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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씨 May 23. 2024

25. 마음

2024년 5월 23일 목요일

[나쓰메 소세키/ 송태욱/ 현암사/ p.295]



마음은 머리와 가까울까, 가슴과 가까울까. 시답잖은 생각으로 서가에서 뽑은 책이다.

마음은 1914년에 발간된 책으로 <선생님과 나>, <부모님과 나>, <선생님의 유서> 이렇게 세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작중에 나는 휴가로 놀러 간 가마쿠라 해변에서 선생님을 처음 보았다. 해수욕장이라고는 해도 몸을 가리고 물놀이를 하는 게 시절의 국룰이라 살색 가득한 서양인은 단연 튈 수밖에 없었는데, 선생님은 그 서양인과 함께 있던 사람이었다. 나는 선생님의 아우라에 시선을 빼앗기고, 선생님이 떨어뜨린 안경을 주워 줌으로써 관계를 맺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선생님과 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도쿄로 돌아와서도 선생님의 집에 뻔질나게 드나들던 나는 선생님의 말과 그 여백과 거취에 매료된다. 그저 혼자를 고수하며 많은 것을 말하지 않는 선생님이 대단해 보였다. 시종일관 염세적인 태도로 세상과 동떨어져 자기만의 세계의 담을 높이 올려, 아내조차도 그 한 발을 허락하지 않는 선생님이 신비로웠다.


선생님은 대학을 나오고도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고 있는 걸까? 선생님은 어째서 인간 자체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을까? 선생님은 왜 매달 조시가야의 친구 묘지에 성묘하러 가는 걸까? 그 친구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계속해서 자신을 찾아오는 나에게 선생님은 이따금 쌀쌀맞은 인사나 냉담해 보이는 행동을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너무 빠져서는 안되며 자신을 너무 믿어서도 안 된다고 충고한다. 곧 후회할 거라며.



예전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 머리 위에 발을 올리게 하는 거라네. 나는 미래의 모욕을 받지 않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물리치고 싶은 거지. 난 지금보다 한층 외로울 미래의 나를 견디는 대신에 외로운 지금의 나를 견디고 싶은 거야. 자유와 독립과 자기 자신으로 충만한 현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 대가로 모두 이 외로움을 맛봐야 하는 거겠지



또 사랑은 죄악이라고도 한다.


자넨 검고 긴 머리카락으로 결박당했을 때의 심정을 알고 있나?



선생님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떤 이유로 선생님은 남을 경멸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경멸하게 된 것일까? 이렇게까지 자신을 꽁꽁 싸매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고 외로움과 고독의 길을 자처하는 것일까? 그저 초가 촛농이 되는 과정을 무연히 지켜보다 급기야 자기 손으로 초의 불을 꺼버려야 했을까?



이 모든 물음에 답을 한 건 역시 <선생님의 유서>다.

내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선생님의 과거를, 선생님은 기나긴 편지글로 나지막이 고백한다.

그렇게, 선생님은 죽기로 결심한다.






자산가이던 부모님이 병으로 돌아가시자 본색을 드러낸 숙부에 의해 재산이 빼돌려진 뒤, 선생님은 고향을 등지게 된다. 숙부에 대한 분노가 사람에게로 확대되어 더 이상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된다. 염세주의는 당연한 결과였다.


하숙집으로 거처를 옮기며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는데 바로 하숙집 아주머니의 외동딸이다. 선생님은 아가씨에게 신앙에 가까운 애정을 가지게 된다.


그런 이들 사이에 K가 등장한 건 분명 운명의 장난이었다. K는 선생님의 고향 친구로 복잡다단한 가정사로 인해 길거리로 내몰리게 되는데, 그런 K의 대쪽 같은 고집을 꺾고 하숙집으로 들이는데 선생님은 어지간히 애를 먹어야 했다. 하숙집에서 함께 대학생활을 해 나가던 중 K와 아가씨의 동선이 점점 겹치면서 내 마음속 저 어딘가에서 둠칫둠칫  광란의 비트와 함께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서서히 울려 퍼졌다.


K를 들이자 했을 때 쓴웃음을 지으며 '그런 사람을 데려오는 것은 너에게 좋지 않으니 그만두라는' 하숙집 아주머니의 말은 예언에 가까웠다.


초조해진 선생님은 K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으려 했지만 무산되고, 아주머니에게 청혼을 넣으려는 결심 또한 하루하루 미루고 있던 중 선생님은 K의 고백을 듣게 된다.

아가씨에 대한 그 애절한 사랑을.


그때도 선생님은 자신의 마음을 속시원히 고백하지 않는다. 후에도 선생님이 K에게 고백하는 일은 없었다.

선생님은 대신 절에서 나고 자란 그의 마음을 건드려 사랑의 앞길을 막으려 했다.


"정신적으로 향상심이 없는 자는 바보야"


그리고 K가 자리를 비웠을 때 선생님은 아주머니에게 청혼을 넣고 만다. 후로도 선생님은 아주머니가 K가 있는 식탁에서 청혼얘기를 폭로(?)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작품 초반에 자신을 경멸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단번에 납득이 되는 장면이었다.


결국 청혼의 전말을 듣게 된 K가 며칠 후 자신의 방에서 경동맥을 끊은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절정에 이른다.

조시가야의 친구의 묘, 그게 바로 K의 무덤이었다.


아내를 자신의 성안에 결단코 들여놓지 않았던 이유,

그래서 아내로 하여금 자신을 싫어한다고 오해하게 만든 이유, 그것은 아내를 통해 K를 보기 때문이었다. '아내'란 단어 자체에 K가 섞여 들어 도저히 분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숙부로 인해 사람들을 믿을 수 없게 되었을 때에도 그는  적어도 자신은 믿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신념조차도 무너지고 말았다. 자신도 숙부와 똑같은 인간임을 자각한 그는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혐오만이 흐를 뿐이다.

혼자만의 감옥에 갇혀 도저히 감옥을 부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자살을 결심한다.




마음이란 무엇일까?


마음이 인간에 대한 경멸을 낳게 했고, 또 다른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 몰았으며, 급기야 치유되지 못한 마음은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했다. 그 혐오는 결국 자신의 목숨마저 앗아갔다. 연약하기 그지없는 마음은 이리저리 나풀대다 어느 풀 숲에 가 앉을까?


인간이기에 사랑하면서도 겁을 내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마음을 내 비치면서도 뒤를 비워놓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선생님의 자의식 과잉은 책 읽는 내내 견디기 힘들었다. 자신이 죽은 뒤에도 아내가 가진 기억을 되도록 순백의 상태로 있게 해주고 싶다며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할 때는 단전에서부터 한숨이 흘러 나왔다.

휴..절레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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