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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니 Sep 22. 2024

이혼일기(79)

여유

아침 7시 40분


이제는 정말 아이를 깨워야 하는데, 너무 잘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미안해서 깨우기가 정말 좀 그렇다... 워낙 7시 반에 옷입혀 깨워 들춰나갔지만, 요즘은 그냥 배째라 하며 아이가 정 일어나지 않으면 8시에나 깨워 8시가 넘어 출근하고 6시 반에는 회사에서 나와버린다.


아침 회의가 8시 반에 시작하고, 난 아직 모든 것이 미숙한 관리자라 8시 전에는 가서 밤새 일어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이를 포기하고 아이를 8시 10분쯤 등원시키고 20분에 들어가면,


 옷을 갈아입고 회의 전까지 밤새 있었던 일을 파악하느라, 직원들 인사를 받고 또 댓거리를 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탈탈 털리는 기분이지만.


 그렇더라도 아침에 단 이십분이라도 더 자고 엄마를 일찍 만나게 된 이후로 아이는 확실히 컨디션이 달랐다. 우리 아가 엄마 따라 7시 반에 가서 또 저녁 7시까지 꼬박 어린이집에 있던 시간들을 도대체 어떻게 견딘 것일까.  


1) 선생님이랑 있다가도 종종 엄마는 왜 이렇게 안오는 거야!! 하고 소리지르고,

2) 이따금씩 멍하니 있고,

3) 나에게도 아빠한테 엄마가 맨날 늦게 온다고 다 일러버릴거야! 하고 협박(?)하던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내가 종종거리고 애쓰고 눈치 보며 무리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그렇더라도 이렇게 아이가 안정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다행이다. 내 일은 또 어떻게든 정리가 될테니까 말이다.


 그래, 오늘도 그냥 8시까지 재우고 또 한참 지나 출근하자. 뭐 어때....


마음을 내려놓았다고는 해도 매일 아이가 스스로 일어난다면 8시 전에 출근을 해볼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본다. 대부분 포기하고 마음을 접고 몸을 돌려 방을 나서려는 데..! 아이가 나를 부른다.


엄마.... 나 이불에 쉬 쌌어.


악 ㅋㅋㅋㅋㅋㅋ 그랬어. 지금 출근 시간인데 ㅋㅋㅋ 우리 아가 쉬를 했구나. 어제 메론을 너무 먹었지.. 엄마가 쉬야 하고 자자고 했는데 안나온다고 하더니만!


너무 웃기고, 또 황당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가 잠을 깼다는 것.


 욕조로 데려가 물틀은 샤워기를 쥐어주고 재빨리 침대커버를 벗기고, 옷과 함께 세탁기에 넣고 버튼을 누른 다음 아이에게 달려가 물로 몸을 씻고, 수건으로 닦아 옷을 후다닥 입힌다.


 컵에 포도알 다섯개를 떼서. 가방을 어깨에 메고, 한 손에는 어제 저녁먹고 난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들고, 아이의 신발을 신긴 후 가자가자. 재촉해서 나와 쓰레기를 버리고 아이를 안고 걸어가면서 포도알을 입 속에 밀어넣으며 어린이집으로 가서 등원을 시키고,


콩 튀듯 자리로 들어와 앉으니


7시 59분. 


와. 나 지금 40분부터 59분까지 이 많은 일을 하다니.


 원래 사람이란, 한가지만 하기에는 기운이 남는다. 그래서 일만 하거나 육아만 하기에는 삶이 팍팍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취미활동이나 다른 역할이 주어져야 그를 넘나들며 새롭게 된 마음이 현실을 견뎌내고 지내는 힘이 된다. 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2가지 일을 할만하지는 않다. 딱 0.5분의 여력만 남으므로 그 정도의 무언가. 예를 들면 취미 등의 가벼운 활동을 해야한다. 이래서 투잡이라는 게 힘들고 어려운 것 같았다.


 내 기준에 육아는 일을 넘어서는 수준이라 더 어렵다고 느낀다. 아이를 보는 것은 그 순간만큼은 힘든 것보다는 즐겁지만 먼 미래까지 들여다봐야 해서 더 그럴 것이다. 잘못되면 단순히 수입이 끊어지고 다른 일을 찾을 수 있는 차원도 아니다 - 물론 이것도 단순하지는 않지만. 아이에게 굳어질 성향까지 고려하며 끊임없이 밀당을 해야하는 관계가 육아 였다.


이렇게 애를 써도, 대부분은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이라 또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 맡기고 간다. 내가 하는 것은 그의 인생에서 고작 100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라 늘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부모 노릇을 놓을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려면, 여유가 필요하다. 하루의 기운의 15%정도는 꼭 남겨놔야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가 있다. 아무 일도 없이 순탄하면 참 좋겠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공감할 것이다. 그런 날은 정말 정말 손에 꼽아지지도 않을만큼. 드물다.


.

.

.


 어리석게도 위의 결론들을 무수한 상처를 받고서야 내려졌다.


 같이 식사를 하자는 가벼운 제안들을 받으면, 곤란함을 감추고, 웃으며 대답을 했지만,  뒤돌아서는 화가 났다.


.... 정말 왜 저래.... 진짜 할 일들이 그렇게 없어? 내가 지금 내가 자기네들이랑 한가롭게 밥 먹게 생겼어?!!!


 하지만 주체할 수 없게 화가 나면서도 화 낼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부분 무겁지 않은 의도들임을 잘 알고 있었다. 막말로 유부녀한테 데이트 신청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저녁이나 휴일의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하는 것 뿐이었다. 그런 정도 제안은 사람들끼리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건 호감의 표시니까. 나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그러는 것인데...  누가 밥먹자는 소리를 할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을만큼 화가 났다.


생활에 여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미스코리아 미소를 지으며 회사에서 일을 다 아는 척 하면서 두뇌를 풀가동해 눈치껏 일을 배우고, 저녁에는 아이를 돌봐야 한다. 매일 매일은 아주 간신히 빡빡하게 돌아간다. 거기에 누구와 식사를 하고 수다를 떨, - 그들의 한가한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는 없다.


 내 입장에서는 1000%의 감정노동 중이다. 노동을 하지 않고 편안히 상대를 대한다면, 엉엉 울어버릴 것이다. 그래서 모든 힘을 그러모아 눈물을 참고, 괜찮다고 자신을 세뇌시키며 아주 간신히 하루하루를 허들넘듯이 건너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식사 제안을 하는 것 만으로도 내 일상은 균열이 가버린다.


 그리고.


아무도 이런 상황을 이해하거나, 예상하지 못한다.


내 주변의 직장인 중에는 나처럼 백업멤버 없이 아이를 혼자 키워야 하는 사람이 없었고,


내 주변의 아이엄마들 중에는 새로 일을 배워야 하며, 사실상 하루 12시간의 근무를 해야하며, 연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이런 극한 상황의 직장인이 없었다.  


 같이 밥 먹자는 제안. 같이 무얼 하자는 제안들을 거절하며,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이야기하게 되면


 도대체 왜 정시 퇴근을 못하며, 공무원은 육아시간 같은 게 있지 않니...? 왜 자유롭게 연가를 못 쓰냐는 질문이 돌아온다.


본인들의 의도대로 되지 않을 때, 대개의 사람들은 절대 그냥 물러서지 않는다.


그게 그렇지 않다고 한숨쉬면, 그건 니가 딱 잘라써야한다는 답이 돌아온다. 이야기가 그쯤되면, 나도 화제를 돌린다. 더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보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해받지 못하는 서러움이 쌓이고,

헤아림받지 못하는 억울함이 쌓이고,

다른 세상에 있는 것같은 외로움이 쌓였다.


나도 모르게 켜켜이 쌓인 감정들이 부풀어오른 어떤 날은,


아이를 재우고. 아이 발치에 기대앉아 울면 된다.

그럼 또 하루가 갈 것이다.


괜찮다. 이런 시간들도 지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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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차피 밥은 먹을 거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어요. 하지만 다들 아시잖아요. 아이엄마는 식탁에 앉아 편안히 밥 먹지 않아요. 설거지 한번 하고 하나 집어먹고, 빨랫감 돌리고 또 하나 집어먹고.


 이런 게 식사라는 것을 사람들은 전혀 상상하지 못하고, 너무도 쿨하게 아이도 데려오면 되지. 라는 소리를 해요.

 

이제는 설명도 지치고, 다 귀찮습니다.


이런 작은 일마다 서운해하면 안되는데, 저 혼자 감당이 잘 안되니 서운하고 화나는 날이 많아졌어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눈물이 나면 나오는대로 하나님께 쏟아놓습니다. 공중의 나는 작은 새도 돌보시는 그가,


제 상처받는 마음까지도 모두 안아주실 거에요.


그리고, 이런 하찮은 이야기까지 모두 들어주셔서. 오늘도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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