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동구똥구 금동구다.
내 이름은 금동구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는 내게 ‘비단을 쏟아낼 입(錦動口)’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주셨지만, 세상은 나를 ‘동구똥구’ 혹은 그냥 ‘똥구(糞口)’라고 불렀다.
동구똥구동구똥구. yeah.
하지만, 난 괜찮다. 리듬감 있어 좋다.
'비단'을 뱉어 내는 내 입이 가진 힘을 믿으며 힙합에 인생을 걸었건만, 스물네 살 지금 내 손에 쥐어진 것은 통장 잔고 200만 원과 저작권료 달랑 200원이 전부다. 달봉이 형의 놀림대로 나는 여전히 화려한 성공과는 거리가 먼, 허상 속에 사는 똥구일 뿐이었다.
여전히 허상 속에 살아
내가 원하던 그거 완 좀 멀리
열일곱의 여름, 내 인생을 바꾼 봉투가 하나가 있었다. 선생님의 부탁으로 지루한 역사수업 내용을 랩으로 만들어 장학금을 받았던 날이다.
낡은 식탁 앞에 앉아 반찬을 차리던 엄마에게 무심하게 봉투를 밀어 넣었을 때, 엄마가 놀라며 한참을 나를 바라봤다.
“네가 어떻게 이런 줄 알고... 엄마가 부족해서 우리 아들 고생만 시키네...”
봉투를 열어본 엄마가 글썽거렸다. 엄마는 남몰래 수업료와 학원비로 고심하던 중이었나 보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돈은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것을.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고 존재감을 증명해 내는 뜨거운 감정의 덩어리라는 것을.
그때부터 "가족 도우면서 사는 삶"은 그렇게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힙합을 하는 유일한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돈은 그런 나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Keep It Real."
힙합은 진짜를 추구하는 것이다. 꾸미고 거짓된 모습은 구리다고 믿었기에, 나는 나만의 진짜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제대한 후 기꺼이 중고택배차 핸들을 잡았다.
뭘 원하는지 뭘 바라는지
난 물을 것도 없이
내가 원한 길을 갔어
난 전부 치웠고 다 치웠어 내 인간관계
내게 남은 건 없지만
난 그저 이걸로 족해 yeah
가족 도우면서 사는 삶
그게 내가 원한 삶이고 난 계속해 갔지
"내 인간관계 다 치웠어"라는 가사처럼 주변의 시선을 정리하고 오직 내 길을 가기로 했다. 새벽 터미널의 박스 먼지와 소음이 코끝과 고막을 찔러도, 이것이 내 가족을 지키는 삶이고 내 '선택'이기에 견뎠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세상은 간혹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 헷갈리게 만들 때가 있다.
어릴 때 엄마가 보내준 학원들 중 태권도장을 제외하곤 모두 가방만 내팽개친 채 그다음 날 도망쳐 나왔다. 이유는 가르치는 원장이나 교사들의 부모님 앞에서와는 다른 이중적 모습을 보는 순간 강한 반발심이 생겨났다. 공부 잘하는 애들 몇 명 빼고는 나머지는 수업료만 지불하는 잉여인간으로 취급하는 상황이 싫었다. 나는 그런 취급받는 게 몹시도 싫었을 뿐이다.
어려서부터 드러내지 않지만 조용히 심상챦은 똘기로 단단히 뭉쳐진 꼴통인 나의 정체를 유일하게 알아차린 엄마는 적쟎이 속앓이를 해야만 했다. 난 부모님에게 결코 드러나게 반항한 적이 없다.
세상은 진짜가짜를 구별하기보다는 세태와 타협하는 것을 더 원한다는 사실을 어렸지만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조용하지만 영특한 꼴통이었다. 그렇게 난 내 가슴속 깊이 나만의 진짜를 숨긴 채 주변과 타협하며 학창 시절을 그렇게 살았다. 아니 어쩌면 나만의 진짜가 무엇인지 몰라서 그렇게 방황하듯 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결과 감정과 주변의 시선에 따라 오르락내리락거리며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어둡고 힘겨운 진짜 없는, 사실 없는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그래서일까. 고등학교나 각종 보습학원에 배송해야 하는 택배박스들을 볼 때면 입안이 씁쓸해진다. 체력이 바닥나 길가의 계단에 잠시 걸터앉아서, 나는 에미넴을 생각했다. 딸의 분유값이 없어 랩 올림픽에 나갔던 그 간절함으로 두꺼운 사전을 씹어 먹으며 라임을 만들었던 전설을. "이러면 안 되지, 정신부터 차려"라며 다시 곁에 둔 택배박스를 꽉 움켜쥔다. 가짜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진짜인 나는 오늘 다시 세상이라는 미로 속으로 택배차 핸들을 꺾었다.
이른 아침 7시면 돌아가는 터미널의 컨베이어 벨트 소리가 비트로 들리기 시작한다. 나는 스캐너로 오늘 배송할 물건을 찍으면 울리는 신호음에 맞춰 가사를 뱉는다.
내가 원한 대로 profit 챙겨가고 있어
엄마 날 믿어 이제는 받지 않아 guarantee.
쏟아지는 택배 상자들은 단순한 짐들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가족을 위해 쌓아 올리는 '비단'의 재료였다. 위선적인 세상에 대항해 내가 쏟아내는 진짜(Real)의 문장들을 완성해 주는 삶의 원천이다.
화려한 랩 스타들의 롤렉스보다, 정직하게 땀 흘려 번 이 돈이 진짜 나의 삶이고 힙합이다. 나는 더 이상 200원짜리 인생이 아니다. 내 땀 냄새가 밴 이 일상이 바로 '비단' 그 자체였다.
"여이~ 동구똥구"
아. 그리고 나에겐, 택배센터에서 해맑게 웃어주는 달봉이 형도, 그리고 나의 힙합크루 'The Tree'의 멤버인 진구와 병만이도 내 삶의 일부다.
https://youtu.be/kIf8SHgBBJ0?si=oMQCUthXvByfIqq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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