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임신을 준비하면서 겪은 몸과 마음의 변화 #2
임신의 세계는 참 낯설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당도한 나는 길을 잃지 않으려고 부랴부랴 맘카페에 가입했다. 유튜브도 검색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미지의 세계는 선구자가 있을 때 덜 외롭다. 산부인과 검진 전까지 맘카페를 들락날락하며 배란 동지의 글을 읽었다. 비슷한 생리 주기, 비슷한 시기에 난자가 배란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지 여성들은 각자 몸에 나타나는 증상을 남겼고, 댓글을 달았다. 발 빠르게 임신 확정을 받은 배란 동지들은 나름의 걱정과 기대를 안고 임신의 현재와 미래를 두드렸다.
“배가 아픈데 원래 이런가요.”
“눕눕을 계속해야 할까요 ㅠ?”
“벌써 입덧은 아니겠죠?”
“임신 초기에 붙은 살은 엄마살이래요.ㅋㅋ”
여성의 몸은 제각각인데, 배란 동지의 글을 읽다 보면 마치 서로 연결된 몸 같았다.
한편 맘카페에서 '몸에 관한 자각'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임신한 몸'과 '임신하고 싶지만 (여러 이유로) 임신이 되지 않은 몸'. 전자에 속한 나는 뭣도 모르고 속 편하게 임신한 셈이었는데, 후자에 속한 사람들의 글들을 하나씩 읽어보니 '좌절', '눈물', '걱정', '불안'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때 나는 덜컥 임신하고서 마음 붙일 데가 없어 누군가의 슬픔을 담보로 내가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고자 했던 것 같다.
임신 여부를 확정받기 위해 산부인과를 방문했을 때였다. 병원 대기실에는 배가 불룩하게 나온 여자들, 임신 배지를 가방에 달고서 남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여자들이 군데군데 앉아 있었다. ‘산모님’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여기저기서 들렸다. 여전히 얼떨떨한 나와 남편은 무리 속 외딴섬 같았다. 나는 아직 나오지도 않은 팽팽한 배를 소중하게 감싸거나 어루만져야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임신이네요.”
담당 의사는 사무적인 태도로 말했다. 추측이 사실이 되고나니 또다시 모호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늦은 나이에 자연 임신했기 때문에 안도해야 할까. 내 마음 어딘가에서 잔잔하게 감동의 파동이 일고 있는 건 아닌지 감각을 세웠다. 그러나 끝내 무던한 얼굴로 “감사합니다”라는 의례적인 인사를 남기고서 자리를 떠났다.
그간 내 인생, 참으로 평범했다. 굴곡진 사건 사고 없이 순탄하기만 했는데 (드디어?!)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사건’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약간 붕 뜬 마음과 완벽하게 임신을 이해하지 못한 이성이 공존했던 순간이었다. 내가 처한 상황이 믿기지 않아서 “이건(임신) 축복인가요?”라며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었지만, 딱히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물어봐도 되는 질문이긴 할까.
이미 남편과 나는 임신 축하에 뜸을 들였지만, 병원 방문 이후 양가 부모님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니, 단박에 기쁨을 표하셨다. 내가 K-효녀가 된 건가. 대한민국 출생률 통계에 티끌만큼 보탬이 되었나. 온갖 별스럽고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부모님께 임신 사실을 알리고 나니, ‘홀로인 나’와 고별해야 했다. 부모의 따뜻한 말들은 궁극적으로 나에 관한 관심의 표현이었겠지만, 건네는 말의 대부분 ‘홀로인 나’보다 ‘임신한 나’가 주인공이었기에 나는 종종 덧붙일 대답을 잃어버리곤 했다. 아직 나는 '임신한 나'에게 던진 부메랑을 되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