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이스라엘편-3)
지금 이스라엘 땅에서 템플기사단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기사단이 존재해야 할 이유였으며 기사단을 전설로 만들었던 두 개의 신성한 건축물이 아직 건재하다. 워낙 특별한 건축물인지라 기사단의 상징물로 차용되기도 한다. 바꿔 말하면, 1291년 이후 그들의 행적을 추적할 단서도 되는 셈이다. 기사단의 본부였던 ‘바위위의 돔 사원(Dome of the Rock)'과 기사단이 결성되었던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했다.
바위위의 돔 사원을 지배하는 이미지는 팔각형이다. 야훼 또는 알라로 불린 유일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바위를 세상의 배꼽(중심)으로 표현한 구조다. 숫자 ‘8’이 갖는 각별한 의미 때문이다. 일곱은 지옥, 여덟은 천국이라 믿었던 무슬림에게 ‘8’은 신의 숫자였다. 가령, 중동의 문학작품에서 낙원을 묘사한 것들은 대개 여덟 개의 장(Chapter)으로 구성된다. 이란의 국민 시인, 사아디(1184-1292)의 시선집 ‘장미의 낙원’이 대표적이다.
쉬라즈(Shiraz)에서 태어난 시인은 이슬람 신비주의(수피즘)의 영향을 받아 일평생 방랑을 즐겼다. 시선집에서 많이 알려진 시는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 입구에도 새겨졌다. 제목은 ‘아담의 후예’ 정도로 번역되는데, 몽골 침입으로 어수선한 시기에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갈구하며 쓴 것이라 전한다. (이 시는 최근 한 구호단체의 TV광고에서도 패러디된 바 있다)
Human beings are members of a whole, (우리는 모두 하나의 공동체)
In creation of one essence and soul. (하나의 뿌리와 영혼에서 창조되었으니)
If one member is afflicted with pain, (누군가 고통에 괴로워한다면)
Other members uneasy will remain. (다른 이들도 마음이 아프네)
If you have no sympathy for human pain, (만일 그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없다면)
The name of human you cannot retain. (그자는 인류라 불릴 자격이 없을 것이니)
그의 고향 쉬라즈는 고대 페르세폴리스 유적으로도 유명하지만, 예로부터 장미와 와인의 고장이었다. 특히, 지명과 동일한 쉬라즈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고급진 맛으로 식도락가들을 홀려왔다. 지금은 이란에서 술이 불법이라 프랑스나 호주산으로 명맥을 이어간다. 꽃과 술에는 예술가들이 꼬이기 마련!
쉬라즈에는 사아디 말고도 이란의 국민시인으로 추앙받는 하페즈(1325-1389)도 있다. 쉬라즈의 명소가 된 두 시인의 영묘는 차라리 서정적인 풍경화에 가깝다. 꽃과 분수가 둘러싼 석관 앞에서 시집을 들고 온 젊은이들이 조용히 시를 읖조리는 모습은 무척이나 낭만적이다. 그런데 하페즈의 영묘도 여덟 개의 기둥으로 된 팔각형이다. 그러고 보니 인도의 타지마할이나 이란의 술타니야 영묘 등 이슬람 세계의 최고의 영묘는 대부분 팔각형을 기본 프레임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8’이 갖는 특별한 의미는 이슬람교 창시 훨씬 전부터 전승되어 온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도시마다 계단식의 피라미드를 세웠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집’이란 뜻의 ‘지구라트’다. 가장 으뜸은 바벨탑일 것이다. 하늘에 닿으려는 오만한 인류에 분노하여 신이 무너뜨렸다는 성서 속 탑이다. 많은 고고학자들은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였던 공중정원과 함께 건설된 바빌론의 지구라트를 바벨탑이라 본다. 지금은 기단부만 남아 전체 형태를 상상할 수밖에 없지만, 1563년 브뤼겔의 그림을 통해 원통형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바벨탑이 사각형의 기단 위에 정확히 여덟 개의 층으로 이루어졌다고 직접 본 바를 전한다. 푸른색 타일로 꾸며진 여덟 번째 꼭대기 층이 수호신 마르둑의 거처였다. 여기서도 ‘8’은 신을 상징했다.
이라크에 가보진 못했지만, 현존하는 가장 큰 규모의 지구라트를 이란의 수사 인근 초가잔빌에서 봤다. 세 개 층만 남아있는데, 특이한 것은 구조다. 한 개의 층을 만들고 그 위에 다음 층을 차례로 쌓는 방식이 아니다. 대신, 모든 층이 지상과 맞닿아있다. 1층이 안뜰을 둘러싸는 외벽으로 건설되고, 2층 역시 가운데가 비어있는 외벽만으로 안뜰에 건설된다. 그렇게 차례차례 안쪽으로 높이가 점점 더 높아지는 외벽이 도미노처럼 들어선다. 하나의 계단식 건물이 아니라, 탑 속에 탑이 있는 신비로운 구조다.
신이 사는 꼭대기에 쉽게 접근할 수 없도록 하려는 의도였을까? 인류 최초 문명인 수메르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진 독특한 건축방식은, 앞서 소개한 ‘크락 데 슈발리에’의 구조와 매우 흡사하다. 물론, 십자군 성채가 연대기적으로 3천 년 전의 지구라트를 창조적으로 응용했겠지만 말이다.
눈치챘겠지만, 중동에서 아라베스크 문양을 이루는 기본 기하학도 그래서 정팔각형별이다. 이스라엘의 육각형별(‘다윗의 별’)이 위아래 뒤집힌 삼각형 두 개를 겹쳤다면, 정팔각형별은 정사각형 두 개가 45도 각도로 틀어졌다. ‘이슬람의 별(Islamic star)’ 혹은 ‘선지자의 인장(Rub el hizb)’이라고도 한다.
바위위의 돔 사원의 평면이기도 한 이 정팔각형의 별을 템플기사단도 하얀 튜닉(소매 없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중세시대 헐렁한 웃옷)에 새겨넣었다. 다만, 십자가와 정팔각형별을 교묘하게 조합한다. ‘크로아 파테(croix patte)’라 불리는 이 붉은 십자가는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생김새다. 십자가의 바깥 꼭지점을 연결하면 팔각형이 되는데, 십자가의 끝이 벌어져 있으니 정팔각형이 완성된다. 템플기사단의 힘을 상징하는 성배, 그 성배를 품었던 템플마운트(솔로몬 성전)를 연상시키는 데 이만한 게 있을까?
이 표식을 발자국 삼아 따라가면 다시 템플기사단을 만나리라. 어떤 뜻밖의 장소에서 기사단의 표식과 마주치게 될지 벌써부터 흥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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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