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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노량진 모텔 사건

by 이씨

때는 어엿한 백수놈팽이가 되기 전,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나가던 임용 준비시절의 이야기이다.


여기,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유전인자 크론병 정기검진을(대장내시경) 받기 위해

노량진 고시원 공용 화장실에서 속을 비워내고 있는

한 괴수, 아니 한 여자가 있다.


고시원 공용화장실.. 대장내시경 물약..

여의치가 않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계획에 가까웠다.

다섯 번째 변기물을 내린 후,

근처 여인숙 같은 모텔을 이용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좋아. 문 두드릴 사람도 없겠다.

밤새 맘 편하게 비워내고 예약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가는 거야. 후훗.'


자, 가자.


검은 봉지에 여분의 물약과 지갑, 핸드폰을 넣고 쪽방 같은 고시원방을 나섰다.

모텔 입구에 들어가 값을 치르는데,

수부실 아주머니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다.


"혼자야?"

"네"

... 정적..


"이쪽으로 돌아들어가면 나와"

나는 102호실 키를 쥐고 들어가

짐도 풀고 마음도 풀고 괄약근도 풀고

매인 것의 풀어짐에 감사하며 자유를 만끽했다.


분주했다.

침대보다 변기에 더 자주 앉아 시간을 보내는데,

자꾸 전화가 온다.

수부실이다.


"아가씨, 필요한 거 없어?"

"없어요..."


"아가씨, 괜찮지?"

"안 괜찮.. 아니 괜찮아요..."


"아가씨"

"왜요! 왜 자꾸 전화하시는 거예요! (똥 싸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아가씨, 힘들어도 그러면 안돼..!"

"아니, 뭐가 안 돼요? (힘들어도) 해야 돼요!!"

"그래도 그러면 안돼. 나쁜 짓 하면 안 돼."

"... 에??"


거울을 봤다.


아래위로 검은 츄리닝, 산발 머리에 뒤집어쓴 후드,

초췌한 얼굴, 초점 없는 눈동자, 바싹 마른 입술,

그리고 검은 봉지...


아.


"에이~아줌마~아니에요~안 죽어요~!

내일 대장내시경 검사 있어서 화장실 쓸라고 왔어요~!!"


당혹감에 속사포로 TMI까지 쏟아내며 전화를 끊었다.


폭풍과도 같은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이불속으로 안착하고 불을 끈 순간,

갑자기 뇌리를 스치며 무언가가 지나간다.


첫째, 모텔 이용객들에게 수부실 뒤쪽의 방을 주는 경우가 흔한가?

둘째, 아줌마는 내가 나쁜 마음을 먹고 왔다고 생각했다.

셋째, 그리고 이 방을 줬다.

넷째,

그렇다면 이 방은

어떤 방인가?


(*다른 이유로 밤을 꼴딱 새워 대장내시경 수면제가 들어가기도 전에

잠들었다는 후문이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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