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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감인간 Jul 06. 2022

‘내 몸에 무수한 칼자국을 새긴’ 사람, 엄마

번외 : 엄마에 관해 

#1.      


"엄마, 그거 있잖아. 보들보들한 천 이름이 뭐더라? 어릴 적 검은색 드레스"

"벨벳?!"

"아 맞아. 벨벳! 그 검정 드레스 맞지?"

"네가 하도 입고 싶다고 해서 그거 사주러 시장에 갔다가 동생 잃어버렸잖아."

"그랬나."

"그때 찾지 못했으면 네 동생 졸지에 고아될 뻔했지."     


나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엄마에게 묻곤 했다. 단어를 드문드문 나열해도 엄마는 내가 말하는 그 시공간에 가서 단어를 주워온다. 이번에도 그렇다. 가끔 내가 기억나지 않는 것까지 물고 온다.     


여덟 살까지 살던 전주의 집은 단독 주택이었다. 꽤 넓은 거실, 안방과 작은 방, 화장실, 부엌이 있는 곳이었지만 추울 땐 냉기가 돌아 단칸방(안방)에 산 것과 매한가지였다.      


안방에는 벽장이 있었다. 내 가슴께 높이의 벽장은 여닫이문을 열면 안쪽 공간이 넓어 좁은 다락방처럼 써도 될 듯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늘 벽장을 열지 말라고 당부했다. 열지 말라고 할수록 열고 싶었다. 막상 드르륵 문을 열면 안쪽이 워낙 어두컴컴해서 뭔가 툭 하고 나올 것만 같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동굴 속으로 들어가 모험을 떠나듯 그때 벽장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지의 세계였다.      


서울의 집은 전주의 단독 주택보다 훨씬 좁았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정리하지 않는다고 타박했다. 사실 아버지 소유의 물건은 별다를 게 없었다. 엄마의 관할 지역인 냉장고, 베란다, 옷장, 부엌 찬장에는 한 번도 쓰지 않거나 유행이 지난 옷가지와 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은 그릇들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벽장은 잡동사니의 세계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물건이라곤 개다리소반, 알 수 없는 낡은 상자, 모서리가 해진 앨범, 정체 모를 플라스틱이다. 누구의 물건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대략 추측할 수는 있다. 엄마는 물건을 모았다. 물건 모으길 좋아했다. 아니, 좋아하기보다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는 걸 모르는 눈치였다. 



#2.      


엄마는 왜 벽장에 잡동사니를 모았을까. 어릴 적 내가 그렇게 갖고 싶었던 검은 벨벳 드레스처럼, 스스로 소중히 여긴 게 잡동사니였던 걸까. 엄마는 남들보다 이르게 나를 낳았으니까. 하고 싶은 일보다 해줘야 할 게 많았을 거다. 벨벳 드레스를 사기 위해 여덟 살짜리의 나와 세 살 터울의 동생을 데리고 시장에 낑낑대며 갔을 거다. 그때 나는 지나치게 통통했고, 엄마는 마른 장작개비처럼 비쩍 말랐다.   


나와 동생이 없던 엄마의 어린 시절이 가끔 궁금했다. 그렇지만 “엄마가 고등학생 때 말이야~”라는 말이 나오면 나는 지루함을 역력하게 드러냈다. 이미 숱하게 들은 다음 말들이 여지없이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단발머리, 선생님께 쥐 잡아먹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빨갰던 입술, 학교 운동장 귀퉁이에서 올드 팝송을 불러주던 친구와의 추억, 나는 귀는 열어두되 정신은 딴 세상으로 보내버렸다.      


#3.     


나는 엄마와 달리 늦게 결혼했고, 출산했다. 그만큼 혼자였던 삶이 길었다. 대학을 다녔고, 취직했다가 회사를 옮긴 것도 여러 번. 퇴근하면 친구들과 맥주 한 잔을 기울이기도, 연애한답시고 도심을 쏘다녔다. 해외여행도 일 년에 한 번꼴로 다녔고, 오랜 기간 체류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할 이야기는 켜켜이 쌓였지만. 구태여 재잘재잘 수다를 떨지 않았다. “거기 좋았어.”, “그냥 그랬어.”      


나와 동생이 생기기 전 혼자였던 엄마의 추억은 고작 몇 개. 그걸 돌림노래처럼 반복하는 엄마의 말은 늘 “하고 싶은 게 참 많았지”라는 문장으로 끝났다. 아, 나는 이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내게 하고 싶은 일은 당연했지만, 엄마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다. 지금은 얼떨결에 임신하고, 출산한 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에 나를 밀어두고 있다. 나라는 사람을 작은 사람 앞에서 잠시 보류 중이다.      


추억은 소유가 아닌 공유다. 나의 추억이 엄마의 추억에 보탬이 될 수 있을까. 나의 이야기를 꽁꽁 싸매기보다 엄마에게 선물한다면 어떨까. 하찮은 이야기라도. 엄마는 나의 추억을 흔쾌히 반기지 않을까. 손으로 꼽을 정도의 엄마의 젊은 시절 추억에 또 다른 나의 추억이 더해진다면. 엄마의 오래된 벽장 속에 잡동사니가 아닌 못다 한 이야기가 채워진다면. 내게도 여태껏 정리되지 않은 마음들이 흩어져있었다.      




"어머니는 칼 하나를 25년 넘게 써왔다. 얼추 내 나이와 비슷한 세월이다. 썰고, 가르고, 다지는 동안 칼은 종이처럼 얇아졌다. 씹고, 삼키고, 우물거리는 동안 내 창자와 내 간, 심장과 콩팥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혈관을 타고 다니며 나를 건드린다. 내게 어미가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기관들이 다 아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물리적으로 이해한다." 


- 김애란, 단편 ≪칼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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