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봉사자 이야기
호스피스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언젠가 끝을 맞이한다고 생각했었다. 환자의 임종이 우리의 만남을 끝으로 데려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호스피스에서는 남은 이들의 삶이 계속되는 걸 볼 수 있다.
몇 년 전, 호스피스에서 아들을 먼저 보낸 엄마가 떠오른다. 20대 초반의 아들이 갑작스럽게 암진단을 받고 손 쓸 틈도 없이 급격하게 상태가 악화되었다. 본인의 체구보다도 훨씬 큰 아들의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으며 '아가~'라고 부르던 모습이 기억에 오래 남아있다. 자원봉사자들이 샴푸를 하려고 하면 본인의 손으로 직접 환자의 머리를 감겨 주겠다고 하셨었다. 봉사자들은 아들의 머리를 직접 감겨주는 엄마를 도왔다. 거무스름하게 자란 아들의 턱수염도 직접 면도해 주시며, 이젠 전문가가 다 되었다고 밝게 말씀하시곤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자원봉사를 갔고 그 모자는 없었다.
몇 주가 지났을까. 호스피스 병동 로비가 시끌벅적했다. 밝게 인사를 나누며 반가워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마음을 추스른 엄마가 호스피스에 방문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들의 모습은 흐릿해지더라도 그리움은 더 짙어질게 분명했지만, 한결 편안해진 모습이었다. 아들과 함께 호스피스에 있는 동안에 참 고마웠다고 마음을 전하며 양손 가득 떡을 사 오셨다. 아들의 모습을 기억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했던 호스피스 병동 사람들에게 깊은 유대감이 생긴 듯했다.
최근에 화기애애한 병실이 있었다. 각자의 남편을 간병하는 아내들의 합이 잘 맞는 병실이었다. 처음부터 친했던 건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샌가 부쩍 가까워진 듯 보였었다. 그중 한 환자가 임종을 했고, 다른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가게 되었다.
그 병실 특유의 생기가 없어져서 아쉽던 찰나에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임종 후 장례를 마친 보호자가 찾아왔었다는 것이다. 병동 의료진과 사회복지사, 통합 간병인까지, 그동안 감사했다며 인사를 전하러 오셨다. 그리고 짧게나마 담소를 나누고 바쁜 발걸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함께 병원생활을 했던 '언니'를 보러 간다며 안부를 전해주겠다는 말과 함께...
반가웠던 보호자가 말하는 '언니'는 바로 옆 베드에 있던 환자의 보호자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현재는 다른 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남편을 간병하고 있는 '언니'덕분에 병원 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입맛도 잃고 힘들던 간병 생활 동안, 가족실에 불러내서 같이 밥도 먹고 말도 붙여주었던 옆 환자의 보호자. 그들은 그렇게 서로 의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는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전하고 있었다.
감사한 마음을 얼마나 표현하며 살아갈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만큼 감사를 표현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음을 느낀다. 낯간지러워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마음 한편에 소중하게 담아두었던 감사함이 있다면 더 흐릿해지기 전에 마음을 전해 보는 건 어떨까?
바쁜 상황을 탓하고 미뤄두면서 생각한다. '말 안 해도 알겠지... 마음은 전해졌을 거야.' 이젠 감사하는 마음이 생길 때마다 나만의 타이머를 달아 놓으려고 한다. 말 안 해도 알아주길 바라는 대신, 말과 행동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할 것이다. 타이머가 울리기 전에.
"오늘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