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신혼집보다 아주 조금 커졌을 뿐인
우리의 두번째 집은
그래도 우리에게는 그 어떤 집보다 특별했다.
우리 둘의 힘으로, 아주 조금이지만
조금 더 좋은 환경과 조건으로 이사를 온 곳이었고
어느덧 자연스럽게 더 비슷한 색을 갖게 된 두 사람의 취향이
더 짙게, 묻어난 집이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우리 사이를 더 단단하게 묶어주었던
우리 아가, 누누가 태어난 곳이었다.
돌을 지났을 무렵, 아기의 방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에
고민 끝에 우리의 물건들을 덜어내고
그곳에 온전히 아기의 것들을 채워넣어주었을 때
아장아장, 쉴새없이 그곳을 오가며 깔깔대던 아가의 웃음에
방을 내어주길 잘 했다, 를 몇 번이고 되뇌이던 우리 두 사람.
퇴근을 하고나면 나는 거실바닥에 앉아 번역을 하고
신랑은 누누의 방 아기책상을 펼쳐놓고 대학원 수업을 듣는다.
그래도 우리의 행복은 여전히 견고하며
아니, 우리는 이전보다 조금 더 많이 웃는다.
시간을 쪼개어 몇 주 전부터 준비했던 작은 것들로
아기의 두 번째 생일 아침을 준비하던 밤.
우리는 쉽게 불어지지 않는 풍선을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불어대며 키득거렸고
새벽 2시에나 겨우 눈을 붙였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난 아가는
부스스한 머리카락으로 덮인 작은 얼굴로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고
여전히 끄지 못하는 생일 초를 엄마와 같이 불었으며
새하얀 풍선들을 던지며 꺄악꺄악 소리 지르고 춤을 추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어린이집에 갔다.
이토록 작은 집에 이토록 큰 행복이라니.
드레스룸으로 이어지는 복도는 꽤나 좁아서
한 사람이 서 있으면 지나갈 수 없는 집이지만
그래도 난, 이 집을 떠날 때 너무 슬플 것 같아.
우리의 기억이 구석구석 묻어 있을 이 집이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집이었거든.
어느 날, 신랑에게 한 이 말은 나의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