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턴, 캐나다
지난 2주간의 한국행에서 이런저런 글감을 꽤 획득했다.
글을 쓰고 싶다고 밤중에 갑자기 컴퓨터를 켜서 온갖 감정과 쓰라린 시간에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좋겠다고 혼잣말하며, 밥벌이로 하는 일거리가 아니라 순수하게 지금 느끼는 감정을 기록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1976년생 에게 익숙한 오래된 버전의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켜서 껌뻑거리는 커서를 앞에 두고, 후드득 머리에 떠오르는 데로 쏟아내면서, 때를 밀어 상쾌해진 마냥 몸도 마음도 정화된 기분이 들며 이것이 진짜 치유임을 느꼈다.
그다음 날 아침,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엉망인, 어디 누가 봤을까 무서운, 달빛 감성을 마주하며 내 에디터가 되어줄 글쓰기에 도움이 될 법한 무료 인터넷 앱을 찾다가 쓸 만해 보이면 구매하거나, 매달 소정의 구독료를 내야 되는 유료앱 결재를 회피하고자 브런치 작가에 응모했다.
난 자기 객관화가 아주 잘 되어 있는 띄어쓰기 빌런이니까.
삯월세라고 배운 세대이기에 사글세가 표준 맞춤법이라는데 충격 먹은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노년의 엄마가 종종 보내는 두 화면 이상 넘어가는 장문의 카톡 메시지에 눈물이 고이기보다는, 나보다 더 이전 세대의 맞춤법 오류가 눈에 거슬려 눈에서 피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처럼 고도로 발달한 소시오패스인가 가끔 스스로 의문스럽다.
아마, 응모해서 채택이 되어야만 맞춤법 검사와 띄어쓰기 오류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훌륭한 한글 에디터 앱이 아니라, 몇 초간의 광고를 봐야 하고 쓰다가 수시로 팝업창이 떠서, 팔짱 낀 채로 눈알을 한 바퀴 굴리며 마지막에 단어는 입모양으로만 왓더 f 아주 찰지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지언정 무료로 다운로드 가능 한 국어 문법 체크앱을 찾았다면 브런치 작가로 응모할 생각은 딱히 안 했을 것이다.
동영상 플랫폼의 광고가 짜증 나지만 돈 내는 건 더 짜증 나니까 무료 버전으로 버티는 나니까.
이왕 시작하면 달려보는 것도 좋아하고, 일기는 매일 써야 일기라고 불릴만하니까 일단 100일간 일기를 써 보기로 했다. 100은 여기저기서 많이 우려 먹는 숫자니까 괜히 친숙하다. 100일 동안 마늘 먹어 인간 된 이야기도 있고, 태어나서 100일간 안 죽고 살았다고 축하하는 걸로 시작된 100일 잔치, 여차저차 100일 기념 , 기도는 100일 기도쯤은 되야 먹히고 또 100일의 서방님? 아니 낭군님이었던가... 여하튼!
내 100일 프로젝트는 99프로 성공이다. #100까지 쓸까 하다가 2주간 나 홀로 한국행이라는 간만의 대사건을 앞두고 2주간 아이들이 시리얼을 저녁밥으로 먹기도 하겠다는 불안감과 나 없이 아이들을 돌보고 드디어 1년 간의 학교 과정을 끝내 햇병아리 목수로서 첫 인턴 생활을 하게 되는 남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19년 동지애와 의리 그리고 약간의 애정을 갈아 넣어, 며칠 동안 틈나는 대로 1인분씩 소분해 락앤락통에 넣어 애들도 스스로 쉽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전자레인지용 수제 냉동식품을 만들어 댔다.
겨울옷 세탁해 정리하고 여름옷 꺼내고 아이들 사이즈 체크 해서 부족한 것 챙기고 한국에서 만날 지인들에게 줄 선물 구입도 하는 등 '해야 할 일 늪'에 빠져, 일기 쓰며 나만의 즐거운 시간을 가질 여유는 못 부리고 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꼭 100퍼센트 목표 달성 안 해도 된다. 100퍼센트라고 해도 의심해야 한다. 100퍼센트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 눈대중으로는 99밀리인지 100밀리인지 알아채기 힘들다. 빈틈이 많아 헐랭한 것이 반전미에 웃길때도 있다. 100퍼센트 처럼 보이는 99퍼센트도 묻어 가는 그 틈을 노리고 구멍 숭숭 뚫린 빈틈 많은 내가 번듯한 척 해본다. 선택적으로 때와 장소를 가려 외향인인척 할 수 있는 내향인임을 지인에게 간파당한 나님의 관찰기록을 남기려 한다.
썰들이 부글부글 내 속에서 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