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웅집사 Apr 29. 2024

Ep 14 그녀가 좋아하는 칵테일

우리는 사랑일까?

앨리스에게 사랑은, 상대에 대해 아는 게 많을수록 더 진실하게 느껴졌고, 그만큼 사랑이란 세세하게 많이 아는 것과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증거도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상대의 존재 요소〔나이, 직업, 국적 등등〕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소소한 부분이 중요했다 ― 어떤 잼을 좋아하는지, 어린 시절의 일화에 대한 기억, 좋아하는 꽃이나 사용하는 치약 이름 따위.


그녀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 그래서 결국 그녀의 본모습을 알게 해주는 사람에게 신뢰가 생겼다. 그런 이와 함께하는 대화는 “내가 이 이야기를 당신에게 했던가, 룸메이트에게 했던가?” 하고 머뭇거리는 말보다는 “지난주에 당신이 했던 …… 이야기가 기억나는군요”와 같은 말로 채워질 터였다. 그런 사람들은 그녀의 세세한 부분을 기억했고〔“어릴 때 어머니와 스트라스부르에 갔다고 했죠, 그때……”, 더 사소하게는 “차에 설탕을 두 숟가락 넣지요, 그렇지요?”〕, 따라서 그녀는 그들의 의식 속 갈피갈피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가 특정한 단어를 발음하는 습관이나 포크를 쓰는 독특한 습관, 좋아하는 책이나 레스토랑에 대한 취향을 어떤 남자가 기억한다고 하자. 그것은 값비싼 장미나 강렬한 고백보다 더 그 뜻을 잘 전달했고, 그녀는 이 사람이 자신을 아낀다는 걸 신뢰할 수 있었다. “당신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다워요”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그 귀고리는 정말 잘 어울려요. 지난 화요일에도 그걸 달았죠?”라고 말하는 사람을 그녀가 더 좋아하는 것은 단순히 겸손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속 여주인공 ‘앨리스’처럼 생각하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는 언어나 행동으로 드러나는데 그중 언어에 집중해서 생각해 보면 꽤나 앨리스처럼 생각했다고 부인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칵테일의 이름을 기억해 뒀다 두 번째 만남에 나 대신 능숙하게 내가 좋아하는 칵테일을 주문해 주는 남성, 어떨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이성을 바라면서도 바라지 않는다.


바란다는 것은 소설 속 여주인공 앨리스와 같은 입장에서 누군가가 나의 말 한마디에 의미를 두고 기억해 둔다는 점에서 이 사람은 ‘나를 신경 쓰고 있구나’ 하는 단순한 결론에 다다른다. 그렇다면 그는 내가 좋아하는 색, 칵테일, 음식 취향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애정이 넘쳐 보일 수 있다. 실로 언어의 힘은 위대하기 때문에 연애 초부터 진지한 관계로 발전하기까지 이러한 디테일 섞인 대화를 나누는가, 나누지 않는가는 감정을 많이 뒤흔드는 요소였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내가 좋아하는 칵테일을 기억해 주는 이성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1. 진심으로 내게 호감이 있어 맘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2. 원래 성격이 그러한 사람. 내가 아니라도 이성 불문 누구를 만나도 상대방의 취향이나, 습관 등 상대방의 디테일에 관해 언어로 잘 풀어내고 질문을 잘하는 사람. → 글의 편의상 이 글에서 이러한 사람을 ‘슈가맨’이라고 칭하겠다.


* Sugarcoat: To make something seem more positive or pleasant than it really is



반대로 슈가맨을 바라지 않는 점에서도 꽤 확고한 주관이 있었는데, 살면서 나는 항상 단순하고 섬세하지 않은 이성을 선호했다. 나의 취향, 습관, 했던 말 등을 기억해 주는건 고맙지만 어떤 의미에서 이렇게 섬세하고 디테일을 잘 아는 이성이라면 뭔가 나랑은 맞지 않을 것 같다는 본능적인 직감이 계속 나의 연애표에서 따라다녔다. 나 자신을 연애에 있어서 ‘슈가맨’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와 비슷한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두 명의 슈가맨의 만남이므로 이건 자칫 투머치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나의 슈가맨에 대한 욕망과 거부를 동시에 바라던 감정 소용돌이의 결말은 내 인생에 가장 오래 머무른 이성이며, 희망적으로 마지막 인연이 될 웅이의 존재로 결론을 내 볼 수 있겠다.



그래서 이미 웅이는 슈가맨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 알지만 재확인을 하기 위해 글을 쓰며 웅이에게 실시간으로 물어본다. 일단 나는 웅이가 제일 좋아하는 칵테일은 ‘마가리타’라는 것을 알고 있다. 웅이는 과연 어떨까.



‘웅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칵테일이 뭐야?’

이전 14화 Ep 13 수다의 뫼비우스 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