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감인간 Jun 23. 2022

어중간한 신혼생활, 헐! 임신을 해버렸네

어쩌다 보니 임신을 준비하면서 겪은 몸과 마음의 변화 #1

    

신혼을 만끽하다가 임신을 했다. 결혼한 지 1년 반 남짓. 딩크족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를 꼭 낳아야겠다는 굳은 마음도 없던 때 임신을 시도했다. 예상 밖으로 빠르게, 성큼 들어선 임신의 세계. 간절히 임신을 원하고,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많기에 조심스럽지만, 고백하자면 나의 시작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의 몸에 대한 자각은 ‘건강’과 ‘가벼움’으로 치환됐다. 아프려고 아픈 사람은 없기에, 되도록 아플 법한 요소를 없애려고 했다. 과식하지 않고, 탄수화물을 적게 먹고, 갑자기 살찌지 않으려고 애썼다. 소화 능력이 떨어지는 탓에 더부룩함보다 ‘가벼운 장의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려고 했다.     

 

한편 알게 모르게 ‘날씬함’에 대한 욕구도 있었다. 여성의 몸이 타인의 시선 아래 자유롭지 않다는 데서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나름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싶었다. 


내가 떠올렸던 ‘아름다움’은 본연의 아름다움보다 현실과 본연의 절충점 그 어디쯤이었다. 몸의 해방을 대차게 외치기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소심한 마음이 도사리고 있었다. 요가와 헬스를 하면서 팽팽한 복부를 유지한 것은 그나마 ‘날씬함’을 잃지 않되, 나를 위한 안분지족이었달까.   

   

이렇듯 나의 몸에 대한 자각은 꽤 단순했다. 그래서 막상 임신 테스트기를 보며 번쩍 스친 생각은 '헐!'이었다. 기쁨도 아니요, 감동도 아니요. “진짜 임신해버렸네.”라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프로젝트를 완수한 생물학자의 태도를 보였다.  몸의 격변을 앞둔 최초의 경험. 시작은 미미했지만, 그 끝은 예측할 수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헐!'의 의미는 내가 임신할 수 있다는 몸이라는 데서 느낀 놀라움이었다. 갈수록 유전적 혹은 환경적 요인으로 불임을 겪는 사람들이 많지만, 소위 '여성은 임신할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체감했다. 


나라는 사람의 진품과 가품 여부를 판별하듯 ‘임신 가능성’을 품은 몸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놀라움. 그간 여성으로서 살아온 몇십 년의 삶에서 생리 말고는 나의 육체적 여성성을 뚜렷하게 자각하는 일이 드물었는데, 정자와 난자가 만나 착상이 되고 블라블라 이러한 사실에 더해 살아있는 육체를 인식했다. 


예상치 못하게 빠르게 임신했지만, 그전까지 배란일을 계산하며 임신을 시도할 때만 해도 나는 몸에게 자주 말을 걸었다. 대체로 그 말이라 함은 “무슨 변화가 일어나고 있긴 하니?”였다. 배가 사르르 아프면, 편두통에 시달리면, 졸음이 쏟아지면, 평소보다 에너지가 뚝뚝 떨어지면 온갖 몸의 증상을 과대 포장하며 이리저리 몸을 살폈다. 나라는 인간을 기승전‘임신’으로 가늠했다. 임신이 되길 혹은 임신이 되지 않길 바라는 양가적 마음을 품은 채.      


그래서인지 임신 테스트기에 선명한 두 줄은 혼란함으로 나를 덮쳤다. 누군가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실제 어중간한 마음으로 임신을 맞닥뜨리니 기분도 애매할 수밖에 없었다. 유튜브에서는 임신 소식을 알리는 서프라이즈 준비도 많이 하던데, 그럴 생각이나 기분이 1도 들지 않았다. 내가 초대한 손님이 문 앞에서 노크했는데, “어? 정말 왔어?!”라며 반기지 않는 나. 도대체 무슨 심보였을까.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도 밥솥 옆에 놓아둔 임신테스트기를 보라고 말했다. 나처럼 놀란 눈. 우리는 서로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기까지 약간 침묵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 그때를 다시 떠올리면 남편으로부터 200%의 축하를 받았다면 더욱 혼란함을 겪었을 것 같다. 온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마음에, 누군가 내 마음의 갈피를 잡아버린다면 나는 그저 그 상태를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