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인 hyein Jun 16. 2023

뾰족하지 않은 나다움

나 답게 살아가는 삶

"너다운 행보네"


글을 쓴다는 말에 나의 오래된 친구 은성은 너답다며 응원을 보냈다.


나 다움. 요즘 내가 제일 어려워하는 키워드였다. 나답게 사는 것이 곧 경쟁력이 되는 시대를 살면서 나는 어떤 사람일까를 수 없이 생각해 왔지만 아직 뾰족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 답다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하는데 정작 나는 나다운 것이 진짜 무엇인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나라는 사람이 뾰족하게 보이는 부분이 있는 걸까? 나답다는 건 그냥 나를 말하는 건데 왜 어렵기만 할까?


 나답게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첫 몇 문장을 적고는 긴 시간이 지나도록 다음 문장을 적지 못했다. 당연했다. 나 다움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면 옛 청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나 다운게 뭔데"를 외치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은 제일 쓰고 싶으면 서도 제일 쓰기 힘든 글 중 하나가 되었다.  


 나는 하루에 정말 많은 생각을 하는 편이다. 나에게 한 가지의 생각이 들어오게 되면 그 생각이 빛처럼 산란되어 셀 수 없는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그러다 보니 소위 말하는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떠한 상황이 오면 나를 상황에 잘 맞추기 때문에 그게 오히려 나를 뾰족하게 정의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혜인 다운 건 대체 뭐지?"

 

 정리되지 않은 마음속에서 첫 문장을 적은 이후로 한주에 몇 자씩 적고 지우고를 반복하다 보니 몇 주가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나 다움을 서너 문장으로 규정한 뒤 좌우명 비슷한 몇 문장에 따라 살아가는 게 내가 원하는 삶인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게 되었다. 내가 나답게 살고 싶은 이유에 대해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나답게 살아가고 싶은 원초적인 이유는 세상에 나는 하나고 누군가 나를 흉내 낼 순 있겠지만 내가 되진 못하는 그 유일무이한 영역을 소중하게 지키면서 살아나가고 싶다는 바람 안에 있었다.


 아차! 싶었다. 나를 정의하고 규정하는 것에만 집중하다가는 내가 만들고 싶은 나의 허상을 만들고 쫓아가는 삶을 보내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 다움을 찾으려는 조급함에 오히려 잃을 뻔한 것이다. 잠깐의 반성을 마치고 나니 글을 쓰는 것이 수월해졌다. 글을 쓰기 수월해졌다는 것은 내 마음속의 생각이 후련하게 정리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오늘 하게 되는 수만 번의 선택 이유가 얼마나 내 안에 있는지 귀 기울이는 것. 내 안의 진심에 귀 기울인 선택이 쌓여 비로소 나답게 살아가는 삶이 만들어져 가는 것이라는 실마리를 얻었다. 나다웠던 선택의 순간을 쌓아 나답게 살아간 나를 만들어 내겠지.

 

 지금의 나는 글을 쓰기로 한 선택이 나다운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혹여나 시간이 지나 글을 쓰지 않게 되더라도 쓰지 않기로 결정한 마음이 정말 내 안의 진심과 맞닿아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선택이 내 안에 있다면 스스로를 미워하기보다 다음 진심이 닿는 곳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원하는 데로 무책임한 선택하는 삶이 아닌 외부의 영향을 받는다 해도 어디까지 고려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까지도 내 안의 소리를 들으며 나답게 잘 살아나가고 싶다.


 오늘 나는 나를 몇 가지 단어로 정의 내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온 것도 너무 많은 복잡한 내가 어중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나는 나 다운 선택을 이어왔고 그래서 더욱 설명할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 멋지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감히 추천하건대 나처럼 나는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 헤매고 있다면 지금부터 나는 어떠한 선택을 해 나가는지 귀 기울여보는 것도 좋은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음의 확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