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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묘 Oct 27. 2024

조카 앞에서 평정심 유지하기

너는 천재야... : )

처음 대치동 입성?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대치동에서 처음 초등 수학을 시작할 때 놀랐던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중, 고등학생들을 가르칠 땐 비슷하다고 느꼈었다. 대치동에도 수포자는 있었고, 학원을 많이 다니며 어려서부터 모래성처럼 쌓아 온 선행이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물론 대치동스러운 똑똑한 학생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초등학생들은 달랐다. 초등 3학년까지의 과정은 비교적 수월하게 과정을 밟아 간다. 시기가 문제였다. 대치동에서 수학 좀 한다는 초등 1학년이 이미 3-4학년 과정의 수학을 배운다. 이 과정이 꼭 필요한지, 효과적인 수학 학습이 되는지에 대한 건 추후 다루기로 한다.


처음 이런 학생들을 바라보는 나의 심정은 '속상함'이었다. 6-7살에 경험하는 수학은 단순 연산이나 평가로서의  도구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수업시간에 만나는 6살, 7살 학생들은 비교적 즐겁게 학습하는 것 같긴 했다. 다만 주어진 숙제를 해야 하는 스트레스나 시험결과가 주는 스트레스는 피하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영어 유치원이나 영어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테스트경험이 있지만, 너무 일찍이 점수로 보이는 결과로 평가받고 그 과정에서 경쟁하는 시스템에 노출되는 게 안쓰럽기도 하다.


그래서 '레벨'이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수학의 여러 영역에 흥미가 높고 테스트를 또 하나의 도전으로 여기며 재미를 찾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이로써 접하는 영역의 수학은 흥미롭지만 지면으로 옮겨가며 정확하게 답까지 도달해야 할 땐 엉덩이가 가벼워지고 집중력이 짧아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 전자의 학생들은 놀이와 감각으로 익힌 수학을 머릿속으로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하며 조금씩 더 심화된 내용으로 접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점진적으로 깊어지는 과정에도 이해력이나 응용력이 뒷받침되어 즐겁게 수행해 내곤 한다. 후자의 학생들은 하나의 개념을 익히더라도 교구를 활용한 체험이 필요하고, 반복적인 응용과정을 통해 체득하게 된다.


학생의 현 수학 상태에 따른 학습방법을 고민하고, 이상적인 학습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습관과 태도를 만들어 가야 한다. 하지만 대치동의 분위기와 학부모님들은 무조건적인 '탑클래스'를 목표로 하는 것 같다. 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었고, 학부모님과 상담할 때면 '대치동 바닥에서 흔들리지 않고 만들어가는 우리 아이만을 위한 학습 커리큘럼'이 중요하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대치동 학원물을 좀 먹다 보니 나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아이가 따라올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가능성이 보인다면, 타이트하게 끌고 나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마인드이다. 자녀는 없지만, 다섯 살 조카를 곁에서 보며 더더욱 이런 생각이 굳어졌다.


영유아 시기에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모국어만큼이나 편안한 제2외국어 습득에 열을 올리는 것처럼, 수학도 동일하게 생각했다. 지속적으로 수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생활 속에서 노출시키도록 하는 것.


그래서 나의 조카는 이모를 만나면 자꾸 수학퀴즈를 내려고 한다. 다섯 살도 어리지만, 지금보다 더 어릴 때부터 이모는 수학과 관련된 무언가를 계속 묻는 사람으로 인식된 것 같다. 초콜릿을 주더라도 덧셈문제처럼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분침과 시침이 움직이는 학습용 시계를 선물하며 일상에서 시계 읽는 방법을 연습하기도 한다.(초등 2-2 학습 과정에서 학생들이 위기의 순간을 경험하는데, 시각과 달력을 이해하고 응용문제를 풀어나가는 파트이다. 오전과 오후를 계산하는 것 자체가 삶의 고난이다.)


자매는 닮았다. 조카를 양육하는 나의 여동생도 운전하거나 요리하는 일상 속에서 학습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조카와 주고받는다. 수학에만 그치지 않지만 가령 "10분 뒤 세시가 되면 우리 같이 나갈 거야. 그럼 지금 몇 시 몇 분인지 시계보고 이야기 해봐." 이런 식으로 대화하는 걸 듣기도 했다.


세상에 호기심 많은 조카가 최근에 자연스럽게 한글을 읽기 시작하고(아직 미완성) 숫자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사용해 받아 올림 연산까지 해내곤 한다. 얼마 전에는 가족 단톡방에 이런 사진이 올라왔다.



받아 올림이 없는 단순 연산으로 한자리 수 연산을 할 수 있으면 쉽게 푸는 문제다. 함께 첨부되어 있던 음성 파일엔 "이모 이 답은 사백십오예요."라고 말하며 나름의 계산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뒤집기를 하는 순간부터 '이 아이가 신체활동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걸 아닐까?', 말을 조금만 일찍 시작해도 '언어 천재가 아닐까?'하고 생각하는 공통의 경험을 하는 것 같다. 나는 사랑둥이 조카를 보며 생각한다. '우리 조카가 영재는 아닐까?'


주말에 조카를 만나면 설레는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다음날 출근하기 전까지 작은 씨앗은 울창한 나무가 되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똑똑한 조카가 명문 대학에 들어가고 멋진 성인이 되어 자신의 분야에서 한 획을 긋는 그런 상상. 그러다가 수업을 하면 현실로 돌아오곤 한다. 대치동의 높은 레벨에서 공부하는, 감히 영재라고 불릴 만큼의 아이들을 보며 상상 속 나의 나무는 작은 묘목이 된다.


그래, 평정심을 유지하자.


여전히 똑똑하고 야무진 조카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진 않았지만... 적어도 대치키즈 앞에서 주름잡진 않는다.

요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내 조카라서가 아니라... " 혹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봐도..." 이런 표현으로 조카의 이야기를 시작하곤 한다. 작은 것 하나만 잘해도 비범해 보이고 사랑스러움이 샘솟는 그런 것이 아이를 키우는 행복이 아닐까 어렴풋이 생각한다. 그리고 폭풍우를 지난 나의 묘목은 늘 한결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바르게 커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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