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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 모먼트 feat. 조카

이제 내 아들 하자.

by 미묘


수학을 가르치며 빼놓을 수 없는 것, 바로 학부모 상담이다. 수시로 진행되는 상담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우리 아이가 어려서부터 수 감이 좋았어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구구단도 스스로 깨우쳤다니까요?"

"영재 아닐까요?"


영재성이 엿보이는 아이들을 종종 봤었기에, 그런 순간들을 두고 '영재'라는 말을 붙이기엔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물론 아직은 어린 나이인 걸 감안했을 때, 그 누구도 잠재적인 가능성을 섣불리 판단할 수 없겠지만.


이런 나에게, 얼마 전 작은 '영재 모먼트'가 찾아왔다.







여동생의 아들이 네 살 되던 해였다. 아직 말도 조금 어설픈 나이였고, 또래에 비해 행동/인지 발달은 좋았으나 언어 발달이 늦는 것 같아 걱정을 했었다. 그런 조카가 말문이 트이고 나자, 무시무시한 속도로 언어 발달을 보여줬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 흥분해서 말했다.

"언니! 내 아들 천재인 것 같아.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영어를 하잖아!!"


나는 평소 냉정을 잘 유지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카 얘기에는 바로 동요되었다. 역시 우리 조카는 뭔가 다르다며, 동생과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두근대는 마음을 누르며 직접 확인에 나섰다.


"언니, 이거 봐. '오마이갓~'이라고 한다?"


조카를 마주 앉히고 발을 동동 구르며 영어로 이야기하는 순간을 유도했다.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마이갓~"


엄마와 이모가 무한 칭찬을 퍼부으며 좋아하자, 조카가 연신 '오 마이갓'을 외쳐댔다.


그때, 서서히 내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생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야, 잘 들어 봐."


언어 영재라고 확신하게 했던 '오마이갓~'은 '엄마, 이거~'였다. 4살 아이의 혀 짧은 발음과 어른들의 기대감이 만든 환청이었달까. 여전히 '엄마 이거~'를 외쳐대는 조카를 뒤로한 채, 우린 한바탕 웃었다.








그날 이후, 나는 '영재 모먼트'라는 말을 조금은 더 누그럽게 받아들인다. 영재성을 보이는 순간을 나타내는 단어가 아닌, 누군가가 사랑하는 아이를 특별하게 느끼는 감정이 찰나의 순간 반짝였던 게 아닐까.


부모는 자녀에게서, 선생님은 학생들에게서 그런 순간을 마주한다. 그리고 나는 조카를 통해 그 순간을 경험하고 행복했다. 이런 순간들을 마주하는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 어쩌면 진짜 '영재'를 키워내는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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