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자원봉사자 이야기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들을 마주하다 보면 슬픔에 대처하는 나름의 묘안이 생긴다. 한 발자국 뒤에서 환자들을 바라보며 내 마음을 단단하게 지키고 서는 게 쉽지는 않지만, 다양한 이유와 방법들로 가능해졌다.
직업병
암을 맞닥뜨리고 나서부터 항암치료를 거쳐, 혹은 손을 써볼 수도 없이 호스피스에 오게 된 이야기. 환자가 직접 이야기할 때도 있고, 의식이 없는 환자를 대신해 보호자가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가 시작되어 슬픈 구간으로 들어가려는 타이밍에 나도 모르게 하는 습관이 있다. 구구단 외우기. 수학강사라는 직업 때문인지 구구단을 외우며 눈물을 참는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환자나 보호자 앞에서 내가 울어버리면 안 될 것 같다.
마음 한편에 이야기하는 상대에 대한 미안함도 존재한다. 마음을 온전히 써서 공감하고 위로하지 못하는 걸 실감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그런 이야기들을 다 담아둘 마음의 그릇이 작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공이 쌓인다면 단단한 내 마음에 그들의 이야기를 품어 줄 수 있지 않을까?
마스크 속에 숨겨진 콧물로 울기
방심하다가 한 번씩 훅하고 감정을 흔드는 환자를 만나곤 한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이런 상황에서는 구구단을 외우는 것도 이미 늦은 상황이다. 이럴 땐 눈물을 삼켜낸다. 눈 안에 눈물을 그렇게 많이 담아둘 수 있는지 몰랐었다. 절대 밖으로 흘려보내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악착같이 버티면, 가득 고여있던 눈물이 어느새 콧물로 바뀐다. (개인적인 특성인지 인체의 신비일지 모르겠지만...)
코로나19 이후 여전히 병동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한다. 돌이켜보면 코로나 전에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사항은 아니었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 이후에는 여전히 환자들을 대할 땐 마스크를 착용한다. 그리고 마스크를 방호벽 삼아 눈물을 콧물로 변환시키는 신비로운 작업에 몰두한다. 마스크 속에서는 콧물이 주르륵 흐를지언정 밖으로는 전혀 티 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보호색
지난주까지 의식이 또렷한 환자가 갑작스러운 컨디션 저하를 겪고 있었다. 이를 바라보는 보호자는 불안한 마음에 매우 예민해진 상황이었다. 발마사지하는 나를 붙잡고 이런저런 감정을 쏟아 내며 말했다. '우리 남편은 착하게 산 죄밖에 없는데, 왜 이런 벌을 받아야 하는 건지.' 지난 세월 고생했던 이야기를 하시면서 속상해하고 억울해하셨다.
그 앞에서 '곧 나으실 거예요. 괜찮아지실 거예요.'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다. 그저 모든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며 눈물을 보이실 때마다 등을 토닥여 줄 뿐이다. 그리고 보호자가 눈물을 닦는 틈을 타서 나도 소매로 눈물을 닦아낸다. 이건 보호자가 눈물을 닦으려 휴지를 찾는 몇 초동안 아주 빠르게 행해진다. 그 병실에서 절대 나의 눈물이 티 나지 않게 쓱- 닦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울고 있는 보호자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위로한다.
나무에 앉아서 나뭇가지 색깔을 하고 있는 멋진 카멜레온처럼 아무도 모르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나름의 묘안을 총동원해도 종종 실패를 맛보곤 한다. 2014~2015년 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한 초기엔 눈물이 나오려고 하면 갑자기 화장실로 달려가기도 했다. 누가 봐도 뻔한 상황인데, 두 눈과 코가 빨개져서 돌아와서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굴던 게 생각난다.
요즘엔 당당하게 실패를 받아들인다. 눈물 흘리는 보호자나 환자 옆에서 같이 울어재낀다. 한바탕 울고 나면 '저 너무 푼수 같죠?'라는 주옥같은 멘트도 날릴 줄 안다. 시간이 조금 흐르면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활짝 웃어 보인다. 그리고 다음주의 만남을 기약하며 인사한다. 눈물에 슬픔을 조금 흘려버리기라도 한 듯.
눈물을 참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어쩌면 함께 감정을 나누는 게 상대에겐 가장 큰 위로이자 나눔이 아니었을까 싶다.
처음 자원봉사를 시작할 땐, 적게는 10살부터 많게는 30살이 넘는 팀원들과의 나이 차이를 무기로 삼았다. 난 어리니까, 이런 어려운 감정과 상황에 능숙하지 못한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늘어나는 눈가의 주름과 주근깨보다 무서운 건, 더 이상 나이를 무기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좀 능숙하게 환자와 보호자의 슬픔에 공감해야 할 것 같지만,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성숙해질 것 같았던 내 자아는 여전히 이십 대 천방지축에 머물러 있다.
이리저리 파도에 휩쓸리는 시기를 살아가지만, 결국엔 귀퉁이가 다 닳아서 동글동글한 몽돌이 되고 싶다. 그 누가 걸어도 발이 다치지 않게 반짝이며, 건강하고 단단한 마음으로 타인의 슬픔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몽돌.
오늘도 여전히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했지만, 나만의 방법으로 그들을 응원하고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