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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굽쇠 Apr 12. 2023

MBTI에 대한 오해 (10) :
가장 중요한 것

인간은 8가지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MBTI의 각 선호 경향이 갖는 일반적인 특징과 사람들이 오해하는 지점, 더욱 바람직한 이해 방식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글을 쭉 읽으면서 나름대로 비판적 사고를 해본 사람이라면 글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내가 ~유형이라고 해서 항상 ~한 것은 아닌데?”
“어떤 사람은 ~유형이지만 반대로 ~한 경우도 많던데?”


   자신을 보더라도, 주변 사람을 보더라도 E/I, N/S, T/F, J/P 모두 정확히 들어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례가 많은 사람도 떠올랐을 것이다. 당연하다. 내가 서두에서부터 미리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글을 쓰는 내내 지루하게 반복하게 될까봐 참고 있던 이야기가 남았기 때문이다. 이번 시리즈의 마지막은 그 이야기로 장식하고자 한다.






   MBTI를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하고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은 ‘모든 사람은 8가지의 얼굴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MBTI 검사결과를 통해 확인되는 유형은 그 사람의 에너지의 방향, 정보 인식, 판단 기능, 생활양식에서 어느 쪽을 더 선호해서 사용하는지를 의미할 뿐이다. 어느 한쪽의 점수가 높다는 것은 그 방식을 더 자주 편하게 사용한다는 뜻이지 무조건 강하게 선호한다거나 성숙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시 말해 검사 결과는 각 선호 경향의 우선순위, 비중적 우위를 나타낼 뿐이지 반대 성향이 아예 없다는 뜻이 아니다.


   또한 앞에서는 각각을 집중해서 이해하기 위해 선호 경향별로 나눠서 이야기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네 가지 선호 경향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어우러진다. 즉 E/I, N/S, T/F, J/P 각각이 갖는 특징도 있지만 실제로 사람의 성격에 반영될 때는 네 가지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각 유형이 보이는 큰 차원의 경향성은 있을 수 있지만 세부적으로 언제 어떤 기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떤 기능이 다른 기능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등은 사람마다 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른 MBTI 유형은 물론 같은 유형끼리도 당연히 차이점이 많은 것이다.


   특히 MBTI 정식 검사결과지를 보면 MBTI 유형의 일반적인 특징뿐만 아니라 그 유형의 주기능, 부기능, 삼차기능, 열등기능까지 소개되어있다. 각각은 각 유형이 가진 인식 기능(N/S)과 판단 기능(T/F) 중 어느 쪽을 더 선호하고 능숙하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4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주기능부터 순서대로 가장 자주 그리고 능숙하게 사용하는 기능이고 열등기능은 가장 서투르게 사용하는 기능이라고 보면 된다. 쉽게 말해 주기능과 보조기능이 주로 그 유형의 강점이라 할 수 있고, 열등기능은 약점이라 할 수 있다. 각 유형마다 네 가지 기능의 순서가 다르며 같은 순서라도 주기능, 부기능의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에 결국 16가지 유형이 서로 다른 방향과 우선순위의 기능을 갖는다.


   주기능부터 열등기능까지의 존재는 바꿔 말하면 인간이 성격을 형성하는 데 있어 어느 한 쪽의 선호 경향만 갖고 있지는 않다는 의미다. 어느 한 가지의 기능이 돋보일 수는 있지만 나머지 기능이 약할지언정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MBTI 검사 결과로 나온 유형만으로 자신이나 타인을 단편적으로 규정하면 안 된다. 검사 결과에 얽매여 자신의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와 개선을 주저하거나, 타인에게 특정 모습만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도 좋지 않다. 몇 장의 심리검사 결과로 간단히 묘사가 끝날 만큼 사람의 성격은 얕고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더 잘 알기 위해 했던 심리검사가 오히려 나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울타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앞선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심리 검사 결과를 받아들일 때는 ‘왜’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에 방점이 찍혀있어야 한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이 결과를 바탕으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지 등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과 비슷한 결과가 나왔더라도 자신만의 고유한 의미를 발견해낼 수 있고, 더 성숙하고 쌍방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길을 모색할 수 있다.






   한편 사람들이 자기 MBTI 유형의 주된 특징과 다른 행동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사회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앞 이야기도 어느 정도 연결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더 선호하고 편하게 사용하는 기능의 경향성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선호의 영역이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반대쪽 영역의 기능을 사용할 수도 있다. 오히려 그래야만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많다. 내향적인 사람이라도 때로는 자신감 있게 많은 사람과 대화해야 할 때가 있고, 평소 이성적으로만 판단하는 사람이라도 상대의 감정을 먼저 살펴야 할 때가 있고, 최소한의 계획으로 살던 사람이라도 꼼꼼한 계획을 세우며 실천해야 할 때가 있다.


   이때 자신의 주기능이 아니더라도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다른 기능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일수록 주변의 인정과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이 가진 특성을 잘 이해하면서도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어울리며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다듬어진 사람을 우리는 보통 ‘사회화가 잘 된 사람’이라고 부른다. 물론 사회화라는 개념을 절대선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사회문화적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되고 악용까지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무거운 뜻은 아니고 가벼운 의미에서 ‘자신이 있는 곳에서 주변과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때에 따라 적절한 행동을 하며 조리 있게 소통할 수 있는 것’ 정도로 정해두려 한다.


   이러한 사회화는 학교 같은 사회화 기관에서 이론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개인의 탐색이나 다양한 집단에서의 활동 등을 통해 경험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물론 좁은 의미의 사회화뿐만 아니라 삶에서 겪는 다양한 것들이 모두 자신의 성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지식과 경험들을 자신의 인격적 성숙을 위해 활용하는 태도이다. 개성과 다양성이 중요해진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격적 성숙함의 개념이 부정되거나 사회화의 중요성이 격하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자신의 기본적인 특성이 어떻다는 것과는 별개로,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이를 유도리 있게 구현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넓은 의미에서 사회화는 개인의 특성을 사회적 맥락에 연착륙시키기 위한 ‘운용의 묘’를 터득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는 선호 경향이 있지만 자신이 마주하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필요에 따라 다른 방식의 대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원래 성향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일종의 페르소나와도 비슷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선호 경향을 추측할 때 직장처럼 ‘요구되는 행동 양식이 비교적 명확한 집단’에서의 모습만을 근거로 하면 틀리기 쉽다. 그 집단에 맞춰 행동하는 모습이 그 사람의 진정한 선호 경향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사람은 사회화가 되어 다양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MBTI 검사 결과가 별 의미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첫번째 글에서도 말했지만 심리검사는 자기이해의 첫걸음이다. MBTI 검사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여러 기능이 필요한 다양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어느 쪽을 좀 더 편하고 능숙하게 쓸 수 있는지, 어느 쪽이 서투른지 정도이다. 반드시 어떻게 해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다. 그렇기에 나의 주기능과 부기능이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강화·활용할지, 나의 열등기능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보완할지 등을 고민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다. 너무 극단적인 모습으로 고착화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때에 따라 필요한 기능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유연함과 적응적 태도를 갖는 것이 건강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MBTI 유형은 자신을 더 다듬어가기 위해 먼저 현재의 자신을 파악하는 진단검사 결과와 비슷하다. 조금 거친 비유이지만, 건강검진을 받고 ‘당신의 시력은 왼쪽 0.1, 오른쪽 1.0입니다’라는 결과를 알았다면 ‘그러면 왼쪽 눈에 좀 더 도수가 높은 안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하지, ‘앞으로는 오른쪽 눈으로만 세상을 봐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MBTI 검사는 수평적으로 어떻게 다른지만 구별할 뿐, 건강검진처럼 문제점을 발견하기 위한 검사는 아니기에 차이가 있다). 마찬가지로 MBTI 검사 결과를 받아보고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앞으로도 그냥 쭉 이렇게 살아야겠다’고만 생각하며 변화를 거부하고 자신의 다듬어지지 않은 사고와 행동까지 합리화하는 것은 전혀 건강하지 못한 태도다. 그것은 MBTI뿐만 아니라 모든 심리검사의 취지와는 다른 방향이라고 본다.






   MBTI가 과학적인지, 심리검사로서 어느 정도로 유의미하고 유용한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 글을 쓴 목적은 MBTI를 학술적으로 두둔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내가 직접 배우고 이해하고 경험한 MBTI는 사람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그려볼 수 있도록 돕는 유용한 인지적 도구였다. 그래서 이것을 잘만 하면 아주 유익하고 생산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을 정말로 유익하게 사용하려면 혈액형 성격론처럼 미신 취급만 하거나 너무 과몰입해서 모든 걸 맹신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 나름대로 깨달은 MBTI의 활용법은 ‘자신과 타인을 더 깊고 넓게,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기초 자료이자 디딤돌’로 삼는 것이었다.


   기나긴 글이 지루하고 딱딱하게 여겨졌을 수 있지만 이 글을 끝까지 읽은 사람들이 있다면, 모쪼록 조금이라도 MBTI를 자신과 타인을 위해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기성찰과 타인에 대한 이해는 해도 해도 끝이 없음을 알기에, 나와 남을 탐구하는 여정이 흥미로우면서도 너무 막막해 선뜻 발을 내밀기 어렵다면, MBTI는 당신에게 유용한 지도와 나침반을 쥐어줄 것이다. 항상 이것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더욱 넓고 풍성한 통찰의 세계로 들어가고자 나서는 당신에게 MBTI는 좋은 베이스캠프가 되어줄 것이다. 누군가를 MBTI로 이해하기 시작하다가 어느 순간 MBTI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묘한 영역을 발견하고 이를 그 사람만의 맥락과 의미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의 당신은 MBTI가 없어도 얼마든지 괜찮을 것이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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