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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울토마토인줄 알았는데 잭과 콩나무인 건에 대하여

by 이씨

새 봄을 맞이하여 장에 가서 모종을 사 왔다.

고추, 상추, 방울토마토... 방울토마토??

20여 년 전 백수놈팽이시절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보마 하고 근처 꽃집에서 사들인

방울토마토 모종.

돈이랄까.. 아기랄까.. 생산은 요원하니 방울토마토라도 생산해 보자는 심산이었다.


방울토마토가 심길 흙을 푸러 동네 뒷산에 호미랑 비닐봉지 들고 올라가는 나의 뒷모습.

아무리 추억필터를 끼고 봐도 필터를 적실뿐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추억보정 따위는 없다.


흐뭇했다.

흙 속에 심긴 나의 어여쁜 방울토마토.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고 방울토마토는 무럭무럭... 어..? 너무 무럭무럭 자라는데??


그렇다. 나의 방울토마토는 몹시도 무럭무럭 자라 내 키를 넘기고 창문을 넘어 윗 집 베란다를 침범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안다. 나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달리라는 열매는 안 달리고 속도 모르고 윗집을 향해 달리는 방울토마토.


밥 먹을 때도, tv를 볼 때도, 콩나무가 되어버린

나의 방울토마토는 묘하게 내 심기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너무 그러지 마. 너도 열매 못 맺는 건 같잖아~? 역시 우린 친구야~!ㅋㅋㅋ'


라면 위로 드리워지는 빌어먹을 콩나무의 그림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의 콩나무, 아니 방울토마토의 끝을 모르는 성장기는 어떻게 끝이 났을까?



보름달이 뜨던 밤 괴수로 변한 누군가가

날카롭게 벼린 무림가위로

거대한 콩나무의 숲을 무참히 베어 넘기며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꿈처럼.. 어렴풋이 그랬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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