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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집사 May 27. 2024

Ep 18 인생의 얄팍한 방어막



“아무도 예술가의 작품 속에서 그것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지 못한다.” 니체는 말했다. “그 편이 나은 점도 있다. 작품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보게 되는 경우에는 언제나 반응이 다소 시들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마크 스피츠가 남들은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도 갖지 못한 수영에 대한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고 믿고 싶어 한다. 우리는 수영장 옆에서 그가 아마추어에서 프로 선수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걸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완성된 탁월한 기량’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일상성보다는 신비함을 선호한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가? 마크 스피츠가 우수한 기량을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고 우리 스스로를 기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허영심과 자기애가 천재 숭배를 조장한다.” 니체가 말했다. “왜냐하면 천재를 마법적인 존재로 생각한다면 우리 자신과 비교하고 우리의 부족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신적인 존재’로 부르면 ‘우리는 그와 경쟁할 필요가 없어진다.” 즉 선천적 재능으로 신화화함으로써 우리 모두는 경쟁에서 면제받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 안주하게 된다.


그릿 by 앤절라 더크워스




요즘 아주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흥미롭게 읽었던 책이 있다 ‘그릿’이라는 책인데 최초 발행일이 2016년이니 거의 10주년이 다 되어가는 스테디셀러인 책이다. 맘 한구석에 언젠가 읽어야지 하고 계속 미뤄두다 친구의 추천으로 드디어 책장을 펼쳐보게 되었다.


작가인 앤절라 더크워스는 책 제목인 그릿에 대한 정의를 ‘그릿은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끝까지 해내는 힘이며, 어려움과 역경, 슬럼프가 있더라도 그 목표를 향해 오랫동안 꾸준히 정진할 수 있는 능력이다’라고 말한다. 성공의 원인을 재능이나 IQ, 혹은 부모의 재력 같은 외부적인 조건이 아닌 한 개인이 지닌 불굴의 의지, 즉 ‘그릿’이라는 것을 다양한 실험과 자료들 그리고 경험들을 통해 샅샅이 파헤쳐낸 책이다.



그중 본문에서 니체를 말을 인용한 다음 구절이 워낙 인상 깊어 밑줄치고 여러 번 곱씹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니체가 말했다. “왜냐하면 천재를 마법적인 존재로 생각한다면 우리 자신과 비교하고 우리의 부족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신적인 존재’로 부르면 ‘우리는 그와 경쟁할 필요가 없어진다.” 즉 선천적 재능으로 신화화함으로써 우리 모두는 경쟁에서 면제받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 안주하게 된다.


웅이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어오면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다는 혼자서 집에 틀어박혀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몇 시간이고 그림 그리는 걸 놀이처럼 즐겼다고 한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당시 또래 친구들이 모두 2D 스타일로 평면적인 그림을 그렸던 반면에 웅이만 반에서 혼자 3D 스타일로 입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잘 눈여겨본 미술 선생님이 웅이에게 같은 반 친구들의 지도를 도와주려고 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고등학교 입시도 다른 과목의 내신 점수가 엉망인 것도 커버할 만큼 실기 (그림) 점수가 뛰어나서 디자인 관련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모든 이야기를 펼쳐놓고 들어보면 소위 그림 천재까지는 몰라도 그림 영재의 스토리를 듣는 것 같다.  그리고 웅이를 만나온 초반에는 나도 어느샌가 이런 생각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예술이건 운동이건 뭔가 타고난 게 적당히 좀 있어야 관련 업종에서 좋은 출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란 생각말이다. 물론 이건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 맞는 말이고 여전히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사실상 키가 크면 농구를 하는데, 손가락이 길면 피아노를 치는데 유리하다. 박자 감각이 좋고 목소리가 좋으면 노래를 부르기에 좋으며, 남들보다 타고 한 감수성은 많은 영역에서 더 디테일한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신체적으로 타고난 것들과 환경적인 영향이 특정 하고자 하는 영역에 있어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러한 생각들의 엄청난 위험은 자칫 이러한 생각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나를 어떠한 시도를 하는 데 있어 틀 안에 가둬두는 그물망처럼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의 연장은 최악으로 치닫아 니체의 우려처럼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게 하는 방어벽이 되어 현실에 안주하게끔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웅이를 만나오며 주변에서 내게 웅이와 같은 업계에서 일해 볼 생각은 없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아봤다. 왜냐하면 업계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웅이가 내게 멘토이자 리드 역할을 제대로 해줄 수 있는 환경이기에 업계에 들어가 자리 잡기가 누구보다도 수월한 것은 명백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많은 좋은 환경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나의 생각은 이랬다. ‘나는 절대 웅이 같은 사람과 경쟁할 수 없어. 왜냐하면 웅이는 어릴 때부터 또래 아이들에 비해 월등하게 그림 실력이 좋았던 아이인데,  그리고 이러한 웅이 같은 사람들이 현직 업계에는 수두룩 할 텐데 그림을 그려오지도 않고 살았던 평범한 내가 굳이 이 업계를 택해서 이러한 이들과 경쟁을 해야 하나.’란 생각이었다.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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