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국 횡단 여행으로 새롭게 알게 된 점은 무엇일까?’
첫 번째로 나에 관해선, 어디서든 잘 잠들 수 있는 나의 예민하지 않은 잠버릇은 장기여행에 꽤, 아니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잠이 많기도 하거니와 체력을 음식보다는 잠으로 보충한다는 느낌으로 사는 몸뚱이를 가졌기에 나에게 밤의 충분한 수면과 낮에 잠깐 자는 달콤한 낮잠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엄청 난 에너지의 원천이다. 다행히 소리에도 그다지 예민하지 않았고 장소의 불편함도 나의 쏟아지는 수면욕 앞에서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장거리 운전에 웅이가 듣고 싶은 곡을 계속 틀어놓고 운전해도 곧잘 낮잠을 한 번씩 자며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점은 장거리 여행에 있어 쉽게 지치거나 예민해지지 않을 수 있게 해주었다.
두 번째로는 웅이와의 수다는 하루 열 시간 이상씩 차에서 앉아 있어야 하는 시간이 지루한 줄 모르게 흐를 수 있었던 엄청난 활력소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대화가 많은 우리들은 미국 여행을 하는 차 안에서 우리들에 관한 못다 한 이야기 혹은 잊어버린 과거사에 대한 추억팔이, 최근의 취향과 관심사 이야기, 재밌었던 일화 등 온갖 이야기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일에 관한 이야기, 미래에 해보고 싶은 것, 하고자 하는 것들 등 평소에 깊게 얘기 나누지 못했던 다양한 주제들이 쏟아져 나온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절대적으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세 번째는 미국이란 나라의 자연경관에 대한 경이함이다. 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동서로 끝과 끝을 차로 횡단하며 느낀 건 대게 사람들에게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자연경관은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차로 미국을 횡단하며 본 자연경관의 다채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미국의 협곡 하면 그랜드 캐니언이 유명하지만 그것은 미국의 유명한 협곡의 일부일뿐 유타주에는 그랜드 캐니언과 비슷한 혹은 다른 식으로 멋짐을 자랑하는 협곡이 넘쳐난다. 각 고유의 협곡이 지닌 색과 모양이 다양하며 개성이 넘친다.
야생 말과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고 있는 푸르른 초원이 한 동안 펼쳐지기도 한다. 미니 바다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커다란 호수를 끼고 주변에 모여있는 언덕 위에 솟은 동화 같은 마을, 햇빛 사이로 지상은 여름날씨지만 저 멀리 서는 녹지 않는 눈산이 펼쳐져 있기도 하다.
유럽이며, 호주, 동남아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해 보며 멋지다 하는 자연경관을 많이도 봤지만 미국의 특이한 점은 일단 가진 땅덩어리가 큰 만큼 그 스케일 자체가 어느 나라와 견주어 봐도 단연 월등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와 멋지다’하는 입을 못 다물게 하는 경치가 한 번 나타나면 몇 분 스쳐 지나가는 풍경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몇 시간씩 그 황홀한 경치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그러한 풍경을 넋 넣고 보고 있노라면 머릿속에 있던 각종 잡다한 생각의 소용돌이는 잦아들고 몸과 정신 모두 자연 풍경에 빼앗겨 고요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말 없이 풍경에 빠져들어 무언가에 홀린 듯 한동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곤 했다.
그러곤 어느샌가 정신이 들어 현실로 돌아와 차오르는 생각은 ‘언제 마지막으로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내보았나?’ 하는 것이다. 미국의 황홀한 풍경에 빠져 멍 때리며 보낸 시간은 여러 의미로 나에게 엄청난 힐링이 되었다. 어릴 적 엄마가 왜 풍경 사진을 찍고 꽃 사진을 찍고, 나무 사진을 찍는지 몰랐다. 이제는 그 의미를 조금은 가까이 알게 된 것 같다.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앞서 오랜 풍파를 거치며 만들어진 자연 고유의 형태와, 굴곡을 담고 있었던 다양한 형태의 미국의 자연경관은 우리 인간들이 억지로 깎고 인공적으로 재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고유의 형태가 내뿜는 빛이 세월의 흔적과 함께 숨 쉬며 각자의 자리를 굳세게 지키고 있었다.
사실 유튜브며 영화며 각종 미디어에서 좋다, 멋지다 하는 곳들은 세계 곳곳에 넘쳐나지만 그것을 텔레비전으로 보는 것과 내가 그 공간에 직접 가 눈앞에 실물을 마주하는 것의 차이는 확실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엄청난 차이를 제대로 실감 나게 느낄 수 있었던 게 바로 이번 웅이와 함께한 미국여행이었다.
결론적으로 자동차로 미국을 동서로 횡단한 이번 여행은 잠꾸러기인 나를 한번 더 확인한, 웅이와의 수다는 역시나 중독처럼 재밌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국의 자연경관은 절대 떠도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을 수 없는 기대 그 이상의 장관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여정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장관의 묘미는 나의 몸과 마음을 한숨 쉬어가게 하는 힐링 그 이상의 평온함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이 좋은 걸 시간 나면 꾸준히 종종 누리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