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수학 강사 이야기
수학 수업이란 모름지기 '재미'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교실 밖에서는 극 I 성향으로 살아간다. 대화 속의 작은 에피소드에도 자주 얼굴을 붉히곤 한다. 이런 내가 교실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방법은 '상황극'이다. 문제를 풀며 잘못 접근한 예를 노련하게 연기해 보이기도 하고, 형 누나들의 사례를 리얼하게 풀어내기도 한다. 이럴 땐 나의 풍부한 표정과 나름의 연기력이 사용되는데, 수학 개념을 설명할 때 보다 더 똘망똘망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을 종종 보며 허탈한 웃음을 삼키기도 한다.
웃고, 칭찬하는 수업 분위기 상 아이들의 긴장감 고취를 위한 시스템에 신경 쓰는 편이다. 학습에서, 특히 수학 학습에서 적절한 긴장감은 학습 효과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긴장감은 수학 학습에 효과적이다.
적절한 긴장감은 집중력을 높이고 시험에 대한 준비를 철저하게 하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긴장감이 과할 때에는 심리적인 압박으로 유연한 사고가 힘들어지며 되레 집중력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시험장에서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표현을 온몸으로 느껴본 경험이 종종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결과에 대한 욕심이 클수록, 많이 준비했다는 물리적인 보상심리에 비해 자기 믿음이 적을수록 긴장감은 더 커진다. 그리고 부정적인 경험이 쌓이면서 만성화되어 간다.
고등학생과 수업하며 이런 케이스를 본 적 있다. 학교 중간고사 혹은 기말고사 전날 모의고사처럼 연습으로 시험지를 풀렸을 땐 거의 다 풀어내는 학생이 막상 본시험에서는 늘 70점대를 유지하는 경우를 봤다. 이 학생은 교육청 모의고사에서 제법 좋은 점수가 나와도 막상 수능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을 거라는 자기 확신이 생겨버린 뒤였다. 고2 2학기 기말고사 수학시험을 앞둔 전날 엉엉 울며 전화를 걸어온 학생은 이제 수학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수학 시험에서 단 한 문제를 틀리는 인생 최고점수를 받았다.
초등 시기부터 적절한 긴장감을 가질 수 있는 학습 분위기가 필요하다. 긴장감이 과도한 경우는 결과보다 과정에 대한 칭찬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서 학생 스스로는 과정 안에서 자기 확신을 만들어 간다. 자신이 노력한 과정을 기반으로 한 자신감은 수학 문제를 풀어가는 힘이 된다. '어려울 거야. 난 풀 수 없어'라고 생각하며 접근하는 학생과 '풀 수 있어,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학생은 난이도 높은 문제 앞에서 명확하게 다른 결론을 만들어 낸다.
강사라는 직업상 잦은 주기로 테스트를 실시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이미 스스로를 옆 친구와 비교하며 한없이 작아졌을 학생들을 향해 "선생님은 널 평가하려는 게 아니야. 같이 힘들게 공부한 내용을 체크해 보면서, 어려워하는 부분을 찾아보려는 게 테스트의 목적이야. 그걸 찾아서 보완해 나가면 완벽해지겠지?!"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직업병이 있어서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지는 못한다. 꼭 끝에 잔소리를 붙인다. "그런데 연산 실수나 문제 잘못 읽는 실수는 절대 안 하기로 해."
과정에 대한 칭찬과 더불어 명상이나 적절한 신체 운동을 병행해 나가는 것도 과도한 긴장감을 이완해 나가는 데에 도움이 되지만, 난 일단 교실 안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해 나간다.
반대로 긴장감이 약한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학생들은 학습 자체에 대해서 자기 주도가 약하다. 적극성이 떨어지니 학습 효과도 적은 편이다. 골똘히 생각하며 이해하고 응용해 나가야 하는 수학 문제 앞에서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를 안 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집중력이 약하다. (집중력도 노력이니까.) 흐릿한 집중력으로 설렁설렁 풀어나가면 실수가 없을 리 없다. 긴장감이 과도해도 실수가 생기지만, 반대로 긴장감이 약할 때에도 실수가 많아진다.
오랜 시간 함께 수업하면서 강사와 학생사이에 유대감이 커진다는 장점도 있지만, 긴장감이 느슨해지는 단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소유자로서 수업 시간 내에 만들어 내는 적절한 긴장감에 신경을 많이 쓴다.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며 무서운 분위기로 교실 전체를 긴장감에 휩싸이게 만들 수도 있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다. 학생 스스로 긴장감을 높여 목표에 다가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수업 중 작은 퀘스트를 만들어 놓는다. 가령 오늘 풀어낸 교재 중 실수 없이 맞은 페이지가 5페이지 이상이면 보상을 준다는 식이다. 실수가 나오더라도 다시 다음 페이지에서 한 문제 한 문제 집중해서 풀어나가게 되고, 스스로 더블체크까지 하게 만든다. 퀘스트는 만족스러운 보상이 뒤따라야 할 맛이 난다. 스탬프를 보상으로 주고 일정 개수로 모아낸 스탬프는 작은 간식 선물로 돌아온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초등 저학년의 세계에서는 스탬프 하나에 울고 웃는다.
수업 중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갈 때 주어지는 작은 퀘스트는 순간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습은 나아가 실력을 만들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이뤄낸다. 리워드, 즉 보상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좋은 결과가 뒤따르지 않으면 장기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지속적인 동기부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학습에서 주어지는 단기적인 퀘스트와 그에 따른 보상이 만족스러운 학습 결과를 가져오고, 행동을 지속해 나갈 동기부여가 되는 선순환을 가져온다. 여기서 보상은 이 과정을 시작하고 도전하게 하는 단계적인 스텝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보상이 적절하지 않거나 흥미가 없으면 아이들은 쉽게 포기해 버린다. 또한 학습이라는 건 복합적이기 때문에 단순히 보상만으로 향상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위에서 제시한 과정 안에서 성취감을 느끼며 스스로 목표를 잡아 나가야 하는데, 이게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지지고 볶는 수업을 만들어 가는 나에게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이 과정이 재미있고 흥미로웠으면 하는 것이다. 그럼 아이들도 수학 학습 안에서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며 목표를 잡을 마음과 힘이 생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