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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씨 May 13. 2024

23. 어쩌다 편의점

2024년 5월 13일 월요일

[유철현 지음/ 돌베개/ p.299]



우리 아파트 단지 앞 자그마한 상가에는 '우리마트'가 있다. 마트라고 하기에는 많이 아담한 사이즈인 이 가게는 우리 아파트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오픈한 일명 원년멤버다.


우리는 비좁지만 다정다감한 주인아주머니가 상주하고 있는 이 마트를 사랑했다. 시시콜콜하게 밥숟가락 개수까지 공유하지는 않았지만, 비 갠 날 아이가 깜빡한 우산을 챙겨뒀다가 다시 내밀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든가, 아이 키가 반 뼘이나 자랐다며 그 성장을 조용히 축하한다든가 하는 등의 온기를 나눠가지는, 그런 질박한 사이였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런 우리마트 자리를 위협하는 것이 나타났으니, 그것은 바로 편의점이다. 편의점은 우리마트가 있던 곳과 그 옆 벽을 통 크게 터서, 우리마트 사장님의 속도 함께 터지게 했는데, 그것은 한 낮에도 환한 조명,시원하고 넓은 공간, 깔끔하고 모던한 간판으로 완성되어 끝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우리는 그 편의점을 평양 앞바다에 띄워진 제너럴셔먼호처럼 바라보았다. 조용한 연못에 블루길을 풀어놓은 자, 누구인가? 편의점은 대기업, 도시 것으로, 동네 구멍가게를 더 좁은 곳으로(실제로 우리마트에서 물건을 고르려면 계모임 엄마들 나들이 사진 찍듯이 비스듬히 서서 종종걸음 쳐야 된다.) 내모는 그저 '심기불편한' 존재였다.


우리마트와 우리 사이에는 초코파이 사이에 숨겨진 마시멜로처럼 끈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사이에 편의점이 뚫고 들어올 틈은 없었다. 그렇게 첫 번째 편의점은 얼마못가 간판을 내렸다.


출, 입할때마다 편의점이 나간 텅 빈 곳을 바라보던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저 편의점 사장님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을 거라고, 소소한 성공을 꿈꾸고 힘겹게 한 발 내디뎠을지 모를 일이라고.


모두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먼지 쌓인 빈 공간을 조심스레 닦고 들어온 두 번째 편의점은 지금까지 건재하다. 편의점 큰 손인 나의 두 아들이 그 '건재함'에 'ㄱ'을 담당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편의점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 정도였다. 그리고 친정식구들이 우리 집에 모일 때마다 4개 12,000 원 하는 수입맥주를 사다 나르는 술창고정도?


'편의점이 그냥 편의점이지 뭐'

이런 좁디좁은 편의점에 대한 나의 식견을 완전히 바꿔준 책이 있었으니,


[어쩌다 편의점]이다.


이 책은 편의점의 유래, 상품, 기능, 생리 등 편의점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을 예화를 통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저자가 곳곳에 묻어둔 웃음 지뢰를 여지없이 밟아 깔깔거리면서도, 바나나맛 우유에 얽힌 이야기 등을 읽을 때에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 외에도 이 책에는 편의점에 대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편의점의 기원이 1927년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의 한 얼음 만드는 회사였다는 것, 그래서 그런지  '컵얼음'이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이라는 것, 또 요즘 편의점엔 재고 조회 기능도 있으니 헛걸음하지 말고 그것을 이용하면 된다는 것, 편의점 배달이 있다는 것, 사람들의 숨겨진 니즈를 적극적으로 찾아내 대박을 터뜨린 빅 요구르트와 거꾸로 수박바 등 편의점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중에 재미있는 한 가지,

편의점 계산대에 성별과 연령별로 구분된 '객층키'가 있다는 사실, 나는 몰랐다.


한 알바생이 객층키를 '중년여성'으로 누른 것을 보고 격분한 어느 삼십 대 여성이 정신적 피해 보상과 해당 알바생의 해고를 요구했다는 예화를 보고 지X도 풍년이다 시니컬하게 내뱉었지만, 10년 전, 뭄 푼 지 얼마 안 돼 볼일이 있어 들른 법원 등기과에서 외모 특징(?)을 적는 란에 '얼굴이 큼'이라고 쓴 직원을 앞에 두고, 몸 푼 김에 '마, 다이다이 함 뜨까'싶었던 아찔한 기억이 떠오르며 수긍의 격한 고갯짓을 했었다.


책의 3분의 1 지점쯤 저자는 말한다.

편의점이 고객들에겐 생활의 편의를, 점주들에겐 생계에 보탬을, 사회에는 선량한 공익을 선사한다고.


배고픈 청춘들을 위해 컵라면과 삼김 등으로 끼니를 해결해주고, 아기 기저귀를 빼먹고 멀리 나와버린 초보 엄빠들을 위해 소포장 기저귀를 판매하며, 카페에 가기에는 시간과 돈이 애매하고, 밖에 있자니 춥고 더워 그것을 잠깐 피할 한 평을 적은 돈으로 빌려준다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생활의 편의를 제공한다는 건, 오케이, 인정! 그런데 편의점이 선량한 공익을 선사한다니, 의아했다.


고이 접은 편지지처럼 저자가 정성 들여 쓴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편의점이 파출소, 우체국, 주민센터 등 공공 인프라보다 전국에 그 수가 훨씬 많고 365일 24시간 문이 열려 있어 미아보호소이자 신고센터의 역할을 묵묵히 잘 해내고 있다는 것, 실제로 편의점은 지난 5년 간 길 잃은 아이들을 비롯해 지적 장애인, 치매 노인 등 150여 명을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발 끝에서부터 따뜻함이 차 오르기 시작했다. (장하다! 편의점!)


그리고 편의점마다 설치된 동전모금함, 솔직히  인테리어의 일환이라고 생각했다. 바닥 타일, 시멘트 바른 벽, 출입문에 달린 종처럼 그냥 거기 있는 애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다 채워져 통통해진 그것이 어느 통통한 뱃속으로 들어갈지 가자미 눈을 떴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파상풍 예방백신으로, 베트남 소외 지역의 아동 친화 도서관으로,  몽골 유치원의 친환경 게르로, 그 외 목마르고 배고픈 전 세계 어린이들의 식수와 음식으로, 소중히 쓰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투명한 플라스틱에 일관되게 한 일자로 뚫려 있는 저금통, 데면데면했던 과거는 잊고 이제 우리 한번 친하게 지내보자!




'당신에게 편의점은 어떤 의미인가요?'


이제는 저자의 마지막 물음에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딧불이'


내게 편의점은 반딧불이같다.


캄캄한 밤에 시멘트 숲을 환히 밝히는 시멘트로 된 반딧불이.

자기 자신으로 기능하면서도 따뜻할 수 있는 존재.

낮에는 시멘트 숲 속에 매직아이처럼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우리들의 눈과 마음을 따뜻이 밝혀주는 노란 빛깔의 반딧불이.  


더해서 나는 생각한다.

나도 나로 살면서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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