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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경기

by 길이

체육사 아저씨가 애경이의 치수를 잘못 잰 것이 분명하다. 이진이는 저렇게 잘 어울리는데 애경이의 체육복은 허수아비에게 잠바를 걸쳐 놓은 것처럼 통도 길이도 전부 너무 크다. 다른 애들이 애경이가 입은 것을 보고 낄낄거리며 놀려댔다.


“ 애경이 니 코치샘 옷 입었나? ”


“ 아이다. 개안타. 금방 클 거라서 아저씨가 일부러 크게 만들었다. 니그들 괜히 놀리고 그카지마라. "


애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체육사 아저씨가 먼저 선수를 쳤다. 어른들은 애경이에게 늘 괜찮다고 클 거라며 항상 큰 것을 입힌다. 그나저나 이진이의 팔다리는 정말이지 티비에 나오는 외국 배우같이 길다. 부러운 지지배이다.


“ 자자, 이제 드디어 보름 뒤 첫 시합에 출전한다. 이게 아주 큰 대회인기라. 갱상북도에 있는 국민핵교, 중핵교, 고등핵교 선수들이 다 참가하는 아주 큰 경기인기라. 6학년도 있지만 느그들 실력이면 충분히 등수 안에 들 수 있다. 개인전하고 복식하고 단체전까지 할라믄 잘 묵고 아프지 말고, 체력관리도 잘 해야하는기라 알겠나? “


“ 네! “


“ 그래서 샘이 특별히 오늘 보양식을 준비했다. 이따가 오후에 닭도리탕을 줄끼다. 집에 가서 밥 안 먹어도 될 정도로 어마하게 많이 만들었으니까 기대해라. “


“ 와아~ “


애들은 닭고기라는 말에 신이 났다. 이진이는 닭고기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닭귀신이라 벌써부터 군침이 돌았다. 그렇게 코치는 닭도리탕의 맛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빡시게 공포의 볼박스를 시작했다.


“ 우리 이진이, 샘 하고 가볍게 볼 박스 세통만 할까? “


“ 더 더 안 가나, 또또 팔만 나간다. 그 긴 다리는 어디다 쓸라고 꼼짝도 안 하노? 안 움직이나? “


저 놈의 배불뚝이 코치는 이진이가 오학년이 되어도 처음 가르칠 때 부터 했던 똑같은 잔소리만 해댄다.


‘자꾸 움직이라고 카는데, 내가 신도 아니고 대각선 코너로 날아오는 공을 계속 우째 받냐고, 지는 하지도 못할거면서. '


이진이는 속으로 툴툴대며 긴 팔을 최대한 활용했고, 눈치가 백단인 코치는 어김없이 공을 후려갈기며 큰 소리를 냈다.


“ 마~ 니 얼굴로 욕하는 거 다 빈다. 빨리 움직이라고~ “


그렇게 세 통만 하자는 볼 박스는 한 통 더 보너스로 하고 나서야 닭도리탕을 먹을 수 있었다. 애들은 오매불망 기다리던 고기에 환장을 하고 덤볐다.


“ 왜캐 맛나노? 태어나서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는데. 맞재 맞재? “


시장통에 사는 구순옥이 꾀도 없이 먹으면서 조잘조잘 수다를 떠는 동안, 이진이는 전략적으로 조용히 좋아하는 다리 부분과 날개 부분을 골라내며 신나게 먹어댔다. 순옥이 말대로 쫄깃하고 달달한 간장맛이 환상적이었다. 달달한 닭에 잔뼈가 너무 많아 발골하는데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양이 넉넉해서 코치 말대로 실컷 먹을 수 있었다. 거기다가 웬일로 코치는 닭도리탕만 먹이고 오늘의 훈련을 마쳤다.

붉은 가을 노을이 지려고 폼을 잡는 교문을 나서니 배가 불러서 그런가, 훈련을 일찍 마쳐서 그런가, 세상이 괜찮아 보였다. 이진이는 같이 걷는 애경이에게 하늘색이 근사하다. 닭고기는 진짜 맛있었다. 유니폼 색깔이 하늘색이라 너무 촌스럽다. 니 생각은 어땠니 하며 수다를 떨어도 애경이는 그냥 건성으로 대답하며 생각이 많은 얼굴이었다.


“ 니 와 그라는데? 와? “


“ 어… 내 좀 긴장된다. 시합.”


“ 아이고마~ 경북에서 니 같이 공 잘 다루는 아는 없을끼다. 걱정마라 니는 잘할끼다. “


“ 내 잘하고 싶다. 잘해야 하고. “


애경이가 탁구를 대하는 자세는 이진이와 달랐다. 악착같았다. 코치가 지적을 하면 쉬는 시간에도 큰 거울 앞에 서서 스윙을 교정했고, 서브가 너무 튄다 싶으면 혼자 볼 박스통을 들고 스피드하고 날렵한 서브가 나올 때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노력파에, 지능까지 높아 상대의 허점이 보이는 쪽을 미리 파악하고 잘도 공격하는 우리 중에는 단연 에이스였다.

“ 니는 그케 탁구가 재밌나? 나는 맨날 똑같이 공만 주고받고 하는 게 지겨운데. “


“ 나는 재밌다. 내가 계산한 대로 공이 가고 오는 게 딱 맞아떨어지면 기분이 좋다. 그리고 잘해서 울 아빠 왼팔도 고쳐주고 싶다. “


“ 맞나? 니는 잘 할끼다. 이번 시합 일등 해 뿌라. “


“ 니도 수비 중에 최고일끼다. 니도 일등 해 뿌라. “


그렇게 두 소녀는 서로를 응원하며 서로 손을 잡고 노을 지는 동네로 향했다.


문경의 경기장까지는 농협에서 빌려 준 봉고차를 타고 갔다. 문경새재를 넘어 고불고불한 산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거리며 비포장도로까지 흔들어주니 일곱 명의 선수들은 당연히 멀미에 시달렸다. 다행히 애경이는 어제 저녁에 지대범이 수줍게 건네준 꿀에 절여 말린 쌉싸름한 홍삼을 아껴 씹으며 멀미가 멀미인지도 모르고 경기장에 도착했다. 경기장은 문경 체육관이었다. 체육관 바닥은 썩은 나무가 일어나 가끔 낡은 운동화를 뚫고 들어오는 자신들의 체육관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맨들맨들하면서도 미끄러지지 않게 끈끈하게 칠해진 나무 바닥에 아침인데도 실내 전등을 환하게 켜놓은 게 정말 경기장 같은 체육관이었다.

체육관 앞에 붙여져 있는 ‘(환) 제10회 경북 탁구 선수권 대회 (영) ’ 현수막을 본 어린 선수들은 멀미는 싹 사라지고 심장이 콩딱대기 시작했다. 체육관 안에는 이미 일찍 도착한 다른 팀들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똑딱똑딱 정신없는 울려 퍼지는 맑은 탁구공 소리와, 선수들의 운동화가 나무바닥에 끌리면서 내는 마찰 소리가 ‘ 삐이익 삐이이익‘ 들리는 게 애경이를 흥분시키기는 충분했다. 물론 옆에 있는 이진이도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이런 근사한 곳에서 생에 처음 탁구경기를 치른다니 어지럼증이 올라왔다.


“ 자자, 바로 각자 준비운동하고 탁구대 아무 데나 껴 들어가서 연습해라. 한 시간 뒤면 경기 시작이라 연습 시간이 얼마 없다. 빨리 서둘러라. “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먼 길까지 멀미를 하며 온 것도 잊은 채 코치에 말에 선수들은 서둘러 가방에서 라켓과 공을 꺼냈다. 가볍게 몸을 푼 뒤 만만해 보이는 선수들이 연습하는 탁구대에 끼어들어 포핸드 연결로 연습을 시작했다. 낯선 선수들 북적대는 틈에 끼어들어 공을 치는 것이 낯설고 부끄러워 이진이는 쭈삣거렸지만, 애경이는 망설임 없이 작은 키를 이용하여 쏙 끼어들어 이진이에게 잘도 공을 넘겼다. 그렇게 애경이는 경기장의 감각을 익히려고 집중했고, 이진이는 어색한 부끄러움과 주변 구경에 정신이 산만해져 공은 대충 쳐댔다.

한쪽 벽면에는 크게 개인전 복식 단체전 대진표가 빼곡하게 붙여져 있었다. 홍코치는 선수들 이름을 일일이 찾아서 경기 시간과 상대 선수 이름 및 학교를 자신의 비밀 노트에 적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기대되는 박애경과 이진이 이름을 8강까지 예상하며 적어 두었다.

코치의 예상은 적중했다. 박애경은 1회전부터 날카로운 서브와 전진 속공형 공격으로 3구안에 끝내기로 가볍게 점수를 획득하고 특별한 체력소모 없이 8강에 진출했다. 이진이는 다른 팀에서 진짜 국민학교 5학년이 맞냐며 호적을 때서 오라는 항의가 들어올 정도로 긴 팔로 수비의 장점인 공을 깎아 버려 상대의 공격은 매번 네트에 꼬그라지고 말았다. 이진이는 신바람이 났다. 연습은 지겹고 힘들기만 했는데, 경기는 하면 할수록 이기는 재미가 솔솔 했다.

강미옥이는 울릉도 섬마을 촌놈에게 사정없이 발려져 1회전에서 떨어졌다. 라정애는 2회전에 무적의 계림국민학교 5학년에게 발려 버렸다. 운 좋게 16강까지 올라간 구순옥도 계림국민학교 선수에게 잡혔다. 원득연의 왼손잡이 포핸드 드라이브는 어려운 구질이 공이었고 상대선수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상대 선수는 역공으로 회전되는 왼손의 공격에 쉽게 무너져 예상밖의 선전으로 8강에 입성했다. 홍코치는 신이 났다. 넓은 체육관에서 맗은 선수들 중 박애경과 이진이는 다른 팀 코치의 눈에 띄었고, 홍코치는 그에 따른 인사를 받느라 바빴다.


“ 우와 니 어디서 저런 놈들을 구했노? 5학년들이 왜캐 잘하노? 쪼매한 게 억시로 다부작치게 공격하네. 쟈는 수비수가 공격도 곧잘하네. 이거 계림국민학교캉 맞먹겠는데, 대단하네 홍코치. 아직 살아있네. “


홍코치는 싱글벙글 신이 났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계획한 대로 플레이를 펼치는 박애경의 놀라운 경기운영 능력에 보물을 발견했다는 생각에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이진이는 8강에서 박애경과 붙었다. 결과는 2대 0으로 일방적인 애경이의 승리였다. 애경이는 이진이의 수비 공을 진즉에 다 파악하고 있었고, 이진이가 큰 키에 비해 깊게 찌르는 공을 팔로만 움직여 받으려는 잘못된 습관도 잘 알고 있었다. 그에 비해 이진이는 애경이의 오목대 공격이 너무 빨라 경기자체가 재미가 없었다. 상대가 드라이브를 걸어줘야 그것을 역공으로 깎아내는 것이 수비수의 맛인데 애경이는 모든 공을 전진 속공형으로 쳐 버리니 이진이가 이길 재간이 없었다.

애경이는 한점도 헛으로 봐주지 않았고 이진이는 속으로 연신 ' 못된 지지배, 독한 지지배 ' 라고 욕하며 공 줍기에 바빴다.


드디어 박애경의 준결승전이 시작됐다. 새벽부터 일어나 먼 길까지 덜컹대는 봉고를 타고 와서 몇 게임째인지, 애경이는 지대범이 준 말린 홍삼을 꼭꼭 씹으며 어떤 식으로 경기를 이끌어가야 할지 작전을 구상했다. 상대는 전국에서 이미 소문이 난 계림국민학교 일짱 김소희였다. 계림 초등학교 탁구부는 신설팀으로 2학년 때부터 수업도 빼먹고 훈련만 시켰고 천년고도 경주 교육청의 지원을 빵빵하게 받아 3학년때부터는 전국대회를 다닌 전국파로, 시골 촌뜨기 영춘국민학교와는 급이 달랐다. 그중에서도 김소희는 이미 탁구계에 소문난 괴물소녀였다. 신체조건도 월등히 우월한 김소희는 공의 파워도 남자선수에 버금가는 힘이 실려있다. 그런 괴물 소녀를 상대하기에는 애경이는 모든 조건에서 밀렸다.

하지만 애경은 자신이 작다는 것에 핑계되지 않았고 악착스럽게 집중 했다. 매번 파이팅을 외쳤다. 김소희는 애경의 속공 공격을 기계적인 자동반사신경으로 받아넘겼다. 그건 엄청난 반복적인 훈련의 자동반사였다. 장딴지 근육까지 단단한 김소희의 드라이브는 묵직했다. 아등바등 받아넘기려고 애를 쓰는 박애경은 크게 점수 차이 없이 잘 버티며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데도 보는 이들은 괜히 안쓰러워 보였다. 그럼에도 애경이는 흔들리지않고 악착같았다.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첫 세트는 21대 17로 패했다. 2세트째 박애경은 공격에 과감함을 더했다. 특기인 상대 코스 깊숙이 빠른 승부수를 내려는 작전을 썼다. 랠리가 길어지면 손해라는 것을 첫 세트에서 파악했다. 로봇 같은 상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애경이는 야무지게 꽉 다문 보조개만큼이나 흔들림 없이 짧게 서브를 넣고 삼구에 빠른 속공과 깊숙한 코스로 몰아 승리의 점수를 차곡차곡 쌓았다. 드디어 놀라운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전국 최강 김소희에게 2세트를 19대 21로 이긴 것이다. 체육관 안은 두 국민학생의 마지막 3세트 경기에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홍코치는 흥분했고 애경이는 흔들리지 않았다. 상대코치는 김소희에게 윽박을 지르고 있었고 김소희는 화가 난 표정이었다. 그때 관중석에서 아저씨 한 명이 소리를 질러댔다.


“김소희 너 정신 안 차려? 너 지고 나오기만 해 봐.”


김소희가 땀을 닦으며 고개를 잠시 숙였다. 그 아저씨는 딸의 탁구에 자신의 백수 인생을 건 김소희 아빠였다.

3세트 시작부터는 서브를 먼저 넣는 쪽이 점수를 따기 시작했다. 박애경은 속공형 공격으로 계속 승부를 봤고 김소희는 화려한 스카이 서브에 이은 파워풀한 포핸드 드라이브로 코스를 찔러 애경이가 겨우 받아넘기면 사정없이 스매싱으로 끝을 내 버렸다. 박애경은 코치의 드라이브 외에는 비슷한 파워의 드라이브를 받은 적이 없었다. 김소희의 파워풀한 플레이와 숙련된 경기진행 능력에 결국 21대 15로 패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한 세트라도 이긴 것에 홍코치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애경은 다짐했다. 다음에는 꼭 이길 것이라고. 머릿속에 자신의 단점과 상대의 단점을 메모리해 두었다.


영춘국민학교 교장실에는 개인전 3등의 트로피 하나에 교장선생님은 트로피를 만지며 매우 흐뭇해하시며 다음에는 토끼가 아닌 흑염소로 보양식을 준비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닭도리탕이 아닌 깜순이 토끼 삼형제를 먹었다는 충격에 이진이는 잔뼈를 발라냈던 입안의 느낌이 다시금 까칠하게 전해졌다. 오뎅반찬의 섞은 생선 눈깔 맛이 갑자기 빈 속을 치고 올라와 교장실을 뛰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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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