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봉사자 이야기
병원 병실 침대에는 작은 책상이 붙어 있다. 입원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듯하다. 평상시엔 보이지 않지만 침대 발치에 있는 상을 들어 올리면 식탁으로, 혹은 책상으로 사용 가능하다. 환자들이 식사할 때 필수적으로 사용한다.
호스피스 병동의 특성상 거동이 자유로운 환자 보다 스스로 움직이기 힘든 사람들이 더 많다. 상체를 일으켜 앉는 것조차 침대의 각도를 조절해야만 하는 경우이다.
호스피스의 다인실 병실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는 환자가 있었다. 병실 내 다른 환자들을 발마사지 하는 내내 침대에 붙어 있는 책상을 올려 두고 엎드려 있었다.
하지만 그 환자는 스스로 몸을 지탱해서 엎드려 있을 수 있는, 비교적 컨디션이 좋은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병실을 나서기 전 환자와 보호자에게 물었다.
호스피스 봉사자입니다. 발마사지 해 드릴까요?
엎으려 있는 환자의 등을 연신 쓸어내리던 남편이 물었다. "이렇게 앉아서도 발마사지가 가능할까요?"
가능하다는 나의 대답에 발마사지가 시작되었다. 마사지샵에 가서 전문적으로 받거나 해외여행을 통해 경험하는 마사지와는 다르다. 호스피스에서 행해지는 요법 중 발마사지는 림프 순환과 정서적 안정을 주목적으로 한다. 그렇기에 환자의 상태에 맞춰 다양하게 접근한다. 내가 좀 불편한 건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비인두암으로 한쪽으로만 누울 수 있었던 환자를 만났을 땐 옆으로 누운 채 발마사지를 해드렸다. 발꿈치에 욕창이 있는 환자를 만났을 때에도 발마사지는 계속되었었다. 국소적인 범위라도 발마사지를 해드려서 그날 하루의 기분이 한결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차치하고 이번에는 앉아 계신 상태로 발마사지를 진행했다. 엎드려 있는 상 밑의 발을 마사지하려니 몸이 절로 구부러졌다. 이런 나의 모습에 옆에 있던 환자분의 남편이 어쩔 줄 몰라했다. "아내가 밤에 잘 때에도 이렇게 앉아 있어요. 봉사자님 힘들게 해 드려서 어떡해요..."
마스크를 쓴 탓에 미소 짓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눈으로 한껏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아휴,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다른 분들도 다양한 자세로 발마사지 받으시니까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내를 간병하는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환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중간중간 얕은 신음이 들릴 뿐이었다. 링거대에 걸려 있는 약들 중에 황모르핀이 보였다. 지난밤에도 밤새 힘들어하다가 진통제를 맞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잠에 취해, 진통제에 취해 기력이 더 없다고 했다.
왜 편하게 누워 계시지 않냐는 물음은 하지 않는다. 난 호스피스 봉사를 할 때 질문을 삼가는 버릇이 있다. 무심코 내뱉은 나의 질문이 누군가에게는 아픈 가시가 되어 버릴까 봐.
아니나 다를까 며칠을 꼬박 앉아 계시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누우면 죽을 것 같아...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환자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다는 자만은 부리지 않는다. 다만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남편이 들려준 이야기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우면 죽을 것 같아서 끝까지 버티던 환자와 그다음 주에 만났을 땐 결국 누워서 조우했다. 몸은 한결 편안해 보였지만 여전히 마음은 어지러워 보였다.
죽음이 멀다고 느끼며 살아가는, 죽음을 떠올리지 않고 살아가는 대부분의 나날 속에서 우리는 흔히 이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어." 하지만 내가 정말 죽을 것이라는 걸 현대 의학으로 고지받는다면,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못할 것 같다.
꾹꾹 살아내는 날들이 마음의 근육을 탄탄하게 만들길. 그래서 언젠가 나의 마지막을 마주하게 될 때, 덜 슬퍼하고 더 잘 살아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