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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life of ease Jan 09. 2024

나는 아무렇지 않았어

나는 느려지지 않았어

길 한복판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모니터, 본체, 마우스, 키보드 다 따로 준비,

사람들이 많은 광장 중앙에서 컴퓨터를 켠다.

모니터와 본체를 연결했다.

빨간 빛을 내는 마우스를 본체에 연결했다.

네모난 키보드를 모니터에 연결했다.

보도블록 위에 마우스를 탁탁 작동하라고 두 번 두드리다.

마우스가 지지직 지지직 스크래치 나며 작동한다, 키보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어느새 컴퓨터에 로그인을 한다. 아무 의미 없이 네이버, 구글 그런 것들에 들어가 쓸데없는 뉴스를 본다. 30초 정도 내 흥미를 잡아두지만 아무 의미 없는 것들. 세상에 안좋은 소식들, 누구 죽고 다치고 누구 잘못했다는 얘기. 영하의 날씨에 컴퓨터가 느려진다. 나름 성능이 괜찮은 최신 컴퓨터인데 느려진다. 모니터가 잘 안 나온다. 마우스 커서가 끊기며 움직인다. 글자들이 끊기며 타이핑된다. 닫기 버튼 한 번 누르기도 쉽지 않다. 잔상들이 남는다. 몸이 춥다. 손이 얼어간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싶다. 그래도 컴퓨터가 느려진 채로 몇 분 간 버텨낼 것이다. 이제는 모니터가 갑자기 멈췄다. 기계는 때려야 제 맛이다 하여 몇 번 두드리면 밝기가 갑자기 번쩍번쩍 밝아지지만 이내 블루 스크린이 뜨다가 갑자기 모니터가 꺼져 버린다. 멀티탭을 만져보았다. 세상 차가울 수 없다. 본체도 멀쩡하지 않을 것이다. 멀티탭의 스위치를 꺼버린다. 그 자리에 컴퓨터 장비들을 그대로 버려두고, 바로 옆 건물 한가운데 있은 스타벅스에 들어가 커피를 시켜 마셔 버렸다.


컴퓨터는 영하의 날씨에 고장이 나 버렸다.

하나 멀쩡한 것 없이 고장이 아 버렸다.

나는 추웠지만 고장나지 않았다. 손이 얼었지만 마우스만큼 느려지지 않았다. 사실 거의

느려지지 않았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아무렇지 않았어.

나는 아무렇지 않았어.

나는 느려지지 않았어.

나는 고장나지 않았어.

나는 느려지지 않았어.

내가 기계보다 강하다.

나는 기계보다 강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버려진 기계 덩어리들을 보면서 2층 스타벅스 창가에 앉아 손을 녹이며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적당히 식은 커피다. 휴대폰에 알람이 울린다. 휴대폰을 꺼내 알람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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