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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씨 May 10. 2024

22. 죽음을 읽는 시간

2024년 5월 10일 금요일

[이유진 지음/ 다산북스]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일본의 작은 바닷가 마을 오추지의 언덕에는 '바람의 전화'로 불리는 낡은 전화기가 있다. 이 전화기는 마을 주민 이타루 사사키 씨가 만든 것으로 아끼던 사촌 형제를 잃은 슬픔과 상실감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아무런 작별 인사 없이 갑자기 떠난 사촌 형제와 다시 연결되어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그는 바람과 연결된 전화기를 설치했다. 수화기를 들고 사촌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하면 바람이 메시지를 전해줄 것만 같았다. 그로부터 1년 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면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잃은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와 수화기를 들었다. 그들의 말은 바람을 타고 사랑하는 이에게 가 닿았을까.




궁금했다.


만약에 우리가 이 전화기 앞에 선다면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반대로 내가 수신인이 되었을 때는 전화를 건 이에게  무슨 말을 해 줄 것인가?




죽어가는 과정도 삶의 일부다. 그러니 죽어가는 과정도 살 만해야 한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호스피스 환자들을 위해, 또 그들의 삶을 질적으로 향상하기 위해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존재한다. 미국에서는 호스피스 의료진을 '죽음의 조산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좁은 산도를 지나는 고통을 통과해야만 삶을 부여받듯 죽어가는 고통을 지나야 죽음을 맞는다. 죽어가는 고통을 완화시켜 주는 것, 그것이 호스피스 의료진의 역할이다.


저자는 우리나라 정신과 전문의이자 미국의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의로서 현장에서 여러 번의 죽음(삶)을 지켜보면서 간접적인 상실을 경험하고 죽음에 대해 공부한 내용을 이 책을 통해 써 내려갔다.


살아가면서 중대한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삶이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감을 의미한다. 삶의 지평이 더 넓어질 수도, 아예 다른 프리즘을 통해 삶을 바라볼 수도 있게 된다는 뜻이다. 특히 '죽음'은 우리 삶을 어떤 식으로든지 변화시킨다. 죽음에의 인식은 내 삶을 돌아보고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게 만든다. 내 곁에 있는 존재들을 더욱더 고맙고 애틋하게 한다. 저자가 인생을 축제처럼 살기 위해 죽음을 공부하기로 했노라고 말한 것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죽음을 인식하면 할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더 선명해진다. 생동감 있게, 매 순간 진심으로 삶을 대할 수 있게 된다.


니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제대로 못 산 삶에 대한 후회'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나는 온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경험에 의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없는 유일한 것, 익숙한 모든 것과 이별해야 해야 하기에 죽음이 공포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앓은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만성 신장질환과 혈관질환, 감염에 시달려 양쪽 무릎부터 발까지 피부 조직이 심하게 괴사 된 노년의 한 여성 환자 말이다. 그녀는 여러 가지 처치와 치료에도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자의 퇴원을 선언했다. 얼마 못 가 패혈증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았음에도, 이제 그만 치료를 중단하고 남은 생을 사랑하는 가족들 곁에서 보내겠다고 했다. 차후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만류했지만 그녀는 지금까지 충만하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고, 병원에서도 치료에 최선을 다했기에 괜찮다고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다운 삶이었다는 것을 저자는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다운 삶을 산 사람이 나다운 죽음도 선택할 수 있음배운다.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는 이렇듯 내가 살아온 시간이 결정한다.


통계에 의하면 열명 중 한 두 명은 예고 없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고 한다.

나의 아버지는 그 한 두 명에 속해 인사도 없이 돌아가셨고, 나의 어머니는 긴 예고를 끝으로 투병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나는 비교적 죽음과 가까이 지낸 편이다. 죽음은 내게 정서적으로 조금 불편한 친구일 뿐이다.  나는 이 불편한 친구를 등에 지고 산다.   


이따금씩 나는 내게 묻는다.


내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현재 영원히 되풀이되어도 괜찮을 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다시 '바람의 전화'로 돌아가자.


그 전화 부스 앞에 가 섰을 때 우리는 누구에게 전화를 걸 것이며,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반대로 내가 수신인이 되었을 때는 사랑하는 이에게 무슨 말을 해 줄 것인가?


질문은 네 가지지만 모두 한 가지를 의미한다.




삶의 의미를 지니고 살아가는 것, 나를 나일수 있게 하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일을 즐기는 것, 지금 이 순간 내가 숨 쉴 이유가 되어주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 역시 인간의 삶을 가장 의미 있게 만드는 '사랑'을 하는 것!


우리는 매 순간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온 마음 다해 진심으로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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