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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감인간 Jul 01. 2022

자연 분만의 밤, 나의 울음을 믿어요

아이 돌봄 시작 : 울음에 관해

나는 잘 울지 않는 편이다. 중학교 때 이후로 누군가 앞에서 눈물을 흘린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간혹 슬픈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순간 눈물이 차오르다가도 이내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런 내가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컹컹대며 운 적은 단 한 번, 요즘은 작은 사람의 울음이 스민 시간 속에 살고 있다.      


가족들은 저마다 부침을 겪기 마련이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춘기 시절 휘청거릴 정도로 금전적 손실을 겪었다. 낯간지러운 연애편지를 주고받던 부모님 사이에는 균열이 생겼다. 관상용 물고기를 키우다가 그만두면서 처치하기 곤란했던 텅 빈 어항 앞이었다. 엄마는 내 뺨을 쓸어내리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어디 좀 갈 거야. 따라갈래?”     



예사롭지 않았던 눈빛과 말. 그 말에 나와 4살 터울의 동생은 지방 소도시의 모텔을 일주일가량 전전했던 것 같다. 여행은 아니었다. 모텔 방에서 재미없는 TV를 주구장창 봤고, 김치찌개를 시켜 먹었다. 간혹 정처 없이 모텔 근처를 돌아다녔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데 차마 무슨 일인지 물어보진 못했다. 어떤 이유에선지 혼자 바깥에 나와 걷다가 공중전화 부스 앞을 서성였다. 아빠한테 전화할까. 외갓집에 전화할까. 그러나 나는 어떤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고 짐작했고, 모텔로 발길을 돌렸다. 바깥에서 바라본 모텔의 네온사인이 화려했다.      


엄마가 했던 말은 집을 나가려고 했던 말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왠지 엄마를 못 볼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 엄마를 따라나섰는데 그때 나의 선택이 아내와 자식이 부재한 집에서 아빠가 홀로 낮과 밤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모텔의 시간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온 가족은 밥상을 펼치고 다시 모여 앉았다. 별 말 없었다. 배달시킨 탕수육과 짜장면을 우적우적 먹었다. 아빠는 소주를 따라서 마셨다.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렇다고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고 호기롭게 묻지도 못했다.


그저 물때가 낀 관상용 어항을 바라보듯 가족을 호시탐탐 관찰했다. 아빠와 엄마 사이 미세한 균열이 쩍쩍 갈라지는 모습을.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예의를 차리고 조심하는 모습을. 그러다가 평소와 다를 게 없이 등교하던 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대뜸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누군가 앞에서 울지 않을 거야.”     



출산한 뒤 입원한 내내 나는 끙끙 앓았다. 자연 분만하기까지의 고통과 아픔은 출산한 선배(?)들의 진한 후기로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만약 자연 분만한다면 미래의 내가 그 고통을 감수할 거라 낙관적으로 내다봤다. ‘자연 분만 = 빠른 회복’이라는 공식에 나도 예외 없이 해당될 줄 알았다. 출산 후 따라오는 고통에 관해 구체적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적이 없었다.     


나는 순조로운 경우에 해당되지 않았다. 자궁 내 과다출혈을 겪었고, 임신 중 겪은 치질도 분만하면서 말썽이었다. 무통 마취가 풀리면서 덩치 큰 아픔이 나를 덮쳤다. 당시 곁을 지키던 남편의 말로는 막상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무력감이 컸다는데, 나도 내 몸에게 딱히 해줄 만한 게 없었다. 그저 딱딱한 병상 침대에 누워서 염불을 외듯 입을 쉴 새 없이 놀리는 것뿐. 아픔을 잊기 위한 시선 돌리기에 매달렸다.


“언제까지 아파야 해.”     


진통제를 맞고 찌릿한 아픔이 사라지다가 다시 차오르길 몇 번. 그러다가 나는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도, 심지어 성공적으로(?) 자연 분만했을 때도 눈물 한 방울 떨군 적이 없었다. 늦은 밤, TV를 켜놓은 어두컴컴한 침대에 누워 끙끙 앓던 염불은 울음으로 바뀌었다. 아파서 운다는 게 실감이 났다.


나라는 사람을 안 뒤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처음 본 남편은 당황한 듯했다. 이내 내 이마를 쓸어내리며 “괜찮아질 거야”라고 낮은 목소리로 진정시켰다.    

  

굳게 잠긴 울음 꼭지가 열린 그날. 남편에게 고백하지 않았지만, 나는 더욱 컹컹대며 울어버렸다. 뺨을 타고 내리는 눈물이 오랜만이었고, 다음 날 아침 눈두덩이가 부어도 좋겠다 싶었다. 울음의 시작은 아파서였지만, 우는 사람이 되었다는 데 안도했다. 충분히 울었다. 뭔가 과거의 나와 작별하기에도,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준비하기에도 적절했다.


조용한 집에서 작은 사람의 존재는 '울음'이다. 배고픔, 졸림, 지루함, 찝찝함 등을 해결해달라고 ‘와앙’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아기의 공적인 의사 표현은 울음이지만, 대놓고 솔직하게 우는 모습이 반가울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 작은 사람의 우는 얼굴을 마주 보고서 나도 ‘엉엉’ 소리를 내며 우는 흉내를 낸다. 작은 사람은 자신이 독점하던 울음에 침범한 내 모습이 이상한지 울음을 뚝 그치고 엉엉 우는 나를 쳐다본다.


울지 않는다는 건 마음을 열지 않겠다는 것.

상대에게 아니면 나에게.

때론 울음이 웃음보다 솔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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