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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소년체전 선발

by 길이

“ 소년체전 선발전이 얼마 안 남았다. 계림국민학교 보다 더 많이 선발돼서 이번에는 꼭 울 핵교가 주축이 되어 합숙훈련의 기회를 얻도록 최선을 다하는기다. 알겠나? “


아롱이 다롱이 그리고 깜순이를 살해하고 잔인하게 먹히게 했던 코치 놈에게 언젠가는 꼭 복수를 할 것을 다짐하여 이진이는 지겨운 연습을 시작했다. 복수를 눈치챘는지 코치는 박애경, 원득연, 주순옥 그리고 이진이를 아주 못살게 괴롭혔다. 선발전까지는 아직 보름이나 남았는데 네 명만 데리고 하드트레이닝에 돌입을 한 것이다. 박애경은 지난 첫 경기 이후 플레이가 달라졌다. 코치에 볼박스 말고도 같이 랠리를 하는 연습으로 달라고 주문했다. 계림초등학교 괴물소녀 김소희의 드라이브와 스매싱은 어린 소녀의 파워라고는 보고도 믿기지 않은 힘이었다. 그런 공을 받아봐야지 다음에는 이길 수 있을 것이라며, 애경이는 코치와 하는 랠리연습을 선호했다. 그리고 이진이에게는 묻지도 않은 약속까지 했다.


“ 내 시합해 보니까 할만하더라. 내 힘만 쪼매만 더 키우고, 받는 연습만 쫌만 더하면 다음번에는 이길 수 있을끼다. 함 봐라 담에는 꼭 이길끼다. “


뭐든지 계획을 짜고 실행하는 애경이가 이진이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애경이는 이진이의 이해를 바라지도 않았다. 단지 자신의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 입 밖으로 한번 더 다짐을 외쳤을 뿐이었다.

경기가 끝났으면 쉬었다가 해야지. 벌써부터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박애경의 뇌는 찐친이지만 이진이와는 극반대의 성향이었다. 이진이는 코치의 밀착 지도가 싫지만, 전국소년체전 경북대표로 선발은 되고 싶은 욕심은 있었다. 애경은 노력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다며 다른 애들처럼 애처럼 굴지 말고 생각하고 노력하고 실천하라고 교탁 위 교훈을 읊조렸다. 키도 이진이보다 훨씬 작은 게 속에는 노친네가 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 이진이, 니 드라이브 스윙이 너무 크다고 몇 번을 말했노? 스윙이 너무 크면 임팩트가 없다고 안했나? 드라이브를 무신 롱커트 하듯이 길게 뽑노? 왕서방 짜장면 뽑나? 고마 짧게 끊고 공을 걸어올리는 순간에만 힘을 주라카이. "


코치는 이진이의 백핸드 서브의 회전력의 장점을 살려 3구에서 공격으로 득점하는 연습을 가르치고 있었다.

“ 니가 수비라고 수비만 하는 게 아니라고 했째? 서브가 그케 좋은데 와 커트만 하노, 리시브가 봉~ 떠서 넘어오면 고마 세리 빵가야지. 키도 크니까 드라이브도 잘 걸릴끼다. 샘 말만 믿고 제대로 함 해봐라. “


이진이도 공격을 배우는 것에는 찬성이다. 지루하게 상대 실수를 유발하며 점수를 획득하는 수비수는 끈기가 필요한데 이진이가 그러기에는 엄마의 한방을 닮았다. 그리고 본인이 생각해도 백핸드 서브가 왼쪽으로 회전을 하다가 마지막에 오른쪽으로 살짝 튀어 오르는 게 취권의 예상밖의 공격처럼 나름 있어 보여서 스스로도 서브에는 정성을 들여 연습을 하는 편이었다.

“ 다음, 박애경. “


“ 짧게 오는 리시브 받고 샘이 아무데나 치면 4구까지 받아내는 연습이다. 알겠나? “


“ 네! “


짧은 서브를 리시브하려고 뒤꿈치까지 세워 탁구대 네트 가까이에 팔을 뻗는 뒤태가 앙증맞다. 공격이 들어오는 3구를 상대의 라켓의 방향만 보고 캐치하는 민첩함은 국민학교 선수답지 않게 노련하다. 움직일 때마다 탁구화가 바닥에 끌리는 삐이익 소리도 야무진 박애경은 단신의 단점을 온몸을 동원해서 커버할 줄 아는 선수이다.


드디어 선발 전, 경주 성신여중고 강당에서 하루만 열렸다. 학교는 두동으로 각각 5층까지 있었으며, 특이하게 성당도 있었다. 2층에 위치한 구조의 강당은 관중석까지 동원된 넓고 깔끔한 나무바닥으로, 왜 성신여중고 탁구부가 명문팀인지를 알게 해 주었다.

교장선생님은 농협장 그리고 지대범 할아버지까지 데리고 선발전을 응원하러 경주까지 따라왔다. 지난 경기 때 박애경이 몰래몰래 씹어댔던 홍삼의 출처를 알게 된 홍코치는 교장선생님께 일러바쳤고, 교장선생님은 홍삼의 위력을 농협장에게, 농협장은 지인인 지대범 할아버지를 자신의 후임으로 영천시 탁구협회 회장이 될 수 있도록 협조를 하겠다며 꼬드겨서 홍삼외에도 흑염소 진액까지 후원을 수시로 받아내고 있다.

선발전에는 모든 선수들이 참가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학교당 최대 4명까지만 출전을 할 수 있었다. 8명의 대표 선발은 리그전 형식으로 진행이 되는데, 굳이 실력이 삐꾸인 선수까지 넣어 우수 선수들의 불필요한 에너지를 빼앗을 필요는 없다는 게 협회 측의 판단이었다. 그렇게 4개 조로 각 조의 1,2등만 선발하는 기준을 두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국민의 시선을 해외여행과 스포츠에 돌리기 작전을 가동하는 시기였다.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야금야금 박탈당하고 있었는데, 학교마다 운동부는 우후죽순 생기고 있었다. 탁구 또한 국민학교 여자부 말고도 남자부에 중학부까지 선수들에 관련 사람들까지 모이니, 큰 강당의 관중석까지 시끌시끌한 게 경상도 장날 같았다.


“ 자자, 이번에 전국소년체전이 바로 여기 천년의 고도 경주서 열리는기라. 우리 네 명이 싹 엔트리에 들어서 영춘국민핵교 탁구부의 명예를 되찾기만 하믄 이 교장샘이 물심양면으로 후원을 해 줄 것이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여 70년 역사를 갖은 우리핵교에서 훈련이 이루어질 있도록 다들 파이팅 하자. 그카고 이번에 선발되는 선수는 교장샘이 빠따 하나씩 일제로 사 줄 것이다. "


학교가 탁구부로 인한 명예가 있었나? 선배들은 다들 빌빌대니 학부모들이 "도"도 "계"도 안된다며 윷판 뒤집듯 선배 부원들을 다 때려치우게 만들었고 당시 코치도 쫓겨났었다. 하지만 학교마다 육상부 외에 다른 종목을 강제로 유지해야하는 시기라 곧장 교장선생님은 홍코치를 수소문해서 뽑았고 그 결과물이 박애경의 3등, 영춘국민학교 개교이례 최고의 성적이었다. 교장선생님은 허언증 환자처럼 전적이 없는 탁구부 명예를 운운하며 흥분해 있었다.

암흑정권의 후진국답게 당시 운동부는 수업도 참석시키지 않고, 아침부터 밤까지 일요일도 방학도 없이 운동만 시켰다. 그 지루한 일상의 피해자는 이진이였고, 수혜자 박애경은 탁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도 교장 선생님의 일제 빠따 공약은 이진이 마음에 들었다. 쥐새끼가 파먹은 것처럼 모서리가 깎여있는 라켓의 나무 가루가 탁구대 위에 떨어지는 게 짜증 나는 중이었는데, 새 라켓과 애경이와 함께 합숙하면 밤에 같이 나란히 별구경도 하고 좋을 것 같다는 욕심이 살짝 나기 시작했다.


4개 조의 리그전 명단이 공개되었다. 이진이는 1조, 원득연 2조, 박애경 3조, 그리고 주순옥이 4조였다. 저번 경기에서 1,2,3,4등이 조마다 한 명씩 들어가 있었고, 1조에는 괴물소녀 김소희가 있었다. 김소희는 하나마나 일등일 건데, 이진이는 리그전을 하기전부터 힘이 빠졌다. 거기다가 하루 만에 9게임을 해야 한다니, 말라깽이 이진이가 무사히 아홉 경기를 치를 수 있을지 본인이 생각해도 불안해서 끔찍한 맛의 홍삼을 조금 뜯어 스스로 입에 넣었다.

경기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개최식 그런 것은 없었다. 단상에서 호명하는 선수는 대기하고 있다가 바로 해당 탁구대로 나갔다. 세트마다 21점을 먼저 득점해야 하고 3판 2 승제 경기이다.

지난 경기에 놀라운 신인선수로 두각을 나타내며 이미 소문난 괴물소녀와 동등한 실력을 펼친 박애경은 이번에는 플레이가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공 처리를 하였다. 공격의 속도감과 상대 코스를 찌르는 주특기는 더 날카로워졌고 무엇보다 공격을 당할 때도 속공형 플레이 답지 않게 잘도 받아넘겼다. 연습 때 코치를 괴롭히며 반복적으로 했던 방어훈련의 효과를 똑똑히 봤다. 뭐 그것도 상대가 될만한 실력일 경우였고 대부분 캐치가 빠른 박애경은 상대의 약점을 찾아 5구 전에 승부를 내 버렸고, 한 게임당 30분을 넘기지 않고 전 게임을 2대 0으로 깔끔하게 일등을 해버렸다. 박애경은 그렇게 또 성장해 있었다.

원득연이도 나름 선방은 했으나 같은 왼손잡이 청송 진보국민학교의 고진순에게 져서 아깝게 3등에 멈췄다. 2조에서는 계림국민학교 이지수가 일등 그리고 왜관에서 온 쌍둥이 고명자가 이등으로 선발되었다. 4조의 주순옥은 시원하게 꼴찌를 했다.

이진이가 있는 1조에는 안강국민학교 김주리는 같은 수비수가 있었다. 승률은 둘 다 같았고, 둘 중 이기는 선수가 최종 선발이 되는 중요한 경기였다. 물론 이진이는 괴물소녀와의 게임이 아직 남아있었지만 그 파워풀한 드라이브와 흔들림 없는 하체 힘에 이미 체력이 바닥난 이진이가 이길 확률은 토끼 삼 형제가 살아 돌아올 만큼 꿈꾸는 상상이라는 걸 이진이도 안다.

안강에서 온 김주리는 차분하게 특별한 것 없는 플레이를 펼쳤다. 그건 수비수의 가장 필요한 기본이기도 하다. 1세트는 이진이가 이겼다. 2세트는 차분한 성격의 김주리가 이진이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듯 전략을 바꾸어 오직 수비에만, 커트로만 넘겼다. 이진이가 일부러 공격을 유도하려고 공을 치기 좋게 띄워서 보내도 커트만 했다. 아마도 상대 코치가 이진이의 급한 성격과 비실한 체력을 캐치 한 모양이었다. 결국 2세트는 두 수비수의 지루한 랠리로 인하여 17대 18 이진이가 두 점 뒤쳐진 상황에서 서브 넣는 선수가 13안에 득점을 내야 하는 촉진게임으로 들어가 버렸다.

바로 이진이 서브였다. 상대가 14구를 넘기며 자동으로 상대득점으로 이어져 버린다. 수비수가 리시브를 하면서 14구이상 넘기는 것은 허다한 것이라 서브를 넣는 수비수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 이진이, 백핸드 서브 넣고 3구에 드라이브 걸지 말고 한방에 끝내야 한다. 알았재? 자자! 힘내고 파이팅! ”


홍코치는 벤치에서 궁뎅이를 들썩거리며 지쳐버린 이진이를 재촉했다. 이진이도 안다 3세트로 넘어가면 이진이가 불리하다는 것을, 상대와 실력은 비슷한데 체력은 월등히 이진이보다 나았다. 떡하니 버티고 있는 하체에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이진이는 벤치석의 코치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본인도 하체부실을 아는지라 2세트에서 이겨야겠다는 욕심에 잔머리를 굴리느라 바빴다. 상대가 어느 정도 구질을 익혀버린 백핸드 서브를 또 넣어 득점으로 이을 자신이 없었다. 결심했다. 서브자세를 백핸드 자세에서 포핸드 서브 자세로 바꾸어버렸다. 홍코치는 당황했다.


“ 야! 안돼 그냥 넣던 거 넣어. 야~ 이진이! “




그러나 이진이는 왼손에서 이미 공을 띄워버렸다. 저번 대회에서 남고 수비 선수가 넣는 포핸드 서브를 보고 훅 당겨서 그 서브를 연습 때 코치 몰래 흉내 내며 연습을 했었다. 그걸 갑자기 시도한 것이다. 벤치의 홍코치는 너무 놀라 벌떡 일어나서 얼어버렸다. 놀란 것은 상대 김주리도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포인트에서 갑자기 생뚱맞은 자세로 서브를 넣는 것에 당황했다. 무모할 정도로 과감한 한방 서브는 역 회전력은 좋았으나 봉 떠서 상대가 치기 좋게 넘어갔다. 하지만 난생처음 받는 역회전 서브에 김주리는 어이없게 실책을 하고 말았다. 관중석에 웃음소리가 들렸다. 18대 18 동점이 되었다.

코치는 미친 듯이 득점의 순간 괴성을 지르다가, 금세 이진이에게 차분하게 14구까지만 버티라고 주문했다.

김주리의 서브가 넘어왔다. 서브 득점으로 들떠버렸던 이진이가 침착하지 못하게 리시브를 받아 공이 상대가 치기 좋게 넘어갔다. 김주리는 멈칫하다 공격을 놓쳤다. 수비 선수들의 커트 주고받기가 12부까지 갔다. 마지막 기회 13구 공격을 김주리가 시도하려다가 또다시 커트로 넘겼다. 그 공이 살짝 떠서 넘어왔다. 이제 14구를 넘기기만 하면 이진이의 자동 승점이 되는 포인트였다. 이진이 갑자기 포핸드 공격으로 툭하고 상대의 미들 쪽으로 쳐 버렸다. 그건 정말이지 불필요한 오버였다. 승리의 파이팅을 외치며 이진이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과감한 플레이였음을 반성했다. 19대 18 앞으로 2점만 더 따면 이진이의 승리, 전국소년체전 경북대표가 되는 것이었다. 교장선생님은 혈압이 걱정될 정도로 기립박수와 괴성을 질러댔다. 홍코치는 더 이상 이진이에게 작전상의 주문은 하지 않고, 양손바닥을 아래로 내리며 주문처럼 간절하게 애원했다.


” 차분하게, 차분하게, 이진이, 침착하게, 자자 파이팅! “


맞다. 코치말대로 차분하게 침착하게 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이상하게 긴장감은 사라지고 짜릿한 흥분에 빠져들고 있었다. 경기를 즐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차분하게 하라는 홍코치의 부탁 같은 주문을 무시하고 요상한 포핸드 서브를 또 넣었다. 홍코치의 차분하게의 뜻은 이상한 짓거리하지 말고 제발 하던 플레이만 하라는 주문인 것을 이진이는 알고 있었지만, 다시 포핸드 서브가 넣고 싶어 미치겠는 걸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상대는 여전히 낯선 서브에 당황해서 리시브는 붕 떠서 넘어왔고 이진이는 있는 힘껏 스매싱을 미들로 때려버려 상대는 라켓이 아닌 어깨로 공을 받아냈다.

매치 포인트, 20대 18 김주리는 울먹이려고 했다. 이진이는 눈물이 그렁하니 맺힌 상대를 안쓰러워하며 21대 18로 전국소년체전 경북 대표로 선발되었다.


새벽부터 첨성대까지 런닝이라니, 두 명의 젊은 코치가 앞 뒤로 낙오자 없이 뛰도록 선수들을 두줄로 세워서 뛰도록 하였다. 선두에는 경북의 에이스 박애경과 김소희가 뛰었고, 이진이는 이지수와 맨 뒤에서 툴툴대며 비몽사몽 끌려다녔다. 어김없이 이모네 식당에서 소고기 뭇국에 계란프라이를 먹고 합숙소에서 씻었다. 탁구라켓과 운동화 그리고 타월이 들어있는 운동가방을 들고 나가려고 하는데 어라 가방이 보이지 않는다. 그럴 리가 없는데 어딨지? 곧 연습시간인데 어디 뒀는지 그런데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다.


앗싸~ 너구리 보다는 역시 겔러그지. 뽕뽕하며 경쾌하게 총을 쏘대는 소리와 길게 누르면 연이은 연사가 한여름 물줄기처럼 시원하게 이진이를 매료시켰다. 어느 날 서울 훈남 코치가 선발 선수들을 데리고 계림국민학교 근처 오락실로 데리고 갔다. 영천, 왜관, 그리고 청송 진보에서 온 촌놈들을 너구리와 겔러그라는 신문명을 접하게 되었다. 인생 처음 우주를 접하는 순간이었다. 다른 애들은 너구리 잡는 것에 빠졌지만 이진이는 달랐다. 우주를 스무스하게 날아다니며 벌떼를 잡아먹으면 천하무적 레이저건이 쏟아져 나오며 내는 총성은 경쾌한 전자오르간 연주 같았다. 거머리 같은 우주벌레를 잡아먹는 짜릿함과 다음 레벨로 넘어갈 때 나오는 승리의 멜로디에 중독이 된 이진이는 겔러그에게 짤짤이를 자꾸 털렸다.

시합 일주일을 남겨두고 오래간만에 훈남 코치가 자유시간을 줬다. 6시까지 이모네 식당으로 오라고 했다. 시합 전 긴장을 풀어주는 자유시간이라고 했다. 이진이는 곧장 문방구로 달려가 쫀득이 두봉을 샀다. 국자(달고나)하는 애들 사이에 끼어들어 연탄불에 쫀득이를 살짝 구워 다시 봉지에 넣어 후다닥 오락실로 향했다. 일분이 아깝다. 동전 가득 교환해서 드디어 겔러그, 그 우주 속으로 입장한다. 뽕뽕 두두두 다다닥 띠로리~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코치에게 혼나기 전에 미친 듯이 이모네로 달려가 안전하게 세이브했다. 쫀득이의 달달 쫀쫀한 맛이 입안에 남아 이모가 차려준 된장국과 생선구이가 비리다. 깨작깨작 코치 눈치를 보며 먹순이 이지수에게 밥을 덜어냈다. 겔러그할 때 눈을 너무 돌렸나, 눈이 따가워 일찍 꿈속으로 빠졌다.


그래! 그 오락실에 운동가방을 두고 왔다. 오락실은 하교시간쯤에 열건데, 이진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망칠 방법이 없었다. 일단 예전에 쓰던 낡은 라켓 하나 딸랑 들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 이진이 너 왜 이렇게 공을 띄워서 보내? 어쭈 미스도 너무 많은 거 아냐? “


경북대표로 발탁된 선물로 교장선생님이 사준 새 라켓 버터플라이 일제를 오락실에 두고 왔다고 우째 말하나. 그립감이 좋았던 새 라켓을 꼴랑 한 달도 못쓰고 잃어버리다니, 이진이는 헛 라켓의 나무가루를 털며 식은땀을 닦았다.


“ 이진이 일루 와. 너 라켓 함 볼까? “


올 것이 왔다. 탁구대에 찍어서 라켓 한쪽은 부서졌고, 고무는 닳아서 맨들맨들해진 라켓을 최대한 공손하고 불쌍한 표정으로 코치에게 건넜다.


“ 너 라켓이 왜 이래? 니껀 어딨니? 이건 뭐니? “


훈남 코치의 짙은 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진이는 차마 오락실에서 잊어버렸다고 말할 수는 없어 고개만 푹 처박고 있었다.


“ 말 안 해? 너 똑바로 말 안 하면 니 학교로 돌려보낸다. “


평상시 상냥하고 개구진 코치의 표정은 진심 빡쳐 있었다. 거짓말이 들통나면 진짜 쫓겨날 것이고, 그럼 이진이는 홍코치와 교장샘에게 처형을 당할 것이 뻔하다. 아니 그전에 엄마손에 맞아 죽을 것이다.


“ 저…. 어제… 오락실에서… “


“뭐어? 오락실? 거기서 잃어버렸다고? “


이진이는 차마 ‘네’라는 답을 못하고 고개만 더 숙였다. 코치는 바로 교무실로 뛰어가 주변 상가의 전화번호부를 뒤져 오락실에 전화를 걸었지만 응답이 없었다. 교무실 행정담당에게 일주일 뒤에 열리는 전국소년체전에서 단식과 복식을 뛰어야 하는 에이스가 오락실에서 라켓을 잃어버렸다고 전하고 행정담당은 선생님들에게 전달하여 교실마다 어제 오락실에서 탁구라켓을 들어있는 운동가방을 본 사람이 있는지 조사에 들어갔다.

이진이는 고개를 숙인 자세 그대로 벌을 서고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비상사태를 걸어 학교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고, 늦잠 자는 오락실 주인까지 깨워 조사를 했지만, 결국 라켓은 찾지 못했다. 육상부를 맡고 있는 체육선생님이 체육관을 쳐들어왔다. 이번 전국소년체전 탁구부 일등을 따놓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교육청까지 큰소리쳐 놓은 탁구부의 감독까지 맡고 있는 체육선생님은 눈이 살짝 돌아가 있었다.


“ 야! 너 이진이, 니 오락실서 게임한다고 빠따를 잊어먹었다고? 니 미칫나? 니 이번에 일등 못하면 전부 니 탓인 줄 알아라 알겠나? “


가혹한 협박이었다.


“ 니 대답 안 하나? 니 오늘 함 사단 내보까? 알겠나? “


“ 네… “


" 김코치 지금 당장 대구에 가서 이전에 쓰던거캉 똑같은 빠따캉 고무 사온나. 돈은 교무실에서 줄텡께 우선 사온나. 영수증 꼭 챙기고. “


“ 넵! 알겠습니다. “


그렇게 이진이는 또 한 달 만에 새로운 일제 버터플라이 라켓과 새 탁구화를 선물로 받았지만 신나지 않았다. 똑같은 라켓에 똑같은 러버를 붙였는데도 손에 좀 전에 익혀지지가 않는다. 감독샘의 협박이 자꾸 떠올라 잘 때도 라켓을 잡고 잤다.

다른 손은 애경이가 잡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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