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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석 Mar 14. 2023

두 번의 기적, 드디어 그 땅에 서다

1/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이스라엘편-1)

   ‘드르륵, 드르륵’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렸지만, 내 귀는 고철덩어리가 돌바닥을 훑어내는 이 간헐적인 소리를 금세 구별해냈다. 반사적으로 따라간 내 시선, 틀림없다! 템플마운트로 올라가는 길을 야속하게 가로막았던 바리케이트를 이스라엘 군인들이 걷어내고 있었다. 긴장되면서 가빠진 호흡만큼이나 이번엔 다리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실 정세가 불안한 이스라엘을 무리하게 일정에 넣은 것도 템플마운트가 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번번이 입구에서 좌절해야 했다. 무슬림의 기도 시간을 피해 하루 두 번, 아주 짧게 외지인에게 입장이 허용되었지만, 열흘 전 시장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개방이 무기한 보류된 탓이다.


   그런데 예고도 없이, 갑자기 눈앞에서 기적이 일어나다니!


   어렵사리 찾아온 기회를 놓칠새라 서둘러 입장했다. 관람료는 없다.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을 성큼 올라서니 알아크사 사원이 먼저 반긴다. 그리고 맞은편에 예루살렘의 상징, 황금빛 지붕이 인상적인 바위위의 돔 사원이 당당한 풍채를 드러냈다.


   두 개의 사원이 자리한 템플마운트에는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하긴, 워낙 갑작스런 개방에 사람들이 몰려오려면 시간이 걸리겠지! 덕분에 산 정상을 오롯이 독차지했다.


   바위위의 돔 사원에 가까이 가본다. 팔각형 외벽에는 이슬람 특유의 아라베스크 문양이 멋진 푸른 타일로 가득하다.


   687년 이슬람 세계 최초의 통일왕조인 옴미아드 왕조가 짓기 시작한 이래, 복잡한 역사를 거치면서도 당시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다. 후대 왕조에서 부가적인 수리만 몇 차례 있었을 뿐이다. 가장 최근에는 1993년 요르단 후세인 국왕이 사재 650만 달러를 기부해 24K 얇은 순금판으로 돔을 덮었다.           

  

(사진1-1. 템플마운트와 바위위의 돔 사원 ©이경석)

 
   내부로 들어갔다.


   사원 중앙에는 지름 18m의 돔 아래 자연 그대로의 바위가 노출된 원형의 공간이 있다. 그걸 팔각형의 공간이 다시 에워싼다. 8개의 기둥이 팔각형의 꼭지점이 되고,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3개의 아치로 된 가벽이 팔각형의 각 변을 이룬다.


   템플마운트는 성벽이 둘러싼 예루살렘 올드시티에서 가장 높은 바위산인데, 대부분 인공기단에 덮여있으니 자연 상태의 바위를 볼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


   이 바위 위에서 아브라함은 야훼의 부름을 받아 자식(성서에서는 막내아들 이삭, 꾸란에서는 장남 이스마엘)을 바치려 했다. 또한,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천사 지브릴(가브리엘)을 따라 여기서 승천하여 알라를 만났다고 전한다. 당연히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모두 신성시하는 장소가 되면서 중동 분쟁의 뇌관이 되었다.


   이에 유엔은 사원이 있는 올드시티를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국제법상 특별관할구역으로 지정했지만, 제3차 중동전쟁(1967년)에서 이곳을 포함해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스라엘은 철군할 생각이 없다. (트럼프 시절, 미국은 한술 더 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식화했다) 여기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한 독립국가 실현을 굽히지 않는다.


   양측 간 평화협상이 번번이 깨지는 쟁점의 한가운데에는 동예루살렘에 자리한 올드시티, 좁히면 바위위의 돔 사원을 누가 갖느냐의 문제가 자리한다.      


(사진1-2.  바위위의 돔 사원 평면과 내부 구조)


   그 바위를 직접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바위에 얽힌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바위위의 돔 사원이 세워지기 훨씬 오래전, 템플마운트에는 솔로몬의 성전(그래서 템플마운트, 즉 성전언덕으로 불린다)과 궁전이 있었다. 야훼가 모세에게 준 십계명이 새겨진 석판을 다윗왕이 성궤에 담아 여기 지하에 안치했고, 아들 솔로몬은 7년에 걸쳐 그 위에 지상 최고의 성전을 지었다.


   당시 최첨단 건축 기술이 집약된 성전은 그러나 바빌로니아의 침입으로 불타버렸다. 이후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 황제 키루스의 선처로 바빌론을 떠나 고향에 돌아온 유대인들에 의해 성전은 소규모로 재건되었다. 그마저 100년을 넘기지 못하고 또다시 로마제국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다.


   템플마운트에는 지금 성전의 주춧돌 흔적 하나 남아있는 게 없다. 오로지 템플마운트 서쪽의 기단부, 지금은 ‘통곡의 벽’이라 불리는 석벽만이 유일하게 3천 년을 버텨왔다. 그러니 솔로몬 성전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성서 등의 문헌을 통해 그나마 상상해볼 수 있다. 길이 27m, 너비 9m, 높이 14m로 테니스코트 정도 크기다. 입구에는 각각 ‘지혜’와 ‘권력’을 상징하는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기둥이 세워졌다.


   가장 안쪽에 성궤가 놓인 지성소는 순금으로 장식되었고 한 쌍의 케루빔(인간 혹은 동물의 얼굴을 한 날개달린 천사)이 지키고 있는데, 유대교 대제사장만이 출입 가능했다. 지금은 지성소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니 독실한 유대교인들은 행여나 실수로라도 그곳을 밟을까봐 템플마운트에는 아예 올라가지 않는다고 한다. 성궤는 사라지고 성전은 언덕 이름에만 남았지만, 이곳이 갖는 장소적 상징성은 그만큼 지대했다.


그리고 여기 성전을 배경으로 또 하나의 전설이 시작된다.


(사진1-3. 솔로몬성전 복원모델 ©Berthold Werner)


이스라엘 입국, 두 번의 기적


  그리스 아테네에서 비행기로 1시간 40분. 저녁 10시 무렵에야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했다. 건장한 사내가 트랩에서 내리는 탑승객들을 유심히 보더니 나를 향해 손짓을 한다. 엉겁결에 반갑게 손을 흔들었는데, 그래서는 안되는 거였다. 다짜고짜 나를 독방으로 데려가더니 옷을 벗으란다. 헉~! 아까 눈웃음까지는 아무래도 과하다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황당한 상황에 잠시 주춤한 사이, 저 방자한 살덩이는 내 머릿속만큼 복잡한 배낭을 헤집으며 꼬릿한 빨랫감까지 발라내고 있었다. 그리고는 속옷만 걸친 내 몸을 망측하게 스캔 뜨더니, 속사포처럼 질문을 쏘아댔다. 방문목적은? 왜 혼자서? 경비는 얼마나? 어떻게 벌었냐? 취조를 당하는 것 같았다. 아니, 당했다! 그제야 가출했던 정신이 기어들어 왔다. 나를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보는 게 분명했다. 젊은 동양인 남자가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이스라엘에 입국하는 게 흔치는 않을 터. 하루 같던 한 시간이 지나고, 나는 다행히 추방 대신 입국을 허락받았다. 인생 최대의 어려운 면접시험에라도 합격한 듯, 하마터면 살덩이를 꼭 껴안고 엉엉 울 뻔했다.     


   내심 불쾌했지만, 당시 이스라엘은 거의 사나흘마다 폭탄테러가 발생하던 터라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었다. 1987년 팔레스타인의 민중봉기인 제1차 인티파다가 1995년 오슬로 평화협정을 거쳐 1996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이라는 결실을 맺은 직후였다.


   하지만 이스라엘 극우파는 평화협정을 주도한 라빈 총리를 암살했고, 극단주의 하마스의 선동에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도 위협받고 있었다. 양측의 과격파들은 평화협정을 깨기 위해 서로를 자극했고, 그 와중에 폭탄테러는 일상이 되었다. (결국 2000년 야당 당수이자 나중에 총리가 된 이스라엘 극우파 샤론이 템플마운트를 예고 없이 방문하면서 제2차 인티파다를 촉발했고, 평화협정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다음날, 요구르트 하나 사러 슈퍼마켓에 들어가는데도 공항검색대 수준의 보안검사를 받았다. 숨막히는 분위기가 싫어 계획보다 하루 일찍 예루살렘에 가기로 결정, 곧장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1시간 30여분. 드디어 예루살렘에 왔다는 감격도 잠시, 올드시티 행 시내버스를 찾아 근처를 얼씬거렸지만 왜 이리 다들 시크한지! 그렇게 헤매다 제법 큰 재래시장을 발견했다. (나중에 보니 마하네 예후다 시장이라고 꽤 유명한 곳이다) 마침 점심도 먹어야 했고, 이리저리 구경하며 과일도 샀다.


   늦은 오후, 마침내 올드시티 서쪽 자파게이트 앞에 섰다. 순례길을 따라 로마군대와 십자군, 영국군의 입성 통로가 되었던 영욕의 문을 통과하자 세기말의 번잡함은 단번에 중세 내음 가득한 풍경으로 확 바뀐다.


   끝에서 끝까지 걸어도 15분이면 충분할 만큼 작지만, 올드시티는 분위기가 다른 4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각각 유대인 구역, 아르메니안 구역, 기독교 구역, 무슬림 구역인데, 희한하게도 올드시티에선 폭탄테러가 거의 없다. 좁은 곳에서 복작복작 살면서 종교도 갈라놓지 못할 인간적 유대라도 생긴 걸까? 아니면 성지에선 서로 공격하지 않겠다는 암묵적 공감대가 형성된 걸까? 아무튼 히브리어로 이르(도시)+샬롬(평화)의 어원을 가진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의 진짜 얼굴은 서로가 공생하는 올드시티란 생각이 들었다.


   무슬림지구의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푼 나는 이 묘하고도 독특한 분위기를 즐기며 밤늦게까지 올드시티 골목길을 누비고 다녔더랬다.              


(사진1-4. 좌: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자파게이트 ©Yoninah, 우: 올드시티의 네 개 구역도)


   다음날 느지막이 눈을 뜨니 도미토리의 다른 배낭객들은 벌써 나가고 없다. 브런치로 1층 부엌에서 라면을 끓였다. 막 먹으려는데 TV에서 갑자기 특집방송을 한다. 네탸냐후 총리가 비장한 얼굴로 복수를 다짐하는 걸 보니 또 폭탄테러가 있었나 보다. 별 생각없이 화면 속 처참한 현장을 응시하는데,      


   '가만, 저기......저, 어디서 봤던 곳인데......!'      


   순간, 차디찬 소름이 등골에 지진을 일으키며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왔다. 바로 거기였다! 어제 점심을 먹었던 시장. 그리고......폭탄은 과일을 샀던 가게 앞에서 터졌다. 테러가 일어난 시간도 얼추 그 무렵. 순간 멍해졌다. 이건 기적이야! 원래 계획대로 오늘 예루살렘에 왔다면......추레한 행색으로 바나나를 입에 문 채 개죽음당한 외국인으로 뉴스를 장식할 뻔했다! 하지만 송연해진 모골을 라면에 맛있게 말아먹고는 곧장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싸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사이, 한국에선 난리가 났다.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었다. 사흘 후에 연락드리니 실종신고 할 뻔했다고!)      


   그런데 쉽게 잊혀졌던 폭탄테러는 엉뚱한 방식으로 날 괴롭혔다. 템플마운트가 무기한 폐쇄된 것이다. 곧 열리겠지 하는 기대는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실망과 분노를 넘어 체념에 다다랐다.


   이러다 성질 버리겠다 싶어 예루살렘을 떠나기로 작정한 마지막 날, 통곡의 벽을 다시 찾았다. 유대인들 사이에 끼어 벽 틈에 쪽지를 밀어 넣고 눈 감아 기도하는데, 또 한 번 기적이 찾아온 것이다. 효험있네! 언젠가는 템플마운트 보게 해 달라 쪽지에 적었는데, 이렇게나 빨리 소원성취할 줄이야! 여기 신과 제일 가까운 동네 맞다!     


   어느덧 2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도 운좋게 시간만 맞으면 누구나 방문할 수 있지만, 급변하는 정세로 닫혔다 열리기를 반복하는 템플마운트에 오른다는 자체가 행운임은 틀림없다. 게다가 이제는 바위위의 돔 사원 내부는 무슬림이 아니면 들어갈 수조차 없다. 그러니 바위가 숨겨놓은 파란만장한 역사를 음미하며 사원 내부를 둘러보던 그때가 얼마나 소중한 기회였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 역사 중에 내가 찾는 전설, ‘템플기사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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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

(예루살렘 올드시티 지도 ©https://maps-jerusalem.com)



[사진출처]

사진1-3 : By Berthold Werner - modification of File:Jerusalem Modell BW 2.JPG, Public Domain

사진1-4좌 : By Yoninah - Own work,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0226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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