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또 오뎅반찬이다. 썩은 생선이 눈깔을 뒤집고 오뎅을 뚫고 나올 것 같은 비린 맛이 이진이는 이제 정말 징글징글 싫다.
" 와? 맛없나? 팍팍 무그라 쫌! 그카니까 삐쩍 곯았다 아이가. 가시나가 즈그 애비 닮아가지고 키만 삐쯔그리~ 커 갖고 아이고 몰따. 깨작깨작 거릴거믄 고마 묵든지, 배가 불러 터졌지 저게 밥 귀한지 모르고 아이고 내 팔자야. 뭐 묵고 저걸 낳았는고. "
엄마의 팔자타령은 진이도, 다섯 살 많은 오빠도 익숙한 밥상 멜로디이다. 그나저나 탁구 빠따를 구해달라고 하면 엄마가 뭐라고 또 잔소리를 할까? 달달한 간장에 볶은 썩은 눈깔맛 오뎅을 잘게 씹으며 고민에 빠졌다. 달리기도 못하는 나한테 박철 새끼가 무슨 짓을 했는지 내일 학교에 가자마자 대가리를 박살을 내 버리고, 똑똑히 알려 줄 것이다.
" 오빠야, 근데 탁구가 머꼬? "
" 탁구? 그거 재밌는 건데. 빠따 들고 요케 요케 공 넘기는 거 아이가? 오빠야는 함 해봤다 아이가. "
까까머리 중학생 오빠는 밥 숟가락으로 탁구 치는 흉내를 냈다.
" 맞나? 엄마 있잖아~ 핵교에서 내 보고 탁구부 하라꼬 카는데..."
" 뭐어? 탁구부? 니가? 니 같은 말랑깽이가 무신 운동을 한다고? "
" 엄마, 진이 함 시키 봐라. 와 또 아나 밥 잘 묵꼬 살도 찔지 우예 아노? "
다행이다. 오빠가 진이 편을 들어주고 있다. 살이 찐다는 소리에 엄마의 귀가 쫑긋 해졌다. 진이가 좋아하는 통닭을 자주 사 먹이면 자동으로 살이 찔 건데, 운동하면 살이 찔 것이라는 오빠의 개똥 같은 말에 좋아라 하는 엄마는 역시 엄마다웠다.
" 글라? 니 할 수 있겠나? 진짜로 할 수 있겠나 말이다. "
" 잘은 모르겠는데… 샘이 시켰다. 그카고 탁구 빠따도 구해오라고 카던데. "
" 빠따? 그거야 뭐 알아서 구하면 되지머. 오야 알았다. 니 탁구 그거 함 해봐라 알겠재? "
" 어. "
엄마는 분명 탁구 빠따를 구해 올 것이다. 군인아파트 앞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하는 엄마의 장롱 서랍 은밀한 곳에는 미제 사탕과, 미제 골드크림이 수두룩하게 쟁겨져 있는 걸로 봐서 엄마는 탁구
빠따 쯤은 쉽게 구할 것이다.
월요일 교실에서 계획대로 박철을 박살 내지 못했다. 뻑하면 학교를 빼먹는 새끼다.
체육관에는 라켓을 구하지 못해 안 온 애들은 코치가 정말 두말하지 않고 탁구부에서 제외시켰고, 라켓을 구해 온 22명으로 탁구부는 시작되었다. 박애경은 그 중 당연히 제일 작았고, 이진이는 제일 컸다. 나머지 애들은 키가 비슷비슷했다.
“ 자자, 다들 모였으면, 주장 박애경 니가 맨 앞에 서고 11명씩 해 가지고 두 줄로 서라. “
애들은 우왕좌왕 어떻게 서야 하는지 서로 꼬이기 시작하자, 코치가 정리에 들어갔다.
“ 니, 니, 그래 니, 박애경 옆에 서고 또 어디 보자 니도 작네 앞에 서고, 조금 크다 싶은 놈들은 뒷줄에 서고, 자자 함 서봐라. “
그렇게 한참을 22명으로 퍼즐을 맞추어 드디어 두 줄로 서는 것이 정리되자, 코치는 다시 설명에 들어갔다.
“ 앞으로 집합이라고 카면 이케 두줄 서는거다. 옆 짝지 잘 외우고 알았재? 그라고 박애경 다들 모이면 박애경 니가 차렷 경례 하는기다 알았재? 자 해 봐라. “
애경은 코치가 시킨 대로 야무지게 구령을 붙였다.
“ 차렷! 경례. “
“ 안녕하십니까? “
박애경의 당찬 구령에 애들은 자연스럽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 후 열중 쉬엇의 자세를 취했다. 국민학교 3년 동안 운동장에서 거의 매일 하다시피 한 구령에 따른 자동반사였다.
“ 옳지 옳지 그케 하는기다. 그라고 샘이 말 끝나고 해산 하면 또 박애경이가 차렷 경례 하는 기고, 알겠재? “
“ 네예. “
“ 옳지 잘하네, 자 이제부터 니그는 3학년을 대표하는 탁구부다. 앞으로 석 달 동안 열심히 해서 스물두 명은 너무 많고 열명만 남길기다. 물론 잘하고 열심히 나오는 놈만 탁구부 하는기다. 샘이 여기서 가르쳐주면 집에 가서 거울보고 스윙 연습도 하고, 학교 수업 끝나면 째깍째깍 오고 알겠나? “
“네에. “
갑자기 유난히 눈이 크고 코도 큰 것이 마치 외국인같이 생긴 라정애가 손을 번쩍 들었다. 왠지 솰라솰라 외국말을 한 것 같은 외모의 라정애는 유창한 사투리로 코치에게 물었다.
“ 샘, 근데 언니들은 어딨어요? 와 우리만 있는교? “
“ 어 고학년들은 오늘 쉬라고 캤다. 느그 때문에 정신없을 것 같아서 오늘은 안 온다. 내일부터 올끼다. 자자 그라믄 이제 가져온 탁구 빠따 함 들어봐라. “
애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똑같이 생긴 네모난 탁구라켓을 들고 왔고, 이진이만 동그란 라켓을 들고 있었다.
“ 자자, 바로 스윙 함 배워볼까? 양팔 앞뒤로 벌리고 넓혀봐라. 스윙 연습하다가 대가리 깨지면 약도 없다. 널찍하게 서봐라. “
그리고는 코치는 애들에게 자신의 네모난 라켓을 들고 라켓을 잡는 법을 알려 주었다.
“ 저기 키 큰 놈 빼고 다 네모난 거 갖고 왔네. 네모난 거는 펜홀더 라켓이라고 부른다. 잡을 때 이케 오케이 하는 손가락 모양을 만들어봐라. 그 와 있잖아 미군들 잘하는 거 OK 말이다. 오케이 해 갖고, 여기 빠따에 볼록하게 나온 부분에 엄지캉 검지캉 서로 손가락끼리 만나게 하는기라. 나머지 손가락은 빠따 뒤판에 가지런히 세우는 기다. 자아 함 해봐라 샘이 봐줄게. “
박애경은 단번에 알아듣고 라켓을 제대로 잡았다. 단 짤뚱한 손가락이 너무 작아 엄지와 검지가 만나지 못하고 걸터지게 위태롭게 잡혔다. 나머지 아이들은 라켓 잡는 법이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으니 우왕좌왕 난리가 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코치는 서두르지 않았다. 소리도 지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오른손에 잡힌 펜홀더 라켓의 글립 모양을 애들이 볼 수 있도록 손을 들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자신만의 시간을 주어 엉망이더라도 스스로 해 보도록 두었다. 그리고 한참 후 한 명씩 일일이 손가락을 고정시켜주었고, 마지막으로 이진이의 라켓을 잡는 법도 알려주었다. 그 모습이 애경에게 신뢰를 주었다. 왠지 프로다워 보였다. 첫 이미지와 다르게 조금 아주 조금 멋쪄 보이기까지 했다.
“ 니는 어디서 셰이크 라켓을 구해왔노? 구하기 힘들었을 긴데. 니는 묵찌빠 할 때 찌 내듯이 손가락을 이케 내밀고 잡으면 된다. 셰이크는 잡기는 쉽다. 자 이케 해봐라. “
코치의 말대로 이진이는 쉽게 셰이크라켓을 잡자, 손가락이 꺾일 듯이 아픈 펜홀더 그립의 아이들이 부러움의 환성을 터트렸다.
“ 야~ 니는 어디서 났는데?”
“ 야, 니는 조켔다. 내캉 바꾸자. “
“ 니는 고무가 양쪽 다 붙어있네, 마이 비싸게 줬는갑네. 조켔다 야~. “
이진이는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이 왠지 싫지 않았고, 가위 바위 보에서 항상 가위만 내는 이진이에게는 정말이지 라켓을 잡는 게 쉬웠다.
“ 자자 이제부터 스윙 연습을 바로 시작할끼다. 펜홀더는 라켓 잡는 거 까먹었으면 오케이 손가락 만들어서 라켓 앞부분을 집게처럼 꽉 잡고 나머지 손가락을 라켓 뒤쪽으로 가지런히 힘 빼고 올린다. 처음에는 다 어렵다. 개안타 자 함 잡아봐라. “
금새 까먹고 갸우뚱 거리는 애들에게 코치는 바로 스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 빠따 잡는 것만큼 자세도 중요한기라. 기본이 좋아야 실력이 금방 느는기라. 다리를 지 어깨너비만큼 다리만 벌리고, 무릎 약간 숙이고 허리도 약간 숙이고, 궁디는 너무 빼지 말고, 야 니는 와 양말 안 신고 무신 샌달이고? 내일부터 양말캉 운동화 신고 온나 알았재? “
“ 네예. “
좀 전에 손을 들어 당차게 질문했던 외국인같이 생긴 라정애기가 죽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라정애 엄마는 부대 근처에서 탁주 파는 예쁜 아줌마이다. 라정애의 아빠가 누군인지는 소문만 무성하고 아무도 모른다.
“ 자자 라켓을 샘처럼 옆구리 하고 어깨 중간쯤까지 올린다. 다른 손은 가볍게 주먹 쥐고 배꼽 위에 올린다. 옳지 이게 준비자세인기라. 그다음 라켓을 이마까지 올리는 기다. 알겠나? 하나에 준비자세, 둘에 이마까지 라켓 올리는기다. 자아 준비. “
“ 하나, 둘, 다시 하나, 둘, 다시 하나, 둘. 에헤이 박애경 빼고 다아 엉망이네, 박애경 니가 앞에 나온나. “
“ 자 다들 박애경 보고 따라 해라 박애경 구령 붙이면서 스윙해 봐라. “
애경은 지도 잘하는 게 아닌데 애들 앞으로 나가 친구들을 마주 보고 구령을 붙이며 야무지게 스윙을 하려니 온 몸이 후달렸다. 코치는 돌아다니면서 애들의 자세를 고쳐 주었지만 금새 엉망진창이 되었다.
“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애들의 각양각색의 옷차림만큼이나 스윙하는 자세도 다양했다. 분홍 머리띠에 분홍색 꽃구두를 신고 온 강미옥은 공부만 잘했지 운동신경은 빵점이었지만 구령에 리듬을 탔는지 자신의 스윙에 심취해서 궁뎅이를 실룩실룩 춤을 추는 것처럼 흔들어댔다.
엄마가 시장에서 고추장사를 한다는 늦둥이 막내 구순옥은 라켓 잡는 법을 금새 까먹고 밥주걱 쥐는 듯 잡고는 배꼽 주변으로 팔만 흔들어댔다.
아빠가 매일 경운기로 학교까지 태워 주는 왼손잡이 원득연이는 오른손잡이가 친구들 따라 하느라고 스윙이 올라갈 때 힘을 가하지 않고 이마에서 내려오는데 힘을 가하는 폼이 결전의 무사처럼 내리치고 있었다.
득연이 아빠는 소문난 심마니다. 귀한 약재를 구하려는 약재상 골목에 득연이 아빠가 등짐 한가득 메고 나타나면 동네가 시끌시끌 해진다. 다들 골목 바닥에서 옹기종기 썰던 약재를 집어던지고 아는 체를 하며 자기 집으로 낚아채어 들어가려고 난리가 난다. 아들만 셋 낳고 당신 똑 닮은 막내딸 얻었다고 이름 지은 득연이를 위해서면 하늘의 산삼도 캐 줄 아빠이다.
코치는 애들의 엉망진창 스윙의 진풍경을 보고도 냅두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처음에는 자세교정을 시키다가 팔짱을 끼고는 구경만 했다. 박애경도 서서히 스윙 자세가 흐트러졌고, 애들은 흔들어대는 팔이 아팠는지 팔은 점점 내려가서 라켓으로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한참을 두고 보던 코치는 잠깐의 휴식 시간만을 주고는 이번에는 이진이를 앞에 세워 구령을 붙이게 하고는 또 한참을 스윙연습을 시켰고 드디어 애들의 입에서 낑낑대는 소리가 나오자,
“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집에 가서 거울보고 백개씩 연습하고 내일 또 온나 알았재? 그리고 박애경이캉 이진이는 남아봐라. “
생에 처음 구기종목이라는 것을 접해 본 아이들은 뭘 했는지도 금새 잊고 끝났다는 기쁨에 소리 지르며 강당을 뛰쳐나갔다. 남은 애경이와 이진이는 왜 남겨졌는지도 모른 채 책가방을 메고 코치샘을 기다렸다.
코치샘은 강당에 어울리지 않게 달랑 하나 있는 책상 서랍을 열어 라켓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 박애경 니 탁구 계속할 거가? 계속 할꺼재? “
“ 네, 할 건데요. “
“ 그라면 니 앞으로 이걸로 해 봐라. 니 라켓은 집에 가져가고 이걸로 해봐라. “
코치샘은 작고 동그랗게 생긴 펜홀더 라켓을 내밀었다. 다른 라켓의 고무는 맨들맨들한 것과 달리 고무면이 오돌오돌하게 촘촘히 박혀 있었다.
“ 이거는 전진 속곡형 고무가 붙은 오목대 라켓이라고 카는 건데, 니캉 어울릴 것 같다. 니 키는 작은데 다부작지게 스윙하는 거 보니까 이게 어울릴끼다. 자 받아라. “
애경은 라켓을 받았다. 누가 썼던 건지는 몰라도 나무가 단단해 보이는게 마음에 들었다. 배불뚝이 코치의 탁월한 선택이 앞으로 애경이 라켓을 놓을 때까지 함께 할 진전 공격형 라켓이라는 것을 그때의 애경은 몰랐다.
그리고 코치샘은 이진이의 라켓을 다시금 만져보며 물었다.
“ 이진이, 니 이거 어디서 구했노? “
“ 와예? “
“ 이거는 수비형 라켓으로 아무 데서나 구하기 힘든데, 이거는 체육사에도 안 팔긴데 니 어디서 샀노?”
“ 몰라예. 울 엄마가 구해줬스예. 엄마가 미군부대 물건 팔거든요. 아마 거서 구한 것 같은데예. “
“ 글라? 잘됐네, 니는 키도 크고 등발도 있으니까, 앞으로 수비해라. 잘 어울릴끼다. “
“ 예? 저는 탁구 오래 안할낀데요. 운동하기 싫은데요. “
“ 그라믄 말라꼬 왔노? “
“ 그건 짝궁 박철이 내 몰래 내 손 들어 올려서 된기라예, 그카고 엄마도 좋다고 시켰고예. “
“ 그라믄 됐지 뭐. 해 봐라. 니도 잘할끼다. “
애경은 양손에 라켓을 들고 신이 나서 강당을 나왔고, 이진이는 책가방 속에 라켓을 쿡 처넣고 털래털래 걸어 나왔다.
애경이가 신이 난 목소리로 이진이에게 말을 건넸다.
“ 니 집이 어딘데? 나는 학교에서 안 멀다. 저기 약쟁이 동네 있재 거가 내 집이다. “
“ 글라? 나는 약쟁이 동네 지나서 군부대 지나가야 내 집이다. “
“ 글라? 그카믄 같이 가믄 되겠네, 가자 집에. “
이진이의 어깨까지 밖에 오지 않는 애경이가 지 라켓을 가방에 넣어달라며 이진이에게 부탁을 했다. 애경보다 머리통이 하나가 더 큰 이진이는 애경의 몸집만 한 큰 가방의 윗부분을 쉽게 열어 코치가 준 라켓과 애경의 라켓을 나란히 넣어주었다. 애경은 이진이가 그냥 마음에 들었다. 자그마한 손을 내밀어 이진이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았다. 이진이는 깊은 보조개로 웃어대며 다가오는 애경이가 귀여워 거절할 리유가 없었다.
강당 옆 느티나무는 더 이상 무서운 존재도 아니었다. 나무크기만큼이나 요란스럽게 매미들도 둘이 친구 됨을 축하해 주었고, 둘은 예전부터 친구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맞잡은 손을 신나게 흔들며 교문을 나섰다. 그 모습을 지대범은 나무 뒤에서 몸을 숨긴 채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