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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집사 Apr 22. 2024

Ep 13 수다의 뫼비우스 띠


오 정말로 시작이 되고 말았다! 차 타고 미국 서부에서 동부로 이동하는 횡단 여행!



3일간 하루에 주행만 꼬박 8시간에 중간에 밥을 먹고, 차량 충전을 하는 시간을 합하면 하루에 10시간 정도씩은 차에서 보낸 일정이었다. 그렇게 3일 연속을 달려 드디어 미국 중부 텍사스 땅에 들어섰다. 매일 8시간 정해진 주행을 마치면 그 지점 부근의 숙소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이른 아침 6시면 출발하는 일정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저녁밥을 먹고 일찍 잠을 잔다고 침대에 들어서지만 웅이는 낮에 운전을 한다고 에너지 드링크와 커피를 들이켠 탓에 잠을 푹 자지는 못했다. 그래서 보통 4-5시간 정도만 잠을 자고 다음날 운전 일정을 또 소화해야 했다.


다행히 나는 머리 댈 곳만 있다면 어디서나 잠이 잘 드는 사람이라, 차에서도 낮잠을 자고 숙소에서도 푹 잘 잤지만 잠깐 눈만 붙이고 이른 아침 일어나 차에서 저녁까지 하루를 보내는 건 체력적으로 쉽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쉽지 않은 여정에도 불구하고 가장 좋았던 이번 일정의 묘미는 운전수 웅이와 조수석에 앉은 내가 나란히 붙어 앉아 좋아하는 음악을 번갈아 들었다,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온갖 수다를 끊임없이 매일 원 없이 떨었다는 점이다.



웅이와 나는 만남 초기부터 둘이서 엄청 많은 대화를 나눴고 지금도 그 점은 변함이 없다. 특별한 주제라고 할 것도 없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떤 화제를 던지거나 질문을 하면 그로부터 시작된 온갖 이야기가 나뭇가지처럼 퍼져나가면서 온갖 얘기를 나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이야기가 오간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갑자기 가볍고 실없는 주제로 넘어가기도 하며 함께 웃는다.


티아라 그룹 멤버 지연과 야구선수 황재균 선수의 결혼 전 연애가 시작된 스토리를 유튜브에서 보게 되었다. 그들은 두 번째 만남에 밤 11시에 만나서 새벽 4시까지 5시간 동안 둘이서 차에 앉아 (코로나 시국이었기 때문에) 계속 수다만 떨었다고 한다.


‘엇?! 웅이랑 나도 저랬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웅이의 얼굴도 보기 전 서로 연락처만 알고 지냈던 시점에서 카톡을 며칠간 주고받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통화를 하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문자나 카톡을 잘하지 않는 나로서는 먼저 웅이에게 통화를 하자고 제안했다!)


아마 첫 통화를 밤에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웅이와의 첫 통화에 다음 날 해가 뜨는 걸 보고 잠이 들만큼 밤이 새도록 둘이 수다를 떨었다. 그것이 시작이 되어 그날 이후로도 시간만 맞으면 밤에 자주 전화 통화를 했다. 그리고 시작된 우리들의 수다는 서로가 살아온 경험과, 여행, 연애, 생활 등 수많은 온갖 주제들로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웅이의 이야기를 듣는 게 즐거웠다.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얼굴도 본 적 없는 낯선 이성에게 잘 표현할 수 있었는지는 나의 과거의 연애 경험에 비교해 봤을 때, 지금도 완전히 풀리지는 않는 의문이지만 (아마도 웅이의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여유로움이 한몫했다고 생각) 어쨌든 나도 나의 이야기를 웅이에게 전하는게 즐거웠다.


며칠을 이렇게 늦은 밤마다 새벽녘까지 전화 통화로 수다를 떨다 보니, 당시 함께 살던 여동생으로부터 ‘이제 그만 자자!’라는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래도 뭐가 그리 즐거웠던지 동생의 잠자리를 피해 방 한구석으로 가서 몰래 계속 웅이랑 수다 떨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도 가끔 침대에 누워 둘이서 수다를 떨다 내가 먼저 졸려 잠이 들려고 하면 웅이의 배려는 없다. ‘나 안 졸린데, 얘기 더 하고 싶은데!’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원하는 바가 명확하고 거침없는 사람이란 걸 참 잊을만하면 다시 상기시켜 주는 웅이다.


“웅아, 나는 오늘 우리가 좀 더 나이가 들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가며 이가 빠지고 기력이 다해도 지금처럼의 활기는 좀 잃을지언정 우리의 못다 한 얘기들은 계속할 거란 생각이 들어. 그리고 그간 또 한가득 쌓인 우리들의 추억과 기억들을 곱씹는 수다들은 얼마나 재미가 있을까” 하는 달콤하고 귀여운 상상을 해봐.


여전히 차량으로 미국횡단은 난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 사이에 너랑 맘껏 수다를 떨 수 있는 여유가 펼쳐진다는 것에 우리의 다르디 다른 여행의 온도차는 퉁쳐보는 걸로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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