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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되고 싶지만, 아줌마는 되고 싶지 않아.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이야기

by 미묘

바쁘게 지내온 한 주가 눈가에 새겨진 듯, 눈 밑이 어둑하다. 얕게 자글거렸던 눈가 주름에도 깊이가 생겨나는 나이, 서른 후반. 어떤 날은 늦잠 푹 자고 나왔어도 피곤해 보인다는 걱정을 듣곤 한다.


몇 년 뒤면 마흔 살이 된다는 게 두려웠다. 스무 살을 손꼽아 기다렸던 십 대가 생각난다. 이십대라는 청춘이 좋았지만 서른 살은 마치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 같아 싫지 만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흔 살이 다가오는 게 무섭기까지 하다. 걷잡을 수 없는 노화와 직면하게 될 것만 같은, 애써 부정하던 노화를 담담히 받아들여야 할 것 같은 나이랄까.


호스피스로 향하는 전철 안에서 피부과에 대한 정보를 탐색했다. 의학의 힘을 빌려야 할 것 같았다. 주름을 예방해 준다는 화장품도 찾다 보니 어느새 병원에 도착했다. 세상의 일은 잠시 잊고 마법 같은 세계로 빨려 들어갈 시간이다. 한 주 동안 짊어져 왔던 커다란 걱정들을 종잇장보다 가볍게 만들어 주는 곳, 오늘도 호스피스에 간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있는 환자 명단을 보다가 짐짓 눈길이 멈춰 서는 걸 모른 체했다. 어르신들 틈에서 40대 초반의 여자 환자가 보였다. 다양한 연령대의 환자와 마주하지만 내 나이 또래를 마주할 땐 더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병실을 지키고 있던 건 여자 환자의 ‘엄마’였다. 나의 엄마가 생각나는, 비슷한 연령대의 보호자를 보니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섬망 증상으로 의식이 또렷하지 않은 딸을 대신해 발마사지 하는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딸에게는 남편과 어린아이들이 있다. 길었던 투병 생활로 남편은 더 이상 휴직하지 못하고 직장으로 복귀해야 했고,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다니며 주말마다 엄마를 보러 온다고 한다. 옆에서 지켜보는 환자의 엄마는 병마와 싸우고 있는 딸이 가장 안쓰럽다고 했다. 사경을 헤매면서도 남겨질 자식과 남편을 걱정할 거라며 딸의 얼굴을 마른 손으로 닦아 냈다.


나는 억울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땐 엄마를 떠올린다. 앞뒤 가리지 않고 나를 위해 몸을 던질 수 있는 사람, 어쩌면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을 것이다.








이후 다른 환자들을 발마사지 하며 생각에 잠겼다. 누군가는 그토록 바라던 40대를 살아갈 수 있는 축복이 내게 주어진다면 감사히 받고 싶었다. 늘어가는 주름살을 하나하나 세어가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온화한 할머니가 되기를 꿈꿨다. 마침내, 호스피스에 오는 아침 내내 거스르고 싶었던 노화를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호스피스 병동을 나섰다. 그리고 그날은 하루를 꽉 채워 행복했다. 마법 같은 효과는 하루를 넘기지 못했지만...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꼬마가 양손에 자전거 핸들을 쥔 채 말했다.

“아줌마, 3층 눌러 주세요.”


나는 대답했다.

“응~ 이모가 3층 눌러 줄게”


자동반사로 나와버린 나의 말 한마디. 늙어가는 나 자신을 보는 게 축복이란 걸 심장은 느꼈는데 아직 신경계로 전달은 안 되었나 보다.


할머니는 되고 싶지만, 아줌마는 되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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