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를 닮았다. 젊었을 때 엄마의 모습 그대로다.
우리 엄마는 47살에 죽었다.
나는 지금 43살이다.
47살에 나는 초 1개를 꽂은 케이크를 먹을 것이다.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인해 생긴 질병인
크론병이 우리나라에서 희귀병에 속해
사례가 흔치 않았던 그때,
굉장한 조선식 마인드에 서구식 질병을 얻은
엄마는 약 5년간의 투병 생활을 했다.
사람이 말라죽는다는 말
그때 나는 실시간으로 목도하고 있었다.
밥을 먹고 걸어서 화장실을 가던 사람이
단 며칠 사이 걷지 못하고
밥을 삼키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하고
누워만 있다가
미라가 된 채,
숨을 놓는다.
"내 좀 살리도..."
자다 깨 화장실을 다녀올 때면
안방에서 어김없이 저 소리가
들려왔다.
밤이라고
잠을 자라고
약 잘 먹고 잘자면 낫는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랬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먼지처럼 흩어질 말 뿐임을.
곧 먼지가 될 엄마에게 매일밤
나는 그렇게 속삭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리 그래도 너무 성의가 없었나 하는 생각은 든다.
엄마가 누워서 할 수 있는 건 잠자는 거밖에 할 수없을 텐데
잠을 자다자다 깬 엄마에게 밤이니 자라는 말..
숨이 다리에서 허리, 이제 턱까지 찬
엄마에게 살 수 있을 거라는 면피용의 말..
인생 굽이굽이 엄마가 야무지게 눌러 밟은 발자국에
내 발을 대어볼 뿐
어떠한 말도 해볼 수 없어서
답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