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0일 수요일
어느 겨울날 새벽, 갓 태어난 사내아이의 울음소리가 슬프게 울려 퍼진다. 20대 초반, 결혼 생각이 없었던 두 남녀 사이에 잉태된 이 생명은 자신이 마주하게 될 운명을 모른 채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 젊은 남녀는 서로를 깊이 알지도 못했고, 서로를 사랑하지도 않았다. 군입대가 얼마 남지 않은 남자와 고향을 떠나 가발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던 여자, 두 사람은 스쳐가듯 서로에게 이끌렸을 뿐이었다.
그들은 아이가 생겨날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하고, 서로를 떠나 각자의 길을 떠났다. 남자는 예정대로 군대에 입대하였고, 여자는 예전처럼 공장에서 일을 하며 자신의 삶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여인은 자신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한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삶은 그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숙명을 던진 것이다.
그 숙명은 스쳐간 인연을 다시 붙들었고, 그 남자는 그 숙명 앞에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결국 자신의 부모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대신해 모든 책임을 짊어진다.
남자의 부모는 그들을 결혼시키기로 한다. 결혼절차를 밟기 위해 그 여인의 부모를 만나려 했지만, 그 여인은 그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사돈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두 사람을 서류상 부부로 만든다.
그렇게 며느리가 된 여인은 남편이 없는 시댁에 거처하게 되었고, 몇 개월 후 아이가 태어난다.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 여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그 여인은 출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아이의 생부는 제대 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자신의 새로운 삶을 구축하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결국 그녀를 만나게 되었고, 이혼절차를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얼마 후 재혼을 하였고, 자신의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떠나게 된다.
아이는 그렇게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 남겨진다.
아이의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마도 수많은 숙명과 운명이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도저히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혼돈 그 자체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