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돌봄 시작 : 눈 마주침에 관해
“얘 눈이 좀 이상해. 왼눈이 안쪽으로 쏠려있네.”
아기를 돌볼 때 당연히 눈을 마주칠 수밖에 없다. 신생아 시절 작은 사람은 나를 보는 것 같지만 내 뒤의 허공, 혹은 뭔가를 발견했다는 눈빛으로 바라볼 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기와 나, 둘만 있는 조용한 집에서 작은 사람은 자꾸 엄한 곳을 쳐다봤다. 구석진 벽에 뭐가 있는 건가. 영화 <주온> 속 귀신처럼 왜 자꾸 턱을 치켜들고 창밖을 내다보는 건가. 여하튼 종종 무서울 때가 있었다. 눈빛이라기엔 텅 빈 눈동자. 나에게 어떤 말도 던지지 않는 검은 눈동자.
늦은 저녁, 작은 사람과 남편과 나는 어제와 똑같이 밤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했다. 암막 커튼을 치고, 목욕물을 받아서 작은 사람을 씻겼다. 보송보송해진 작은 사람을 안아 마지막으로 수유하고, 트림을 시키고, 아기띠에 안아서 거실을 걸어 다녔다. 주로 남편이 아기를 재우지만, 내가 재울 때도 있었다. 그럴 땐 하루가 끝났다는 안도감과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작은 사람과 종일 씨름하면서 시간을 보냈건만 어둠이 내려앉은 공간에서 서로 바라볼 때 다시금 들여다보게 된다. 쑥쑥 성장한 아기는 몸무게도 훌쩍 늘었다. 나의 후들거리는 오른 손바닥을 침대 삼아 누워서 나를 바라보는 아기. 밤잠은 잊은 채 말똥말똥한 눈.
스탠드에서 뿜어져 나온 주황색 불빛이 깔린 공간에서 작은 사람은 나의 눈동자를 뚫어질 듯 쳐다봤다. 나를 넘어선 허공을 바라보지도, 눈이 한 곳으로 몰리지도 않았다. 그사이 큰 것 같았다.
꽤 긴 시간이었다. 나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작은 사람과의 눈 마주침의 시간이. 이건 눈싸움인가, 눈마주침인가. 내가 먼저 눈을 피하고 말았다. 일이 분 넘게 나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이 있었던가.
“내 눈빛을 더 보여주다간 속마음을 들킬 것 같아.”
이런 생각도 스쳤다.
“아, 사랑하면 왜 서로의 눈을 탐하는지 알겠어.”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라는 말.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내 귀에 꽂힌 말은 ‘사랑에 빠졌다’였다.
스스로 ‘뛰어들기’를 택하는 것보다 ‘빠져듦’이 낯설어서다. 사랑에 어떻게 빠지는 걸까. ‘처음’이라는 의미가 짙은 ‘첫눈에’이지만, 아마 ‘상대의 눈빛’을 말하는 게 아닐까.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사람, 딴 데 눈길을 돌리지 않고, 나를 지그시 살피는 사람.
눈싸움은 작은 사람의 승리로 끝났다. 누가 나를 밧줄로 묶어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왜 그렇게 꼼짝하지 못했던 걸까. 뭐 하나 숨기는 것도, 켕기는 것도 없었는데.
아니다. 아마 나도 모르게 숨겨둔 마음을, 꿈을, 실낱같은 희망을 들킬 것 같아서가 아니었을까. 집에서만 흘러가는 나의 시간을 버티려면 무엇이든 꺼내서 늘어놓기보다 꽁꽁 동여매 구석진 곳에 치워두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
솔직하고, 군더더기 없고,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눈빛에 주눅이 들면서도 “아, 이런 게 고백이구나” 싶었다.
할 줄 아는 말은 옹알이뿐 제 목도 가누지 못하지만, 가끔 이렇게 나를 살피고 있구나. 피곤함에 지친 심신에 위로를 건네는구나. 작은 사람은 몸만 크는 게 아니라 눈빛도 짙어지고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작은 사람의 눈빛은 내게만 머물지 않고, 나를 통과해서 누군가의 눈에 스며들고 싶겠지. 오늘 밤만큼은 냉소를 떨치고, 눈빛의 온기를 품은 채 기꺼이 쪽잠을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