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이 교수님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한국계 수학자는?
한 주 동안 우리 반 아이들은 필즈상을 수상한 수학자를 찾느라 바쁘게 보냈을 것이다. 수업 말미에 미션을 하나 제시했다. 선생님이 내는 문제를 맞히면 달달한 간식 보상이 있을 거라는 것. 문제에 대한 답변은 귓속말로 해야 하는 규칙도 제시했다. 행여 다른 학생이 답변하는 걸 쉽게 듣고 알아채지 않게, 최대한 스스로 찾아보고 궁금해하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정답이 노출될까 우려했던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귓속말로 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를 들은 후 바로 답을 맞히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가장 많이 나왔던 답변은 '한강 작가'였다. 그렇게 기한은 일주일 연장이 되었다.
수학은 어렵고 힘들다는 편견이 싫었다. 나이를 말할 때, 열 손가락을 다 사용할 필요도 없는 지구행성 초보자들 임에도 불구하고 수학에 대한 고정관념은 뿌리가 단단해 보였다. 수학의 답을 찾아내는 "과정"을 즐기길 바랐다. 매 시기마다 시험을 보며, 말 그대로 아이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내가 할 소리는 아닌가...?
(시험을 보는 아이들에게는 태도를 강조한다. '모르는 건 틀려도 아는 걸 실수하지 말자'라고. 선생님은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걸 시험을 통해 체크해서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늘 이야기한다. )
'아이들의 미래 설계를 위한 직업 탐구 학습만화, I AM 아이엠 허준이' 책을 읽으며,
수학자 허준이 교수는 여려서부터 자연과 시를 좋아했다. 수학에는 크게 흥미가 없었고, 매일 시 쓰기를 즐겨했다. 고등학생 때에는 학교에 가기 힘들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고, 이후 시인이 되어 훌륭한 작품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허준이 교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나는 수학자가 있었다. 바로 수학자 데카르트.
데카르트도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학교에 가는 대신 침대에 누워있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침대에 누워 천장에 붙어 있는 파리를 보다가 좌표평면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일화가 있다. 아이들과 평면에 대한 공부를 할 때면 데카르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허준이 교수도 그렇게 학교를 그만두고 좋아하는 시를 쓰고자 했다. 학교를 다닐 때 보다 시간이 많아졌지만 생각보다 글이 안 써졌다. 이후 평소 좋아하던 과학을 공부해서 과학 기자가 되어 글을 쓰겠다는 목표를 갖게 되었다.
놀라운 건, 그렇게 목표를 갖고 대학 입시에 준비해서 서울 대학교 물리천문학부에 진학했다는 것이다. 이때까지도 수학에 대한 큰 흥미는 없었다. 대학 생활에도 쉽게 적응하지 못했고 모든 과목에서 D와 F를 받은 학기도 있었다. (흠... 나랑 공통점 발견!)
지도 교수님의 추천으로 수학과 수업인 '위상수학'수업을 듣게 되면서 수학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위상 수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정신도 맑아졌다고 한다. 진짜 좋아하는 걸 찾은 게 저런 것일까?
초등학생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수업이지만 '연결상태'에 대한 개념을 공부할 때 위상수학 이야기를 해준다. "얘들아, 선생님은 머그컵이랑 도넛이 똑같다고 생각해." 그러면 아이들은 선생님이 이상하다며 깔깔 웃는다. 그리고 연결상태에 대한 개념을 공부한 뒤엔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진짜 머그컵이랑 도넛이 똑같네요?"라고 인정한다. 우리 똑똑이들!
허준이 교수가 일리노이 대학교 대학원에서 배운 조합론을 바탕으로 하는 '쾨니히스베르크'의 강과 일곱 개의 다리 문제는 수업 문제로도 등장한다. 연결상태에 대한 개념을 한붓그리기로 확장하고, 이를 응용해서 조합론의 유명한 문제까지 학습해 보는 것이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다 풀어낸다. 물론 1-2주 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다.
허준이 교수는 히로나카 교수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수학을 사랑하게 되었고, 동료들과 함께한 공동 연구로 수학계 난제를 해결해 나갔다. 2022년까지 10년 동안 무려 열한 개나 되는 수학 난제들을 증명해 냈고, 결국 최초의 한국계 필즈상 수상자가 되었다.
허준이 교수는 2022년 7월 5일, 핀란드 헬싱키의 알토 대학교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서 39세의 나이로 필즈상을 수상했다. 존 찰스 필즈라는 수학자가 만든 필즈상은 4년에 한 번 시행되고 40세를 넘지 않은 젊은 수학자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향후 연구를 통해 인류에게 기여할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 수상자를 정한다고 한다.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의 소감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시인이 되고 싶었고, 수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자신만의 시를 쓸 수 있었다는 말이 좋았다. 견주기에 부끄럽지만, 내 삶의 아주 작은 한 부분과 닿은 듯했다.
한 주가 지나고 아이들은 교실을 들어오면서, 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나를 찾았다. 그리고는 입에 양손을 갖다 대고 귓속말할 준비를 했다. 몸을 낮춰 기울여 주면 아이들은 속삭였다. "지난주 문제의 정답은 허준이예요."
귀여웠던 건 많은 아이들이 다시 되물었을 때 오답을 말했다는 것이다.
"응? 누구라고?"
"허준이라고요. 허. 준."
그럼 내가 익살스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땡! 그 사람은 동의보감을 쓴 조선시대 사람이야."
나의 짓궂은 장난에도 정확하게 대답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허준이 교수님이요."라고 거의 모든 아이들이 답을 알아왔고, 그날의 수업은 허준이 교수의 어린 시절과 수학자로서의 업적을 이야기해 주며 시작되었다.
교실 한편에 놓인 '아이엠 허준이'책은 쉬는 시간이면 삼삼오오 모여 함께 넘겨 보고는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유리한 것만 이야기한다. "허준이 교수님은 어렸을 때 수학 공부 안 했던 것 같은데요?"
별을 좋아하고 시를 쓰며 자연에서 느끼는 행복을 노래했던 허준이 교수. 다양한 접근으로 수학 난제를 풀어 나가며 그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사람. 부디 우리 반 아이들도 허준이 교수의 세상과 수학을 대하는 태도를 배워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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