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 초반, 대 백수놈팽이 시절이 도래하리라 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푸릇푸릇하던 그때.
2000년대 초반 등산 돌풍이 불었던 그때.
돌풍이 아니라 태풍처럼 몰아치는 유행이 다가와도
흔들림 없이 내 갈길 가던,
이 구역의 흥선대원군인 나도..
.. 산이 좋았다.
그래서 가입했던 모임 '2030 산사랑 산악회'.
모임 가입을 하고 자기소개 양식에 맞춰 꼼꼼히 소개글도 올렸다.
그리고 며칠 뒤,
드디어 다음 산행 일정이 공지사항에 올라왔다.
[-제0회 산행일정: 태백산
-일시:0월 0일 새벽 6시
-픽업장소:00 백화점 앞]
좋다. 혼자 가긴 뭣하니 친한 언니를 회유하고,
산악회 동아리 친구에게 등산복 일체를 빌렸다.
나는 만반의 산행 준비의 마쳤다.
문제의 그날 새벽 6시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모 백화점 앞은 인력시장을 연상시킬 만큼
많은 관광버스와 인파가 입김을 날리며
늘어서 있었다.
[산사랑 산악회]
빨간 불빛의 글자를 보고 관광버스에 올랐다.
모임주인장의 인원체크가 끝나고, 버스는 출발했다.
그리고 다음 픽업장소에서 합류하는 사람들을 태웠다.
그 장소에서 같이 가기로 한 언니가 타야 했다.
그런데... 안 탄다?
... 버스가.. 출발한다?
... 응??
모든 회원을 태운 버스가 신나게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면서
모임주인장도 사회 보는데 박차를 가한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 새도 없이.
"자~오늘 신입이 두 명이나 왔습니다!
신입 소개부터 해주시죠~!"
마이크를 내민다.
수줍게 마이크를 받아 들고 내 소개를 한다.
"아.. 저는.. 허파입니다.. 오늘 처음 나왔고
잘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대기 시작한다.
모임주인장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게 와서 닉네임을 확인한다.
"허.. 파.."
"아, 네~허파.."
명단에 추가로 쓴다. 회비를 낸다.
찜찜하다.
이어서 예쁘장한 다른 신입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찜찜한 마음을 꾸덕꾸덕한 마음으로 바꿔줄
전화 한 통이 도착했다.
"야~너 왜 안 와~?!"
"언니 왜 안 탔어요? 나는 버스 타고 가고 있는데??"
"뭔 소리야~여기 다 너 기다리고 있는데!"
"나 타고 가고 있다니까요!"
"뭐라고?? 너 대체 뭐 탔는데??"
"산사랑산악회요!"
"하..
야, 다시 확인해 봐."
옆사람에게 조심히 물었다.
"저기.. 여기 산악회 이름이 뭐예요?"
"산사람산악회요"
아.
산사람 산사랑 산사람 산사람 산사람
산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현장에서
나는 조인성에 빙의해
그렇게 울음을 삼켰다.
숨기고 싶어 고개를 돌렸지만 차창에 비친 한 줄기 눈물.
산사람의 버스는 어느 죽은 회원의
눈물 한 방울을 달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결론은 어떻게 됐냐고?
그렇게 웅성대는 산사람들과 휴게소 길바닥에서
소고깃국을 나눠 먹으며 끝까지 태백산 완봉을 했다고
한다.
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