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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감인간 Jun 27. 2022

육아에 빼앗긴 시간에도 봄은 오는가

아이 돌봄 시작 : 22시간 육아와 2시간의 자유

바쁠수록 시간을 쪼개서 쓴다는데 육아를 하면 쪼개서 쓸 시간조차 없다. 출산하기 전과 후 24시간은 변함없지만, 시간을 쓰는 소비자 입장을 견주면 태도가 바뀌었다. 느긋함에서 전전긍긍으로. 시간의 물가가 올랐다. 너무 비싸다. 비싸. 내 손에는 쨍그랑 동전 몇 개뿐. 비싸디비싼 시간을 망설임 없이 살 수 없다.      


출산 전에는 돈보다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었다. 강박이 느껴질 정도로 시간에 집착했다. 약속된 시간에 늦는 걸 싫어했다. 연애할 때 서로 얼굴 붉힐 뻔한 사건들의 핵심은 '시간'이었을 정도다. 무슨 일이든 일과 걸리는 시간을 대략 가늠하며 움직이는 편이었다. 예컨대 지하철 환승이 가장 빠른 출입문이 어느 곳인지, 약속된 장소에 갈 수 있는 최단 경로가 무엇인지.      


왜 그랬을까. 누구나 알 만한 이유다. 돌이킬 수 없고, 주워 담을 수 없으니까. 물론 부자들은 돈을 많이 벌어서 시간의 자유를 허하라고 하지만. 여하튼 과거나 지금이나 내가 처한 현실적인 상황에서는 1분 1초의 시간을 포기하지 않는 편이 효율적이고, 알맞았다. (아직, 여전히 부자가 아니니까;)     



출산 후 온전히 시간을 빼앗겼다. 작은 사람에게. 내 시간은 보이지 않는데, 작은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째깍째깍 흘러가는 게 보였다. 수유텀에 맞춰 분유를 먹였다. 자칫 배고픔이 심해져 울음을 터뜨린 작은 사람을 두고서 분유를 타는 20초 안팎의 시간이 어찌나 불안하던지. 


작은 사람은 때가 되면 놀아달라고 칭얼댔고, 놀았고, 잠들고 싶어 보챘고, 잠들었고, 오줌을 싸고, 똥을 쌌다. 나는 그 때마다 아기의 시간 위에 올라타야 했다. 오랫동안 찾고 찾았던 범인을 마침내 발견한 추적자처럼 작은 사람의 시간을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나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성큼 따라잡았나 싶으면 어느새 반 발짝 앞서가는 분이 작은 사람이었다.     

 

불안하다 불안해. 가만히 앉아서 멍을 때릴 시간이 없으니,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자꾸 빈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내가 보였다. 텅 비어있는 내가 보였다. 이럴 순 없다. 내가 작은 사람의 시간을 앞서나가자, 라고 결심했다. 아이의 새벽 수유 이후에 눈을 붙이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았다. 육체의 피곤함을 끌어안고 책을 펼치거나 노트북을 켰다. 물론 쉽지 않았다. 집중할라치면 용쓰는 사람을 쳐다보길 여러 번. 나의 시간을 심판하는 사람.     


출산하고 나서 24시간을 26시간을 만들 수 없다면 질을 높여보자는 마음도 컸다. 조용한 음악을 낮게 깔고, 하루에 뭐할지 할 일 목록을 쓰고, 멍을 때리면서 새벽 풍경을 바라보고, 오늘의 느낌을 깨알같이 기록하며 느낌과 마음을 알아채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는 행위들. 새벽에는 시간의 물성이, 나라는 사람의 질감이 만져졌다. 어떤 날은 동글동글, 어떤 날은 뾰족뾰족.      


가끔 친정엄마나 남편이 아이를 봐주는 덕분에 시간적 자유를 만끽하곤 한다. 24시간 중 2시간 안팎. 분명 나는 아이와 물리적으로 분리돼 있지만, 뭔가 깔끔하지 않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갑작스레 주어진 넉넉한 시간은 어울리지 않은 여러 과일을 섞어 만든 스무디같았다. 달콤한데 뭔가 내 입에 맞지 않은 과일이 섞여있는.           

곰곰이 마음을 톺아봤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힙한 음악을 들으며 여유를 누리다가도 경쾌한 동요가 귓가를 맴도는 것 같았다. 빈 문서에 글자를 채우고 있는 동안 틈틈이 수유, 배변, 수면을 기록하는 어플을 들락날락하며 작은 사람의 동태를 살폈다. 마치 ‘엄마’라는 겉옷을 걸친 탐정이나 형사가 된 것처럼. 

      

가족과 남편의 배려 덕분에 빼앗긴 시간을 일부 되찾았지만, 완전히 허락된 시간은 아니었다. 작은 사람의 자장은 강력했다. N극과 S극이 끌어당기듯 나의 머리와 몸을 끌어당겼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또 다른 질문. 작은 사람은 정말 나의 시간을 훔쳤고, 나는 순순히 바라만 본 건가. 혹시 내가 작은 사람에게 22시간을 내어주기로 허락했던 건 아닐까. 도돌이표 같은 물음과 질문을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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