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는 문은 없습니다.
그럴 때가 있다.
타인과 나를 딱히 비교하지 않아도,
아무도 내게 뭐라 하지 않아도,
괜스레 고민이 깊어져 시간 가는지 모르고 굴을 팔 때.
땅굴에 사는 것도 아니면서
원래 그랬던 것처럼 아주 익숙하게
고개를 박고 세상에 등을 돌린다.
차마 세상이 나를 버렸다고 하기엔
이미 찢어진 상처가 짓밟히는 느낌이니까.
마지막 남은 나의 연민을 안고 흙 무더기 속에서
목적지 없는 도망자는 눈을 감는다.
도망친 곳에 낙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지만
낙원조차 닿아본 적 없는 부랑자는
두 글자가 주는 평안을 쫓아 이리저리 헤맨다.
보기 좋게 나를 찾는 여정이라 이름 지으면
안갯속을 정처 없이 걷는 듯한 방황이 포장될까, 누군가 버려둔 구겨진 종이로 어설프게 감싸려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