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없던 시기가 있었다. 연락이 끊기고, 프로젝트가 비고, 계획했던 일정들이 모래성처럼 무너졌던 어느 시기. 처음엔 휴식이라 생각했다. 오랜만에 시간을 비우고,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시간.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그 빈 시간이 점점 무서워졌다.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감각, 연락이 오지 않는 핸드폰, 일정이 비어 있는 달력. 멍하니 커피를 마시고, 다 본 드라마를 다시 돌려보면서 하루를 보내는 일상이 나를 점점 삼켜갔다. ‘지금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면, 존재 자체가 흐릿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몸은 멀쩡했지만, 마음은 무너지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 아니 몇 주가 지나던 어느 날, 나는 공장 구직 사이트를 뒤지고 있었다. 정말로. 단기 근무, 단순 작업, 체력 소모는 있으나 즉시 시작 가능. 클릭 몇 번으로 지원을 완료했고, 다음 날 아침 나는 낯선 공장 단지 안에서 간이 작업복을 입고 서 있었다.
내가 걸친 작업복이라고 해봤자, 또다른 나들이 이전에 신고간 낡은 흰색 실내화와 머리카락이 들어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쓰는 머리망 정도. 대접도 당연히 내가 받아왔던 것과는 달랐다.
"여기 공장이야! 요조 숙녀하러 왔어? 다들 정신 차려요! 여기 공장이야!"
요조 숙녀 취급을 받으려고 찾아온 건 아니었지만, 공장 직원들에게 알바란 그런 존재였다. 사회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 망하거나 일이 잘 안 풀리는데 돈은 필요하니 어쩔 수 없이 자존심을 구기고 들어와서 자기들 밑에서 요조 숙녀인 척 깨작깨작 박스를 접는 사람들. 하지만 나름 우리도 치열하게 삶을 사는 사람임을 보여주고 싶어서 괜히 그 말에 반응도 하지 않고 더 열심히 박스를 접었다. 2초에 1개씩 박스를 접다보면 사람이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러너 하이처럼 이상한 박스 하이 타임이 찾아온다.
프리랜서라는 이름과는 너무 다른 공간.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곳에서는 마음이 편했다. 누가 나를 부르지 않아도,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지 않아도, ‘일하고 있다’는 감각이 나를 버티게 해줬다. 물건을 옮기고, 테이프를 붙이고, 시간마다 종이 울릴 때마다 쉬는 그 단순한 루틴 속에서, 나는 다시 내가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박스를 접어 내려놓는 소리가 내 심장박동 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었냐고 묻는다면,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았다. 불안한 마음을 구조화하기 위해서라도,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만 했다. 결과가 없으면 존재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던 그 시절, 나는 그렇게 공장에 나가며 버티고 있었다.
지금도 가끔 그런 감각이 찾아온다. 일이 없을 때, 아무것도 생산해내지 못한 채 하루가 끝나버릴 때, 다시 어딘가의 공장에 가고 싶은 충동이 밀려오곤 한다. 그 충동은 단순히 생계 때문이 아니다. 나를 잊지 않기 위해, 나라는 사람이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한 일종의 본능 같은 거다.
프리랜서로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싸움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연습을 매일 해야 하고, 하지 못한 날의 나를 미워하지 않는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 나는 아직 그 연습이 미숙하다. 그래서 때로는 너무 급하게, 너무 필사적으로 어딘가에 나간다.
공장이든, 편의점이든, 다른 현장이든. 그곳에 서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오늘 하루, 나 자신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