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서 결혼의 길목으로, 그리고 임신과 출산까지
연애한 지 8년째 결혼했다. 서른 중반 즈음 결혼한 남과 여. 우리는 연애와 결혼을 쉽사리 연결 짓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결혼에 관한 이야기도, 미래에 관한 말도 장난으로든, 진심으로든 서로 꺼내지 않았다. 금기시한 영역도 아니었는데, 입에 올리지 않았던 걸 돌아보면 금기시한 게 맞다.
뉴스에서는 날이 갈수록 미혼남녀의 결혼이 자꾸만 늦어진다고 안달복달했다. 대한민국의 저출생 얘기는 왜 자꾸 나오는 건지. 나는 최대한 무심하게 뉴스를 흘려보냈지만, 가끔 내가 그 '사건'에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사람도 결국 숫자화 된 통계에서 비켜나기 어려운 현실이랄까.
어찌 보면 연애할 때 꽤 단호했던 셈이다. 출산하기 위해 결혼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결혼은 여전히 가부장제의 그늘이 짙게 깔려 있다고 여겼다.
그렇다고 해서 싱글의 삶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였나. 그것도 아니었다. 연애가 길어질수록 감정뿐 아니라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는 걸 체감했다.
각자 부모님과 살고 있는 캥거루족의 연애는 뻔했다. 평일에는 저녁, 주말에는 이른 오후부터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산을 타고, 여행을 갔다.
적어도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는 풍성해지고 있었지만, 움직이는 궤적은 제한적이었다. 이러한 패턴에 지루함을 느낀 적도 있었다. 돈이 아깝고, 체력이 방전됐다.
광화문을 벗어나지 않는 연인. 운전 면허증을 소지했어도 자가용 없는 뚜벅이라 연애의 동선은 효율성을 따랐다. 동선이 편한 곳 위주로만, 서로 집으로 돌아가기 편한 중간 지점 언저리에서의 시간들.
가끔 발바닥이 뻐근해질 정도로 걷다가 나오는 말이 있었다.
"우리에게는 공간이 필요해!"
우리는 마음속에 무엇이 꽉 찼기에 결혼하기로 결심했을까. 그것은 성숙함도, 진중함도 아니요. 그렇다고 재력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둘 다 거창한 일을 벌이지 않았고, 보란 듯이 성공한 것도 아니었고, 크나큰 사건에도 휘말리지 않는 등 순탄한 시간을 보냈다. 이렇듯 각자 혼자의 삶에 큰 미련 없음으로 꽉 찼던 게 아닐까.
결혼한 뒤 우리는 침대에 널브러져 이런 말을 툭 던지곤 했다.
"좀 더 일찍 결혼했으면 좋았을 걸."
만혼이라서 과거를 아쉬워하고, 내일을 아까워했다.
그렇다 보니 어떤 지점에선 포기가 빨랐고, 서로를 규정짓지 않았다. 넌 나의 모든 것이라고 애써 차지하지 않았다. 친밀하지만, 다른 사람일 뿐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다.
연애와 결혼을 가르는 선이 무엇일까. 아마도 공간의 합침과 마음의 나눔이 아닐까 싶다. 가끔 나의 가족을 상대에게, 상대의 가족 곁에 내가 서는 순간이 어색할 때가 있지만 미묘한 지점을 발견한다. 서로에게 어떤 거울이 될지를 가늠한다. 하나보다 둘로서 꽉 찰 수 있는 일을 만들어보자며 원대한 포부를 밝히고 선언하기도 했다.
연애의 끝을 결혼이라고 떠올리지 않았던 것처럼 결혼의 엔딩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지 않았다. 어렴풋하게 우리는 둘만의 인생을 보내고 싶은 걸까, 하고 질문을 던져놓고 "모르겠네"하고 철퍼덕 침대에 다시 몸을 던졌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딩크를 선언한 부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낳자고 마음먹지 않고 시간을 보낸 딩크스런 부부 생활이었다.
한 공간에서 따로 또 같이 시간이 켜켜이 쌓여갔다.
그리고 결혼 생활 중에 우리는 필연적이지만, 우연히 아이를 만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