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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u Feb 26. 2023

기대 저버리기

나는 초중학교 때 잠깐, 공부를 잘했던 적이 있다. 시험을 보면 한 문제를 틀리느냐 두 문제를 틀리느냐를 늘 아쉬워했고, 평균은 항상 90점대를 유지했다. 학원에서 1등을 해 외식을 했던 십 년도 더 지난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아버지는 나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셨다. 나는 부모님과 선생님께 항상 칭찬받는 모범생이었다. 나는 그 칭찬이 좋아, 더 힘들게 공부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억지로 밤을 새우거나, 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새벽의 버스 안에서 조는 척하기도 했다.


지금 보면 그다지 대단한 성적도 아니었는데, 나는 그때 너무 우쭐해 엘리트 의식이 짙었다. 그 어린 나이에 서울대는 어쩌니 연고대는 저쩌니, 인서울의 경영학과를 가야 하니 하며 아는 척을 하기도 했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무시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부끄러운 기억이다.


그런 내가 갑자기 무너진 건 중학교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였다. 그다지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다음에 열심히 하면 되지”하고 넘길 수도 있었는데, 주변 어른들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 이전에 나를 칭찬하던 어른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내 모든 사생활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놀고 PC방에 가거나, 집에서 엄마와 재밌는 비디오를 빌려보는 일, 그리고 성적 잘 나온 걸 축하한다며 엄마가 맛있는 걸 해주거나 온 가족이 외식하는 일 모두가, 이제는 내가 누릴 자격이 없는 일이 되었다.


고구마 맛탕이 먹고 싶었고, 집에서 엄마와 영화 한 편 보고 싶었는데,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 사소한 일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가장 큰 상처가 되어, 스물다섯에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갔을 적까지도 그 일을 두고 상담사 앞에서 펑펑 울게 하였다.


얼마간은 그런 나를 자책하고, 다시 공부를 잘해보려고 했으나 펜이 잡히질 않았다. 어른들의 질타는 계속되었다. 내가 무시했던, 공부 못하는 사람이 내가 되어있었다. 나는 지난날의 벌을 받는 것 같았다.


내가 다시 공부를 좋아하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어느샌가 공부 못하는 나를 자책하기보다 왜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을 가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었고, 세상에 복종하는 법 대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웠다. 물론 그 와중에도 주변 사람들의 질타는 계속되었으나, 나는 이제 어른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무시할 줄 알았다. 나는 더 이상 SKY에 매달리지 않았고, 사람들을 성적으로 평가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렇게 서울 바깥 대학의 철학과에 진학했다.


공부를 잘했던 그날로부터 십수 년이 지나, 스물일곱의 나는 그때 상상하던 모습과 많이 다른 모습의 어른이 되었다. 명문대를 나오지도 않았고, 억대의 연봉을 받지도 않는다. 대학원을 준비 중이지만 아직 실험복을 입고 플라스크를 매만지며 대단한 발견을 하지는 않았고, 쇼핑몰에서 야간에 보안 업무를 하며 쉬는 시간에 짬짬이 좋아하는 책을 읽고, 이렇게 글을 쓸 뿐이다.


성공만을 좇거나 인정받고, 자랑하기 위해 애쓰지 않았고, 좋은 대학 간 사람만을 친구로 두지도 않았다. 성적이나 능력을 상관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과 두루 사귀었고, 나는 누구보다 그들을 좋아한다. 나에게는 어떤 성공보다 이들이 더 큰 재산이며 행복이다. 그리고 아마, 그 시절의 실패가 아니었으면 나는 이 재산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는 그 실패가 너무 힘들었지만, 이제는 무엇보다 소중한 배움으로 생각한다.


실패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자신의 성장을 얼마나 방해하는지 알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완성된 삶은 없다. 계속 배우고 발전해 나가는 삶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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