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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씨 Apr 30. 2024

17.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

2024년 4월 29일 월요일

[차승민 지음/ 아몬드/ p.310]


※ 보시기에 자극적인 장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출처: 영화 오로라 공주]



자신의 어린 딸을 무참히 강간하고 살해한 범인을 쫓아 치료감호소로 들어가 그를 죽이고 자신도 죽임으로서 복수를 완성한 여자가 있다. 영화 <오로라 공주>의 정순정이다. 


이 장면의 장소적 배경으로 등장한 곳이 바로 국립법무병원이다. 


저자는 국립법무병원의 몇 안되는 의사 중의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을 통해 치료감호소에 관한 여러 가지 오해들, 궁금증들을 쉽게 풀어 놓고자 하였다.


국립법무병원은 정신질환 범죄자 중 일부가 교도소 대신 가는 치료감호소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정신질환 범법자의 전문 치료, 재활을 위해 법무부에서 운영하는 정신과 병원으로, 치료감호법에 따라 치료감호형을 받은 사람을 수용, 감호하며 동시에 치료하는 기관이다. 또 법원이나 검찰, 경찰 등에서 의뢰한 정신감정도 진행한다. 이곳은 정신질환자 일고 여덟 명이 한 방을 쓰고, 풀타임 의사는 다섯 명이며, 급여는 의사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의사 일인당 환자수는 160명으로 일본의 20배이다.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하면,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것이 정신질환이 있으면 무조건 심신 미약으로 교도소행을 면제받는가였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건 당시 정신질환의 증상이 발현되었는가가 심신 미약, 심신 건재 판단의 중점 사안이라고 한다. 그리고 정신질환자인 척 의사를 속이고 교도소 대신 치료감호소로 갈 수 있지 않은가가 궁금했는데, 정신 감정 기간만 한 달이고, 그 기간 동안 간호사와 보호사들이 피감정인의 행동을 속속들이 관찰하고 면밀히 기록을 남기며 정신과 의사도 수시로 면담하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한다. 무엇보다 하루 24시간 한 달 내내 미쳐 있는 연기를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조현병이 100명 중 한 명 꼴로 발병하는 비교적 흔한 질환이라는 것과 이를 앓는 환자들이 약물 치료를 하면 문제없이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범죄도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치료받지 않은 조현병 환자의 강력 범죄 발생률이 높다는 점(죄명이 '살인'인 환자 수는 1012명 중 336명으로 전체 비율에서 33.2퍼센트를 차지하고 이들 대부분은 조현병 환자다)등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는 우리가 알만한 큼직큼직한 사건들, 각종 포털 메인을 여러 번 장식했던 사건들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2018년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인데, 사건 자체가 너무 끔찍하기도 했지만 당시 피해자를 치료했던 의사의 발언으로 다시 한번 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했었다. 나 또한 기사를 보고 함께 분노하고 슬퍼했었다. 그 당시 가해자 김성수는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 중이었는데 보호자가 이에 관한 진단서를 경찰에 제출하면서 논란이 더 거세졌다. 저자는 김성수의 정신감정을 담당했다. 상담을 통해 김성수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무차별적인 폭행에 시달린 김성수는 낮은 자존감, 우울감, 무시당했다고 생각이 들면 주체를 못 하고 터져 나오는 분노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럼에도 정신과에서 약물치료를 받으며 극복하려 노력했다.   


다음은 페미니즘 이슈가 있을 때마다 항상 언급되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이다. 다수의 언론에서 여성혐오 범죄로 보도했고 많은 여성들이 분노했던 사건이다. 그러나 대개의 정신과 의사에게 이 사건에 관해 묻는다면, 치료받지 않은 조현병 환자의 전형적인 피해망상으로 인한 살인사건이라고 답할 것이라고 한다. 가해자는 환청과 피해망상에 시달렸지만 상당 기간 치료를 지속하지 않았다.


진주 방화 살인사건 또한 치료받지 않은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범죄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한다. 역시 지속적인 치료가 끊기자 범행을 저질렀다.



그래서 어쩌라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가해자한테 또 서사 부여하는 거야?



저자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조심스럽게 의사를 피력한다.


바로 여기서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가 나온다.


모든 정신질환자가 범죄자가 아니고, 관리받지 못한 정신질환이 위험한 것이라고,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사라져야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그냥 범죄자라고 사회에서 제대로 된 조치 없이 방치되고 비난받는다면 이들은 분명 또 다른 사건 사고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 치료는 범법 정신질환자 개개인을 위한 복지 서비스가 아니며 이들을 치료하는 일은 결국 재범 방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의 깊이를 감히 헤아리긴 어렵지만 '재범을 막는 일'은 대개의 피해자가 원하는 일일 테고, 사회 안전을 위해서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말이다.


이렇듯 재발과 재범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이들이 놓인 처지를 잘 알아야 하고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당국의 사법시스템을 잘 감시해야 하며, 정신질환자들이 수용되는 치료감호소의 전반적인 환경을 개선해 효율적인 관리가 이루어지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동안 강력 범죄를 저지르고 정신 병원에서 편안하게 치료받고 있는 정신질환 범죄자들의 모습을 보면 울화가 치밀어 오르고 '아까운 내 세금'소리가 절로 나왔다. 지금도 분노하는 마음이 가벼워질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들어가는 세금이 아깝지는 않을 것 같다. 어차피 모든 일이 벌어졌다면 그것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일일 것이기에, 범죄자들을 향한 단순한 비난을 넘어, 관련 종사자들의 땀방울을 응원함과 동시에 정신질환 범법자들의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주시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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