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걸렸다.
오랜만에 집에서 푹 쉬었다. 감기 덕분이다. 종일 누워 땀을 흘리다 보면 저녁이 빠르고, 혼자뿐인 집 안으로 스며드는 노을에 무언가 기분이 아련해진다. 어두운 방 안에 조용히 누워있으면, 친구들과 한껏 놀다가 때맞춰 들어가야 했던 어린 시절의 저녁이 떠오른다.
어제는 내가 살던 여러 마을을 걸어 다녔다. 나는 시간이 나면 자주 이 마을들을 걸어 다니곤 한다. 그 코스는 대체로 내가 커가며 옮겨 다닌 동네를 순서대로 배치한 것이다. 다행히도 이 마을들이 걸어 다닐 만한 거리에 순서대로 위치해 있어서, 나는 술자리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거나 하면 버스를 타고 싶다는 핑계로 이 코스를 따라 걸으며 어릴 적의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놀이터나 아파트 옆 샛길, 정자를 보면 “아 그래 여기” 하며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어릴 적 친구와 무얼 하고 놀았는지, 어떤 얘기를 했는지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런 추억들이 언제였는지 손가락을 접어가며 세어 보면 벌써 10년도 넘은 일들이 많다. 10년이란 참 빠르고 별거 아닌 시간이구나. 10년이라는 숫자보다는 아이스크림을 반값에 팔던 ‘럭키슈퍼’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CU’ 같은 편의점이 들어설 때, 나는 시간이 흐르긴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저녁이 내려앉고 발걸음은 옛날에 살던 아파트에 다다른다. 원하지 않게 이사를 해서 더더욱 그리운 옛날 집. 하나둘 아파트의 불이 켜지고, 저 안에서 찌개를 끓이고 TV를 보고 있을 평범한 가족들의 일상이 떠오른다. 가족들과 다 같이 모여 별말 없이 식사하고 다 같이 외식도 나가는. 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모두는 행복하겠지 하는 착각을 한다. 이내 나는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먼 후일의 나는 지금을 어떻게 생각할까. 어떤 거리의 어떤 풍경을 그리워할까. 내일은 학교에 가야 하는데, 조금만 더 집에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