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자원봉사자 이야기
호스피스에 있다 보면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한다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젊은 환자들을 만날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60대~90대의 암환자이다. 그들의 얼굴과 손, 발에 새겨진 깊은 주름에는 저마다의 살아온 이야기가 있다. 환자 본인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의식이 없는 환자를 대신해 보호자가 전해 주기도 한다.
그들은 허공을 응시하며 어렴풋한 기억 속을 헤짚어 이야기를 꺼낸다. 흐릿했던 기억은 어느덧 선명해지고, 눈앞에 펼쳐진 듯 그때의 감정에 빠져들기도 한다.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가 하면 서러운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하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호스피스의 많은 환자들은 오랜 시간 거동하지 못하면서 근육이 모두 빠져나가 앙상한 다리뼈, 링거가 주렁주렁 연결된 팔에는 시퍼런 멍이 저릿하게 피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항암치료를 하며 힘겨운 싸움을 해왔을 시간들이 보이는 것 같다. 처음엔 아프고 힘든 시간을 지나 호스피스에서 만나는 환자들을 '암', '고통'이라는 단어로만 떠올리기도 했었다.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비로소 그 이면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요한 듯 바쁜 호스피스에서 종종 누군가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손자의 태권도하는 사진이 병실 침대 머리맡에 붙어 있기도 하고, 피아노 콩쿨에서 입상한 손녀의 영상을 공유하며 기쁨을 나누기도 한다. 해외에 있는 자녀의 석박사 학위 소식을 자랑스럽게 전하며 뿌듯해하는 모습도 본다. 그중에서도 나의 마음을 가장 많이 끄는 건 환자의 젊은 시절 사진을 함께 볼 때이다.
호스피스에서 만났기에 볼 수 없었던 건강했던 모습, 똑같이 백발의 머리칼을 하고 있지만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은 지금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일상을 벗어나 특별한 장소로 여행을 갔다거나 축하할 일이 있다는 것을 의미해서일까. 병실에 누워 있는 환자의 모습과 상반되기에 더 아릿하다.
얼마 전 남편을 간병하던 아내가 말했다.
"영정사진 좀 같이 골라줘요."
나를 향해 내밀어 보인 핸드폰에는 가족 단톡방이 보였다. 영정사진 선택을 놓고 가족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칠순 잔치에 찍었던 사진, 몇 년 전 가족 여행에서 찍은 사진 등 서너 개의 후보가 있었다. 어떤 사진이 좋은지 물어보는 순간이 마치 몇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그때로 돌아간 듯했다. 행복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는 할아버지가 보기 좋았다.
조금 더 기력이 있을 때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두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그리고 온 가족이 영정사진으로 사용할 사진을 찾다가 추억 여행을 했다고 한다. 내게도 꺼내 보이며 옛이야기를 해주셨다. 자녀들이 시집, 장가갈 때의 사진부터 젊은 시절 흑백 사진까지... 세월을 거슬러 가며 한 사람의 인생을 파노라마로 보는 듯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삶이란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리고 끝까지 살아내는 그 삶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가장 온화한 미소의 사진을 골랐다. 마침 온 가족의 투표 결과와 일치하는 사진이라며, 영정사진을 잘 고른 것 같아 다행이라고 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사진.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인사를 건네는 모든 조문객이 짧게 슬퍼하고 오래오래 추억하며 살아가길, 마음속으로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