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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집사 May 06. 2024

Ep 15 야채맛 나는 그 칵테일

우리는 사랑일까? 2

《우리는 사랑일까 The Romantic Movement》는 런던에 사는 광고 회사 직원 앨리스가 파티에서 만난 남자 에릭과 엮어가는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다. 상대를 환상적인 남자라고 생각하는 낭만적인 만남에서 시작해서, 어쩐지 점점 상대가 낯설게 느껴지고 대화가 통하지 않지만 여전히 사랑한다고 느끼는 기간을 거쳐, 자기 자신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헤어짐을 선택하는 이별에 이르기까지, 알랭 드 보통은 사랑에 대한 남녀의 다른 심리를 꿰뚫어 보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남자가 생각하는 사랑은 어떤 것인가? 연애하면서 남자가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는 사고방식과 태도가 여자에게는 왜 그리 낯설고 쓸쓸하게 받아들여지는가? 그러면서도 왜 많은 여자는 앨리스처럼 ‘그래도 나는 그를 사랑해’라고 느낄까? 왜 사랑한다고 믿는 두 사람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서로 다를까? 작가는 제삼자의 관점에서 남자와 여자의 인식 차이, 의사소통 방식의 차이, 개인의 성장 배경에 따른 문화의 차이 등을 때로 철학 이론 등을 동원하며 특유의 재치와 유머를 담아 펼친다.


우리는 사랑일까 by 알랭 드 보통  '옮긴이'의 글  



: "웅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칵테일이 뭐야?"


: “음….(심리적 공백 10분이 흘렀다.) 일단 두 가지가 있어…그… 야채맛 나는 거 하나랑… 음…

다른 하나는 마가리타? ….


내가 아무 대답이 없자, 웅이는 목마른 사슴처럼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목이 메인 듯 말이 갑자기 길어진다.


그렇게 또 추가적인 심리적 공백 10분이 더 흐르고 결국 내뱉은 웅이의 대답은



: “그…. 매일 마시고 싶은 게 그때그때마다 다르지 않았어?”


나는 역시나 하는 한숨을 내뱉으며 2단계 질문으로 넘어간다.


: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 뭐야?”

이 질문에는 대답이 로켓처럼 초스피드로 튀어나온다.


: “핑크색! 연핑크?! 맞지? 맞지?!”


내가 정답!이라고 속 시원하게 외쳐주길 바라고 있지만 아무 말이 없자 또다시 목멘 사슴의 부연설명이 이어진다.


: “음 맞는데? 베이비 핑크 맞지? … 나도 연핑크 좋아해. 연핑크 옷 잘 어울리잖아. 나는 그 색상 옷 잘 어울리는 사람이 좋더라고”



여기서도 못 맞추면 3단계 질문이 이어질 기세였지만 다행스럽게도 내가 좋아하는 색상을 기억해주고 있었다. 이 정도면 아주 기특해서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이다.


그리고서 웅이는 다시 듣고 있던 음악의 세계로 돌아가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칵테일 얘기는 벌써 잊은 듯싶다. 나는 상식상 내게 “그래서 제일 좋아하는 칵테일이 뭔데?” 하는 대화의 흐름상 한 번쯤 물어볼법한 질문도 하지 않은 채 이미 음악 비트에 빠져있는 웅이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내가 콕 집어 얘기해주지 않으면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도 내가 좋아하는 칵테일을 모르고 살 남자이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한 열 번 정도 콕콕 집어 얘기해 줘야 알 것 같다.



: "나는 웅이가 무슨 칵테일 좋아하는지 알아!  ‘마가리타!’ 맞지?


약간 망설이더니 웅이는 답한다. (본인과 다르게 정답을 너무 쉽게 맞힌 나를 향한 당황의 순간일까)


: “음… 아닌데? 나 예전엔 모히또 좋아했어”


: “그러니까, 지금은 마가리타 맞잖아”


: “…. 응. 맞아”


이렇게 나는 이번 기회로 웅이가 현재 좋아하는 칵테일에 이어  과거 좋아했던 칵테일까지 전부 머릿속에 입력했다. 웅이는 내가 과거에 좋아했던 칵테일은커녕 현재 좋아하는 칵테일도 모르고 살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런 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나 역시 공감하기에 더 이상 질문을 멈추기로 한다.



인연의 궁합은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봤을 때 ‘어떻게 연인 사이에 그럴 수 있어?’ 할 수도 있는 것들도, 겉으로 보이는 이면에는 깊고 복잡한 둘만이 알고 공유하는 겹겹이 쌓인 감정들이 존재하기에 절대 미루어 짐작할 수 없다. 조용하고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관계의 내면은 생각 이상으로 무척 단단할 수 있으며, 화려해 보이는 관계의 이면은 잦은 갈등으로 얼룩져 있을지- 절대 우리가 알 수 없는 많은 요소들이 관계에는 다양하게 얽혀 있다고 생각한다.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에 나오는 여주인공 앨리스의 기준에서 바라볼 때 이성으로서 웅이는 애초에 자격미달일지 모르겠다. 상대방의 소소한 부분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심지어 모르는 것들에 대해 깊게 알아가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나에게 웅이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대체 불가능한 선물 같은 존재이다. 그는 나를 배꼽 잡고 까르르 웃게 만드는 아주 멋진 춤을 출 줄 아는 사람이고, 나의 걱정과 불안을 침착하게 가라앉혀 줄 수 있는 사람이며, 대화가 재밌고 상대방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터프하면서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사람이다. 아이 같은 해맑은 웃음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칵테일 이름 하나 정도 몰라도 관대하게 눈감고 넘어가줄 수 있다.


오랫동안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내가 ‘슈가맨’ 타입의 이성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웅이의 존재와 그 속에서 펼쳐지는 우리의 관계 속에서 결국 나의 본능과 직관이 틀리지 않았구나를 서서히 알아가게 되었다. 웅이는 전혀 ‘슈가맨’ 타입의 남자가 아니지만 내게만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선물이라는 것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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