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평소처럼 억지로 눈을 뜨고 출근 준비를 하다 문득 생각했다.
‘이걸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해야 하지?’
디자이너로 일한 지 7년 차. 여러 회사를 옮겨 다니며 경력도, 회사에서의 위치도 안정적이었지만, 마음 한편은 늘 불편했다. 사소한 상사와의 충돌이 반복되면서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내 취미는 ‘구인구직 사이트 둘러보기’가 되었다.
그때의 나는 20대 끝자락에 있었고, 경력이 쌓일수록 디자인이라는 일 자체에 회의감을 느끼던 참이었다. 그러다 아예 다른 일을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구인 공고를 보던 어느 날, 집 앞 미술 교습소에서 파트 선생님을 구한다는 글을 보게 됐다. 대학 졸업 후 붓을 놓은 지 오래였고, 아이들을 가르쳐본 경험도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공고가 자꾸 눈에 밟혔다.
‘그래, 해보지 뭐. 어차피 인생에 1년쯤은 방황해도 괜찮지 않을까?’
가벼운 마음으로 이력서에 나의 디자인 이력들과 ‘아동미술 경력 없음, 하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라는 한마디를 담아 보냈다. 20분 만에 원장 선생님께 면접을 봤으면 좋겠다라는 답장이 왔고, 나는 퇴근 후 곧장 집 앞 교습소로 향했다.
내가 사는 동네는 대학가와 가까워 아이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지나다니며 늘 생각했다. ‘여기에 미술 교습소가 있다고? 진짜 운영이 될까?’ 게다가 안이 잘 보이지 않는 구조라 궁금증만 커지던 곳이었다. 그런 곳에 내가 직접 면접을 보러 가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면접을 보러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막 수업이 끝났는지 책상 위는 어수선했고, 원장 선생님은 바닥을 청소하고 계셨다. 잠시 기다리라는 말에 자리에 앉았고, 곧 원장 선생님과 파트 선생님 두 분과 면접을 시작했다.
원장 선생님은 경력이 없는 나에게 대학 전공, 아이들을 좋아하는지, 그림과 만들기를 잘하는지 등을 물으셨다. 내 전공은 공간연출과였고, 학부 시절부터 조형 수업에 익숙해 그림보다는 만들기를 더 잘한다고 답했다. 손으로 그림을 그린 지는 오래되었지만, 현재는 디지털 드로잉 작가로 활동하고 있고, 성인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클래스 운영 경험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행히 원장 선생님은 나와 비슷한 전공인 조소과를 졸업하셨고, 교습소에서도 목재나 도자기로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는 것을 추구하셨다. 전공 스타일이 잘 맞았고, 디지털 드로잉에 대한 관심도 있으셔서 나는 단번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다음 문제는 회사였다. 가볍게 지원한 일이었고, 바로 합격할 줄은 몰랐다. 급작스럽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당황했지만, 이미 마음은 교습소로 크게 향하고 있었던 것 같다. 원장 선생님은 기존 선생님이 갑자기 그만두셔서 2주 내에 출근하길 바라셨지만, 나는 계약상 바로 퇴사할 수 없었다. 그래서 회사와 협의 끝에 퇴사일까지 남은 연차와 반차를 활용해 오전에는 회사, 오후에는 교습소로 향하는 이중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교습소에 처음 출근한 날,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 4명과 첫 수업을 했다. 10년간 붓을 잡아왔던 감각은 여전했는지, 수업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처음 보는 나에게 아이들은 낯을 가렸고, 급식에 뭐 나왔냐, 오늘 수업 뭐 했냐 등 사소한 질문을 던지자 아이들의 경계심이 조금씩 풀렸다. 그러자 내가 먼저 묻지 않아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90분의 수업 시간이 지나고, 다음 타임인 3~4학년 소녀들이 왔다. 그중에는 원장 선생님의 딸도 있어 더 조심스러웠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라 질문에 단답으로 답하곤 했다. 하지만 아이돌에 대한 대화가 나오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나 역시 아이돌에 관심이 많아 쉽게 대화에 끼어들었고, 그날의 주제는 아이브로 끝이 났다. 마지막 타임인 5~6학년 아이들은 이미 그림 실력이 출중해 완성도를 높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수업이 끝난 후 원장 선생님은 하루가 어땠는지 물었다. 회사에선 8시간 내내 모니터만 보며 힘들었는데, 여기선 앉아 있을 틈도 없이 너무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 함께 그림을 그리고 가르치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이 감정을 솔직히 말씀드리자, 원장 선생님은 웃으며 ‘내일은 유치부 아이들이 오니 각오하라’는 말을 남기고 배웅해 주셨다.
그날 이후, 나는 매주 수·목·금 오후마다 교습소로 향했다. 어느새 아이들과는 더 가까워졌고, 수업 준비도 익숙해졌다. 유치부 친구들과 함께할 때는 훨씬 정신없었지만, 하루하루가 보람으로 가득 찼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일을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도 서서히 사라졌다.
회사에 있을 때보다 훨씬 즐거웠다. 특히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과 창의적인 생각들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이 일에 더 어울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느 날, 일곱 살 아이가 순수한 눈으로 물었다. “선생님은 나중에 어른 되면 뭐 될 거예요?” 나는 웃음이 터졌고, 장난처럼 되물었다. “음... 00 이는 선생님이 뭐 했으면 좋겠어?” 그러자 아이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선생님, 미술 선생님 해요! 선생님 계속 미술 선생님 해요!” “왜~? 선생님이랑 계속 미술 하고 싶어서?” “네~! 재밌어요!!” 그 아이의 말에 마음 한구석이 찡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더 오랫동안 이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교습소 생활은 좋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회사보다 수입이 훨씬 적어 생계가 쉽지 않았다. 그 무렵 당시 남자친구와 결혼을 고민하고 있었기에, 모아둔 돈을 쉽게 쓸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수·목·금은 교습소에서, 월·화는 디자인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시 주 5일 일하기 시작했다.
주 5일이 다시 꽉 찼지만, 이전보다 훨씬 덜 지쳤다. 그렇기에 회사로 돌아갈 마음은 전혀 없었다. 이제는 현실적으로 ‘앞으로 내가 뭘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었다. 그래서 틈틈이 교습소 매물을 보러 다녔다. 처음엔 그저 경험 삼아였다. 지금 당장 창업하겠다는 건 아니었지만, ‘나만의 공간에서 아이들과 수업을 한다면 어떨까?’ 그 상상이 점점 현실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교습소와 디자인 아르바이트를 병행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두 가지 큰 사건이 연달아 터졌다. 첫 번째는 디자인 아르바이트를 하던 회사였다. 직원 5명 중 직급 없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개인 시간이 많아 여유롭게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업무와 무관한 팀장이 개인 모임의 로고 디자인을 요청했다. 타이밍을 놓쳐 거절하지 못하고 대충 응해주자, 그 팀장은 장문의 막말 카톡을 보냈다. 대표에게 이야기했지만 중재는 없었고, 며칠 뒤 그 팀장과 크게 다툰 나는 결국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 다음 주, 이번엔 교습소였다. 출근하니 면접을 봐줬던 월·화 선생님이 곧 그만둘 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주 5일 전임 강사로 함께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전임강사로 생활을 하자니 급여가 예전 회사원일 때에 비해 너무 적었다. 그래서 이 제안을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했다.
교습소에서 경력을 더 쌓을 것인가, 회사로 돌아갈 때인가 아니면 새로 창업할 것인가. 사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 업계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언젠가 나만의 교습소를 차릴 거라는 생각은 확고했다. 창업 전 전임 강사로서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더 신중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며칠간 고민할 시간을 가진 뒤, 이제껏 보러 다녔던 매물들과 새로 올라온 매물들을 다시 살펴보며 내가 원하는 조건에 맞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회사원에서 교습소 원장으로의 탈피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결정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하며,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것이 바로 회사원에서 미술 교습소 원장까지의 첫 발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