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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삼촌 Jun 30. 2024

내가 날마다 검지를 단지(斷指)하며 치르는 의식.

<시민의 불복종/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안중근 의사가 연상될 만큼

글 제목이 너무 지나치한가?


그저 일개 택배노동자인 내가

일하기 위해 자연스레 행하는 일상적인 모습과 행동일 뿐이다.


택배현장에 나오면 맨 먼저 손을 보호하려 장갑을 착용한다. 택배초기에는 고급 3M 제품을 많이 사용했는데 가격이 비싸서 저렴하게 한 뭉치씩 파는 장갑을 주로 애용한다.


문제는 터치감이다.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데 화면터치가 잘되지 않는다.

고심하다가 강갑의 검지 부분을 사용하기 전에 절단해서 사용하기로 했다.


본의 아니게 아침이면 장갑의 검지를 절단하는 의식을 치르다 보면

구국의 일념으로 손가락을 '단지'한 안중근 의사가 자꾸 생각난다.


단지(斷指)하는 행위란, 

"굳은 결심의 뜻을 보이려고 손가락을 자르거나 깨물다."

또는 "예전에, 가족의 병이 위중할 때에, 그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피를 내어 먹이려고 자기 손가락을 자르거나 깨물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녔다.


나에겐 단순히 스마트폰 화면을 잘 터치하기 위해 시작한 행위이지만

은연중에 오늘을 살아내는 내 심정이 고스란히 담긴 진중한 "세리머니"가 되어버렸다.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보도록 하자.    <시민 불복종/ 헨리 데이비스 소로우>

 

1846년, 고요한 월든 강가의 한 은둔자에게서 터져 나오는 오기 어린 다짐이 

2024년, 수도권 외딴 택배센터의 탑차 뒤에 선 채로 장갑의 검지를 단지 하는 택배기사의 입 에서 주문처럼 용히 되뇌어진다.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는 중요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좋든 나쁘든 그 안에서 살기 위해서이다.


1846년 흑인 노예제도를 계속 용납하고,

영토 확장을 위해서 멕시코 영토를 침범해서 전쟁을 일으킨 미국정부를 항의하며 쏟아낸

월든 호숫가의 숲 속에 통나무 집을 짓고 살던 은둔자의 피 끓는 저항의 문구들이 자꾸만 가슴을 뛰게 한다.


 그의 말처럼 이 세상을 향한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것"이며,

가족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나 자신을 희생하겠노라고 다짐한다


오늘도 나는

좋든 나쁘든 이 세상 속에서 살아내고자 

그렇게 가만히  가상의 검지를 잘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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