠졌는데 누나가 무슨 대단한 사장이라고, 그 큰돈을 놀부에게 줘? 가게는 어쩔 건데? 계속할 거야? "


" 솔직히 모르겠어. 그냥 쉬고 싶어. "



지콩은 괜히 미안하고 안쓰러워 위로해 주고 싶었는데, 맘에 없는 말을 뱉었다. 안다 영숙도 지콩의 그 마음을,  짧은 기간 많은 경험과 사건에 이제는 정말이지 그냥 좀 쉬어야 할 것 같았다.



" 안돼! 이럴 때 더 정신 차리고 대책을 세워서 다시 해보면 되는 거지, 뭘 모르긴 뭘 몰라. 또 숨어서 연락두절하고 그러기만 해봐. 그러면 나 진짜 관둘거야. 그니까 행여 헛튼 생각은 하지도 마. “


” ...어. ”


“ 암튼 가게 운영에 대해 고민을 해 봤는데, 심플한 방법은 가격을 올리는 거야. 그럼 깔끔해. 그런데 문제는 뭐냐? 이 동네 애들은 가격이 오르면 안 사 먹어. 처음부터 비싸면 괜찮은데, 장사하다가 올려 버리면 안 사 먹게 되는 그런 심리가 있나 봐. 나도 그랬으니까. 괜히 망한 가게 꺼 사 먹는 것 같은 찝찝함이랄까, 암튼 그래서 이건 해봤자 망하니까, 패스 땡! 배달 장사도 지금은 놀부가 없으니까 못해. 우리가 주문이 좀 많아야지. 솔직히 이케 많은 배달을 이 월급으로는 직원 못 구해. 우리도 그냥 여기가 편하고 만만해서 있는 거지, 월급은 너무 구리거든. 콜(배달업체) 부르면서 배달 장사하면 손님 삼천 원 내고, 우리가 추가로 삼, 사천 원 더 내면서 해봤자 또 꼴아박는거지. “


" 그러면? "


" 그러면 뭐 하냐, 고민해 봤는데, 무리하게 가격 올리면서 배달 장사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지. 과감하게 유턴 하자. 가게에서 장사하자. 어때? “


" 가게 장사? "


"응, 홀이 쓸 때 없이 너무 넓잖아. 반은 잘라서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하고, 반은 분식을 팔아서 애들 장사를 하자고. 여기 초등학교 뒤편에 여중고가 바로 붙어있어서, 소문나면 애들 금방 몰려올 거야. "


" 어? 아이스크림 하고 분식을 하자고? "



영숙은 왠지 배가 점점 산으로 가는 기분이 들었다.



" 인테리어를 별도로 할 건 없어. 간판은 천막으로 하고, 판자로 간이벽 만들어서 두 개로 분리시키면 돼. 아이스크림은 판매회사에서 냉동고도 대여해 주고 설치도 해 준다네. 우리 가게 정도면 냉동고가 6개에 스탠드형도 하나 더 넣을 수 있대. 그리고 분식은 컵치킨을 메인으로 하고, 떡볶이는 아는 친구한테 레시피 받아놨어. 떡볶이 열판 같은 거랑, 테이블, 의자는 요즘 망한 가게 많아서 우리 가게에서 안 쓰는 거랑 퉁치는 방법으로 알아보고 있으니까, 잘하면 공짜로 구할 수도 있어. 준비금은 거의 안 들거야. 참, 추가로 컵밥도 해보자. 아는 일식집 형이 도와준대. "



 며칠사이에 이걸 언제 다 알아봤는지, 지친 영숙의 귀에도 쏙쏙 들어오는 지금 우리 상황에 딱 맞는 재오픈 설명회였다. 거기다가 일식 요리사가 도와준다니.



" 내가 대외적으로 사장이잖아. 당장 건물주한테 당장 전화해서 상호 두 개로 쓸 거라고 말하고 올게. 지금 당장! "


"어? 어 그래, 당장 해봐. "



건물주는 뚱땡이 마귀할멈처럼 생겼다. 마법의 가루가 뿌려진 연기 나는 큰 가마솥에 영숙을 처넣어 개구리로 만들어 버릴 것만 같아, 영숙이 기피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쥐 빼고는 세상 무서운 게 없는 지콩은 당당하게 마귀할멈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가게 밖으로 나갔다.

영숙은 돈은 적게 벌겠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싶다. 하나는 무인이니 손이 별로 안 갈 것이고, 분식은 이 동네가 마음에 들게 만들었던 애들이 주요 고객이니 될테니, 진상은 없을 것이다. 거기다가 시간에 쫓겨 발생하는 배달 사고도 없고, 술도 팔지 않으니 직원이 손님의 유혹에 관둘 일도 더는 없을 것이다. 정말이지 지콩은 여기서 썩이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재다. 보험왕이 될 상인데 말이다.

그러나 잠시 후 지콩이 가마솥에 덴 것처럼 얼굴이 시뻘겋게 달궈져 가게로 돌아왔다.



"미친 할망구 돈독이 제대로 올랐네. 지가 손해 보는 것도 아닌데, 손해 본다고 월세를 더 내라는 개소리를 해대네. 다른 가게는 코로나라고 월세도 안 받는다는데, 정말 돈에 환장한 미친 미친 할망구, 에이c~ 열받아. “



지콩은 가게를 두 개로 운영할 거면 월세를 더 내라는 말을 듣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데, 지콩의 열 배만 한 건물주가 가게로 쳐들어왔다. 영숙은 화장한 하마가 성나면 저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거대하고 무서웠다.

붉은 하마, 아니 건물주가 거만한 손짓으로 내 건물을 누구 마음대로 쪼개냐며 돈을 더 내던지, 해서는 안될 말 "나가"라는 반말의 협박을 던졌다. 그 말에 순간 영숙이 돌아버렸다.

" 네에? 지금 뭐라고 했어요? "나가"라고요?

그래요, 당장 나가줄 테니 보증금 내놔요. 누가 돈이 없어서 이러고 있는 줄 아나, 장사에 미련 남아서 이러고 있는 거지. 지콩아 나가자. 안 그래도 누나 아파트 너무 넓어서 무서웠는데 이참에 정리하고, 그냥 건물 하나 사자. 이 건물이 얼마라고 했지? 십억쯤 되나? 아파트가 십오억 넘고. 시골에 경마장 들어온다고 냅둔 선산도 매년 세금이 너무 많아서 버거웠는데 다 팔아서, 요 앞 큰길 사거리에 이 아줌마 신랑이 세 들어서 한다는 카센터 건물을 통으로 사 주지 뭐. 지콩아, 부동산 아저씨한테 당장 전화해 놔. 나도 똑같이 "나가" 하고 갑질 좀 하자. “


“ 응, 고마워 누나, 당장 연락할게. “


“ 아줌마, 감히 어따대고 나가라 마라 갑질이야! 당신이 뭔데 맘대로 명령질이야! 무너져가는 건물 하나 가지고 있다고 세상 뭐 같이 보여? 여기 사람 안 보여? 우리도 사람이야! 어따대고 똥개 쫓듯이 훌치려고 해! 당신이 우리 고용주야 뭐야! 제대로 된 어른이라면, 세입자가 힘들어하면, 좀 배려해 줄 마음은 없어? 얼굴 뻘겋게 바른다고 돈 있어 보이고, 격이 있어 보이는 게 아니라고, 알겠어요? 정말 더러워서 나간다. 분명 당신이 나가라고 했다. 두말하지 말고 당장 보증금 준비해. 그리고 지금 당신도 당장 내 가게에서 나가! "



영숙은 자기가 뭘 말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흥분해서 쏟아내 버렸다. 공항에서 찍소리 한번 못했던 십 년치까지 얹어서 건물주에게 들이부어 버렸다. 옴팡 당한 건물주가 입만 쩍 벌리고 영숙을 쳐다봤다. 영숙이 살며 가슴에 응어리졌던 노폐물까지 다 쏟아내 버리는 쾌변의 투척 대상이 건물주라 다행이었다.

여태 말 한마디 섞지 않았던, 순하고 참한 줄로만 알았던 아가씨가 눈깔 뒤집고 대드니, 건물주는 입만 쩍 벌리고 있다가, 욕먹은 것보다 방 뺀다는 소리에 진짜임을 감지하고 튀어버렸다. 그리고는 잠시 후 지콩에게 오해가 있었다며, 두 개의 상호를 당장 등록해도 된다는 문자를 보냈다. 지콩이 영숙에게 승리의 문자를 보여줬지만, 영숙은 그때까지도 씩씩대고 있었다. ‘제발 망해라, 마귀 할망구야.’


승리도 잠시, 건물주 못지않게, 심술궂은 문방구 아줌마가 곡소리를 내며 가게로 쳐들어왔다.



“아이고, 난 이제 망했네 망했어. 고작 뽑기 하고, 아이스크림 몇 개 팔아먹고 사는디, 이게 웬 말이여, 아이스크림 가게를 차린다니, 아이고 난 이제 망했네, 망했어.”



눈물 없이 통곡하는 아줌마의 작은 문방구 입구에는 아이스크림 전용 냉동고가 하나 있었다. 영숙이 그걸 잊고 있었다. 이 동네에서 뵈기 싫은 두 번째 인물 심술궂은 문방구 아줌마이지만, 상도덕에 어긋나는 짓을 할 수는 없다. 젠장 무인 뽑기도 할 수 없고, 지콩은 영숙이 아직 쓴 맛을 덜 봤다며 툴툴댔지만, 아닌 건 아니니 어쩔 수 없다.






사람 자체가 소음덩어리인 두 마귀가 떠나고, 지콩과 영숙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시작도 안 하고 뭔가 털린 기분은 뭔지, 둘은 하루종일 굶은 배고픔도 잊고 멍하니 앉아있는데, 가게 문이 조심스레 천천히 열린다. 폐지 할머니다.



“잘 있었어요? 가게가 며칠 조용했는데, 오늘은 기척이 있길래 와 봤어요. ”



문방구 아줌마가 얼마나 요란을 피웠으면, 귀가 잘 안 들리는 할머니한테 닿았을까, 할머니의 눈길은 보이지 않는 놀부를 찾고 계신 것 같았다.



“ 할머니, 놀부 지방에 내려갔어요. 친구가 사업하는데 도와달라고 해서 급하게 갔어요. 할머니 못 뵙고 간다고, 미안하다고, 꼭 전해 달랬어요. 겨울만 도와주고 온다고, 봄에 꼭 뵙자고 했어요. “



역시 센스만점 지콩이다.



“ 아 그랬어요. 내가 괜한 걱정을 했네. 그래요, 젊을 때는 많이 다녀보는 것도 좋지요. 여기 이거 먹어봐요. 좋아하려나 모르겠네. ”



영숙이 정말 좋아하는 붕어빵 네 마리를 우리 네 명을 위해 사 오셨다. 역시 마귀들과는 격이 다르신 어르신이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붕어빵에 영숙이 울컥해졌다. 영숙의 눈물보가 터지려고 들썩이는 것을 본 지콩이 호된 눈회초리를 때리고는, 영숙의 입으로 붕어빵을 밀어 넣어 버렸다. 슬픈 붕어빵은 맛있었다.



“ 이모~~~ ”



지호가 가게문을 확 열어젖히고 들어온다. 뒤에 지호아빠가 따라 들어오면서 머쓱한 미소를 짓는다.



“ 형, 왔어요? ”


‘ 뭐? 형?’

 


언제 형 동생이 되었는지, 지호아빠도 지콩을 보는 시선이 불편하지 않았다.

영숙이 모르는 사이 지호에게서 지호아빠가 요식업에 종사한다는 정보를 얻어내고는, 계획적으로 접근해서 순식간에 동네 형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거기다가 컵밥 레시피의 도움을 줄 아는 일식집 형이 지호아빠였던 것이었다. 정말 지콩은 시대만 잘 타고 태어났으면, 봉이 김선달을 넘어 한강 물을 에비 양 마시는 나라에 수출하고도 남을 놈이다.


어느새 할머니와 영숙 사이에 자리 잡고 앉은 지호가 붕어빵 하나를 오물오물 먹으며 다리를 신나게 흔들고 있다. 그런 지호가 이뻐 할머니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지호는 당연하다는 듯 시선을 즐기며, 붕어의 꼬리부터 뜯고 있었다. 늙은이 냄새날까, 폐지에 베인 먼지 날릴까, 지호에게서 조심스레 떨어져 계시려는 할머니와, 눈치 없이 바짝 다가앉은 지호가 한 폭의 그림 같아, 영숙은 좋아하는 붕어빵의 맛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또 울컥했다.






“ 분식점을 할 계획이라고 들었는데, 여기는 맞벌이나 저처럼 한부모 가정이 많아서 애들 끼니가 늘 문제거든요. 그래서 컵밥을 한다는 건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


“ 형, 종류는 뭐가 좋을까요? ”


“ 종류가 많으면 둘이서 하기 힘드니까, 다섯 가지로만 해보면 어떨까, 무뼈닭발 덮밥, 치킨마요 덮밥, 대패삽겹 김치 덮밥은 기존의 팔던 맛을 그대로 살려서 하고, 애들이 좋아하는 스팸김치 덮밥 추가하고, 가격은 조금 비싸더라도 어른들을 위한 연어덮밥을 추가해서 해보는 거야. 모든 덮밥에는 에그스크램블과 김가루를 기본 베이스로 하고, 소스는 데리야끼 소스와 내가 만들어 주는 맵단 소스 두 가지 중 선택하게 하면 좋을 것 같아. 아! 그리고 사장님, 연어 공급 가격은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저렴하게 구매해서, 배달까지 해 드리겠습니다. ”


” 아니, 그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 저희가 부담스러워서 안되는데…“


“ 아~  진짜 뭐가 부담스러, 그케 당하고도 뭔 체면이야. 그리고 누나는 눈치가 왜 이렇게 없냐, 으이그~  답답이, 그니까 바보지. “


"?? "



지콩이 뭔 소리를 하려는 건지, 지호아빠는 왜 이렇게까지 도와주는 건지 모르겠으나, 영숙은 저들의 대화에 더는 끼지 않는 게 나을 것 같다. 염치없지만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상태는 맞으니까,

영숙은 남은 붕어빵의 마지막 남은 꼬리를 씹으며, 분식집 이모로서의 청사진을 그려 보았다.



“ 제가 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그냥 좋아서...“


“ 형! 드디어 직진이야? 오오~ 맘에 드는데, 역시 이형 나랑 얼굴만 통하는 게 아니었어. “



왜 마지막 남은 붕어빵을 아무도 손대지 않는 걸까, 영숙은  참지 못하고 두 번째 붕어빵을 잡고 말았다. 식어도 맛있는 붕어빵을 오물오물 먹으며, 머릿속은 온통 분식집에서 깔깔거리는 아이들로 가득 차 있다.


‘화장 좀 하고 다녀야지, 이쁜 이모라고 불러주면 좋겠다. 히히 진짜 느낌 좋은데!’



다 끝인 줄 알았는데, 다른 길이 있었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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